'지금 여기'에 해당하는 글 2건

몇번 이야기했지만, 전 소설 잘 안 봅니다. 깔봐서가 아니라, 메시지 찾기에 강박적인 현대 독서인의 초조함이겠지요. 

John Coetzee

(Title) Waiting for barbarians 
@paperroses님의 소개로 알게 된 작가 존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읽는 내내 책장 덮는게 아쉬워 야금야금 아껴 읽은 소설입니다. 소설이라, 글쎄, 스토리를 중심으로 늘여 쓴 문장이라는 형식면에서는 분명 소설이지만, 읽는 내내 상상을 자극하는 면에서는 우화집 같고, 깊이 생각 속에 잠기게 만드는 성향은 철학책 같고, 옳고 그름에 대해 다각적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점은 도덕책 같습니다. 
그보다 더 큰 매력은, 생경한 세팅임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인간의 본성을 묘사하고, 솜씨 좋은 외과의사처럼 몸 속 숨어있는 감정선을 끄집어내어 백일하에 드러내는 필치로 인해 끊임없이 상황에 몰입하고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작가의 솜씨입니다.

부러 시공간을 뭉개버려 짐작 안가게 낯선 환경에서 인간성의 궁극을 드러내는 화법은 젤라즈니에서도 즐겁게 경험했습니다만, 쿳시는 '지금, 여기'의 언저리에 설정한 제국주의의 시공간을 활용합니다.

@paperroses 님의 지적처럼, 쿳시 글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품격입니다. 한없이 나약한 지식인이지만 내적인 도덕심을 끌어올릴만큼은 지적이고,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인간이지만옳음을 위해서 고통을 각오하는 착한 인간인, 소설속 화자에 동화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류의 보편적 감정인지, 책 읽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선별된 특성인지 몰라도, 책 읽는 내내 주인공을 따라 독자도 번민합니다. 편안함에 숨을지, 위험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갈지. 또한, 실체가 모호한 야만인을 타자로 설정함으로 존재하는 제국주의의 모습에 우리 주변 불가시한 부조리의 흔적을 섬짓섬짓 느끼기도 합니다. 시대와 말과 풍물이 다른데 2010년 제게 어찌 그리 큰 울림을 주는지 신통합니다.

또 하나 이 책의 강점은 명품 번역이란 점입니다. 네덜란드 혈통으로 남아공에서 자랐고 영어를 사용하는 작가의 풍성한 감성 세계를 쫓아가기가 쉽지 않으린 점은 그냥 보입니다. 하지만, 역시 영어를 전공으로하고, 글쓰기도 업으로 삼는 역자는, 남아공 대학교 faculty라는 쿳시와의 인연을 활용해서 매끄럽고 아름답게 번역을 했습니다. 제가 가장 스타일리쉬하다고 꼽는 김훈 문체의 찬란함을 번역서에서 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사실, 노벨 문학상은 별 다섯개 짜리 영화마냥 재미없다고 지레 짐작하던 제게, 2003년만큼은 재미와 품격이 제대로 반영된 수상이었다고 확신하게 만든 쿳시와 '야만인을 기다리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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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식으로 치면 확~ 구미가 당기게 그렇게 책 소개를 하셨네요.^^
    안 읽고는 못 배길 듯?
  2. 아, 정말 인상적인 책이죠. 이렇게 보니 반갑네요.
secret

프레임

Biz/Review 2007.09.16 16:42
학력위조문제로 연일 시끄러웠던 요즘입니다. 출장에서 돌아와보니 좀 다른 이야기로 비화되었군요.

과거는 축적된 자아란 점에서 또 하나의 자기입니다. 제 경우는 성공과 실패, 모든 이력이 지금과 미래의 저를 이루므로 다 소중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렇게 쉽게 부정하고 왜곡하는 이유는 뭘까요. 단순한 이기심일까요. 어떤 심리학적 이유가 있을까요.


