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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

Inuit 2015. 9. 12. 10:00

주경철

이런 외국 소개 책을 읽을 때 기대하는 부분이 있다.

-편협되거나 편향적이지 않아야 한다
-일반 관광서에 나오는 내용보다 국소적이라도 깊이를 원한다
-가능하면 문화를 알고 싶다
-특히 현지인의 정서를 알고자 하는게 가장 크다
-바라건대 역사가 뒷받침되면 이해가 쉽다
-더 바라자면, 잘 읽혔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기준에 적절히 부합한다. 균형이 잡혔다. 고매하게 딱딱하거나, 어설프게 감상에 빠지기 쉬운 현직 교수의 책 치고는 웰메이드다. 책은 크게 두 파트다. 전반부는 네덜란드의 문화를 다룬다. 후반부는 역사다.

실은 이게 쉽지 않다.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네덜란드는 이래.. 라고 말하긴 쉬워도, 대중을 대상으로 한 서적에서 어느 나라의 문화를 똑똑 부러뜨려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소심하면 두루뭉술해지고 내지르면 편향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자 특유의 감각으로 다양한 소스에서 확인 가능한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네덜란드 문화를 세심히 추렸다. 네덜란드 전역을 여행한건 아니지만, 몇 차례 스키폴에 내려본 나로서도 다 수긍이 간다. 많은건 새로 배웠다.

Verzuiling. 이게 가장 크게 배운 점이다. 지주화(columnization)라고 번역되는 네덜란드 특유의 정서다. 종교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각자는 마음의 기둥(zuil)을 지니고 있고 이를 통해 사회의 틀과 역동성을 유지하는 네덜란드 특유의 정서다. 페르죄일링을 알고 네덜란드 역사와 문화를 보면 훨씬 잘 읽힌다. 

또한 우리 스스로를 아는데도 도움이 된다. 

쇠젖메주 무슨 뜻일까? 

치즈를 일컫는 우리 옛말이다. 또는 졋떡(ㅼㅓㄱ)이라 불렀단다. 어감이 이상하지만, 꽤 수긍가는 번역이다. 

화란. 말 나온김에 네덜란드의 한자 표기인 화란도 언급하자. 화란은 알다시피 홀란드의 음차다. 중요한 점은 홀란드가 네덜란드의 영어식 명칭이지만, 실제 홀란드는 네덜란드의 중심 주일 뿐이다. 누가 한국을 경기라고 부르면 황당하겠다.

그 외에도 자잘한 재미가 많다. 네덜란드의 식민지 수리남이 지금의 뉴욕과 바꾼 결과의 땅이랄지, 신이 세상을 만들었으면 네덜란드인은 네덜란드를 만들었다는 자부심, 여자친구 만나기 전에 일(work) 부터 하라든가 아낀 1센트가 번 1길더보다 낫다는 경제관념, 무엇보다 오랜 지방연합의 특성상 끝없는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국민성 같은 부분은 알아둘만 하다.

최고의 미덕은, 책 전반에 배여있는 시선이다. 자본주의의 요람인 네덜란드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지나치게 숭상하지도 않고 폄하하지도 않는 시선이 참 따습다. 시대 상황은 이해를 하고, 공은 공대로 인정하면서, 자본주의의 성립에 피흘리며 고생한 네덜란드와 식민지의 기층민에 대한 꼼꼼한 배려는 책을 덮고도 한참 생각나는 그윽한 향기다.

Inuit Points 
2003년작이라 근 10년의 공백이 아쉽다. 최근 판이었다면 주저않고 별 다섯을 주었을게다. 실상, 나라 전체가 변할만한 시간이 아니라 책의 대부분은 그대로 유효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21세기 초입의 정서들이 읽는 동안 자꾸 눈에 밟히는건 어쩌기 어렵더라. 전에 "교수님 책"에 당한적이 있는지라, 깔끔하고 경쾌하게 잘 써주신점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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