더 쉽고 많이 접한 사례를 볼까요.
상대가 늦으면 단지 '성의없고 게으르기' 때문이지만, 내가 늦으면 '집에서 나서는데 하필 가족을 돌봐야 할 상황이 생긴데다가 늘 제 시간에 오던 버스가 하필 늦게 도착함과 동시에, 운수 나쁘게도 하필 오늘 시위로 시내 교통이 막힌 어쩔 수 없는' 탓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의 인지적 경향이 그렇습니다. 남의 잘못은 개인적 성격 (personal trait)으로 원인을 파악하고, 내 잘못은 상황 (situation)의 문제로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학력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정말 지적이고 열심이었는데, 가정형편상 또는 당시 불가피한 상황 상 '그 학력'을 못땄을 뿐, 그 학력이랑 거의 다름없다는 생각이 내재된 탓일겁니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통째로 남을 속이려는 사악한 이기심이라기 보다는, 스스로를 속이고 싶은 자기애의 발로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서 작용하는 심리적 무대장치를 담당하는 기제가 바로 프레임 (frame)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인철

(부제)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사고의 틀 또는 관점의 틀이며 액자로 상징되는 프레임은, 책에서처럼 '세상을 보는 마음의 창'이란 표현이 적절합니다. 프레임은 결국 애매모호한 세상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심리적 도구입니다. 대부분 효율적으로 동작하지만 가끔 비합리적이기도 하고, 따라서 이를 잘 간파하는 사람에게는 심리적 주도권을 넘겨주기도 십상입니다.

사실 프레임은 웬만한 심리학 교과서에서 충분히 다루고 있고, 경영학에서도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는 주제입니다. 커뮤니케이션과 구매행동, 마케팅은 물론 협상 (negotiation)에서도 framing은 세심하게 다뤄야할 기법입니다. 하지만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흥미로운 관점으로 책을 썼네요.

프레임을 지혜의 개념으로 접근합니다. 일견 뜨아하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말이 됩니다. 지혜가 삶의 경험이고 사람과의 관계이며 평정심과 더 나은 선택이란 관점에서 보면 프레임이 지혜와 등가는 아닐지라도 지혜의 하부구조를 구성하니까요.


책의 구성은 프레임에 대한 간단한 소개에 이어 네가지 주요 프레임을 범주화 합니다.

자기 프레임: 자기중심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봄
현재 프레임: 현재에 중점을 두고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예측
이름 프레임: mental accounting. 개념간에 관계를 맺어 둠 (coupling)
변화 프레임: status quo와 현재 가진 것을 기준으로 평가함

상세한 내용은 이 책을 비롯하여 관련있는 자료가 많으므로 참조하시면 됩니다. 앞서도 밝혔듯, 결국 프레임은 인지적 도구입니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한 일관성과 상황을 빠르게 평가하기 위한 단순화,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위험을 거부하는 보수성이 기제입니다.

따라서 프레임에 관심을 두면, 자신과 남을 이해할 때 도움되는 측면이 많지요. 책은 연구 결과에 바탕하지만 사례 중심으로 서술되어 쉽고 편하게 잘 읽힙니다.
연구결과는 외국 부분이 많지만 우리나라 교수가 한가지 관점을 가지고 엮은 점도 마음에 듭니다. 요전 포스팅인 '생각의 지도'의 저자인 Nisbett 교수의 제자이자 같은 책의 역자인 최인철 교수입니다. 정갈하고 명료하게 쓴 책입니다.

책의 사례야 알던 내용의 복습이지만, 제가 진정 배운점은 역시 지혜와 프레임간의 상관관계였습니다.

특히, 프레임이란 프레임으로 지혜롭게 사는 10가지 방법을 제시한 목록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방법을 프레임적 측면에서 재기술한 내용이지만, 프레임을 일상의 전술에서 인생의 전략수준으로 격을 높였기 때문이지요.

의미중심의 프레임을 가져라: 먼 미래와 상위 가치에 집중하라
접근 프레임을 견지하라: "해보기나 했어?"
'지금 여기' 프레임을 가져라: 충분히 즐기는 현재에서 행복이 나온다
비교 프레임을 버려라: 오직 과거, 미래의 자신과만 견주어라
긍정의 언어로 말하라: '충분한'이 아니라 '최고'를 견지하라
닮고 싶은 사람을 찾아라: 이상적인 스토리를 마음에 두고 세상을 보라
주변의 물건들을 바꿔라: 바라는 모습과 상통하는 이미지와 상징을 늘 곁에 두어라
체험 프레임으로 소비하라: 소유가 목적이 아니라, 경험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누구와'의 프레임을 가져라: 행복은 관계에서 나온다.
위대한 반복 프레임을 연마하라: 천재성은 집중과 반복의 산물이다. 10년은 정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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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트랙백  3 , 댓글  14개가 달렸습니다.
  1. 위대한 반복 프레임을 연마하라: 천재성은 집중과 반복의 산물이다. 10년은 정진해야 한다.
    ==> 이 글.. 제 머리속에서는 귀걸이는 귀막히지 않도록 걸고자는 인내와 반복의 산물이다. 1년은 계속 차야한다. ㅡ.ㅡ;;;;

    이런식으로 인생을 초딩수준으로 낮추고 있다는......
    • 아아.. mode님. 최고야 최고.
      모든 구절에서 삶의 진리를 끄집어 내는군요.

      귀뚫은거 잘 개통되길 바랍니다. ^^;
  2. 좋은 책이군요.(하긴 안좋은 책은 inuit님께서 포스팅할리가...) 비교 프레임을 버리되 닮고 싶은 사람을 찾아서 쫓아가야겠습니닷.
    • 안좋은 책은 안좋다고 포스팅 합니다.
      다른사람에게 도움되길 바라면서요. ^^

      엘윙님은 영특해서 알찬 인생길을 찾아갈겁니다.
      믿음이 가요..
  3. 이것도 리스트에 있는 책인데...아아아-;
    내일 도서관에 다른거 반납하면서 있으면 읽어봐야겠어요
    (저번엔 전부 대출중이었던-_-)
    • 금방 읽히니까, 빨리 회수될지도 모르겠어요.
      astraea님 독서 리뷰도 궁금합니다. ^^
    • 이상하네요;
      분명 리플을 달았는데 안 보이네요-0-;;

      암튼..책은 여전히 대출중이더군요..2권 모두;
      글구 제 북리뷰는 북리뷰가 답지 못 한지라
      블로그엔 포스팅하지 않는 정책이랍니다-_-;
    • 저도 리뷰를 본 기억이 없지만, 이제 정책을 바꿔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astraea님의 관점이 있는 리뷰일거라 생각합니다.
  4. 좋은 책이네요. 동감하는 부분도 많고 배우는 점도 많습니다.
    이누잇님 글 중에 "남의 잘못은 개인적 성격 (personal trait)으로 원인을 파악하고, 내 잘못은 상황 (situation)의 문제로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부분도 공감이 큽니다. 요새 우리 사회는 모든 문제를 situation에서 한 발 더 나아가 structure의 문제로 돌리는 성향을 보이는 듯해 많이 거슬립니다. 작게 보자면 모든 잘못은 남탓이자 사회탓이란 변명의 단초가 되고, 크게 보자면 사회 문제를 정치적 이해와 접목시키려는 의도가 보여 불쾌합니다. 김일병 사건이 그랬고 조원희 사건이 그랬죠. 인기 상종가인 음모론들도 크게 다르지 않구요. structure를 들먹이는 건 일견 그럴싸하고 근사해 보이지만, 십중팔구는 문제의 근원도 해결책도 찾지 못한채 말잔치로 끝나고 맙니다. 이번 학력 위조 사건도 터지자마자 바로 학력 위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쪽으로 여론몰이가 되는 걸 보고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좀더 실천적이고 발전적이며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프레임이 제시되고 수용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말씀처럼 말잔치죠.
      고기를 씹듯, 말하는 재미요.
      문제는 사회적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가십이 필요악인데,
      가끔 과한 이슈를 보면 회의가 많습니다.
  5.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2007.09.17 04:24 신고
    개인적으로는 유멘시아님이 쓰신 나를 위한 심리학도 괜찮더라구요.
    프레임하고는 또다른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6. 제 이야기네요^^. 반성해야지 -_-;;
    근데 자기계발서나 심리학 책은 다 읽고 난 후 얼마 안가서 다 까먹게 되는게 문제더라구요 ㅜ.ㅜ (앗 이것도 상황 프레임에 갖힌건가 ㅎ)
    • 하하하.. 반성이라니요.
      사람이 원래 그렇다는 이야기잖습니까.
      자기계발서가 특히 그렇지만, 크게 느낀점을 실천해 보는데서 차이가 생긴다고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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