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분류 전체보기 (1424)
Inuit Blogged

숙소 앞으로 이탈리아 순례길이 지나가는건 제겐 감탄이었습니다. Via Francigena프란치제나 길(via francigena)은, 영국 캔터베리에서 출발해 도버를 지나 프랑스를 관통한 후 스위스 산지를 넘고 토스카나를 통과해 로마까지 도착하는 순례의 길입니다. 숙소가 있는 산 지미냐노는 시에나쪽 발도르차 평원에 비해서 고원이라, 길의 풍경이 제가 작년에 걸었던 스페인의 까미노 프리미티보와 매우 흡사했습니다. 그래서 집앞 길을 더더욱 좋아했습니다. 매일 아침 달리는데, 평평한 길은 없고 산위아래를 달려야 하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길 걷는 순례자와 종종 대화도 나눠보는데, 같이 걷는 자가 아닌, 머무는 자의 입장에서 대화하는 경험도 신기했습니다. "언제 출발했니? 오늘 어디까지 가는게 목표야? ..

이번 여행의 고갱이는 시골살이입니다. 형님누나 부부가 한달 살기 하는 곳에 1주일 놀러가기로 한 2년 전의 약속이 이뤄진거죠. Podere San Luigi숙소는 농가를 개조해 만든 포데레(podere)입니다.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하늘, 흙길, 나무, 구릉이 그림처럼 펼져지는 무릉도원 같은 곳이었어요. 큼직한 건물에 네개의 숙소가 꽉꽉 차 돌아갑니다. 애초에 형님누님이 오랜 리서치 끝에 극찬의 리뷰보고 선택한 곳이라, 시설과 풍경, 무엇보다 주인의 친절함까지 빼어납니다. 자연가장 좋았던건 볕이 넘쳐나고 녹색이 물결치는 자연 그 자체였습니다.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장대한 사이프러스 나무가 두줄로 서있고, 바람에 은빛이 팔랑거리는 올리브 나무도 지천입니다.길가엔 로즈마리가 잡초처럼 무심히 자라고, 바질 화분..

이탈리아는 좋아하지만 이탈리아 시스템은 싫어합니다. 예전, 가족 여행 때 황당한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대중교통이 파업해 점찍었던 여행 지점을 포기하고 종일 걸어 다녔다든지, 당연한 기차표 환불을 안해 줘 줄만 두어시간 서고, 돈 날리고 마음까지 상했다든지, 로마 패스 사는 곳을 물어보면 열이면 열명이 모르면서 아는 척 알려줘 한시간 반을 떼르미니 역 돌아다니며 시간 낭비했다든지 등등이죠. 이탈리아 사람들의 기질과, 엉성한 시스템 덕에 이탈리아 여행의 기억은, 아름다운 풍광 속 진땀나는 경험입니다. 이탈리아 재방문 생각도 없었죠. 그러나 이번 여행은 한달 살기 하는 형님 누나네 방문하는 목적이라 목적지는 토스카나 산골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피렌체로 들어가 1박 후, 볼로냐 가서 1박, 다시 피렌체로 돌아..

아내와 이탈리아 중부 지역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사막의 풍요'입니다. 작년 산티아고 순례길은 제 삶의 변곡점이었습니다. 참 좋았는데 이유가 뭘까 반추했습니다. 문득 깨달았던 건 '사막의 풍요'입니다. 절제된 감각 속에서 삶의 의미가 더 풍성하게 와 닿는단걸 알게 되었습니다. 비행가장 어려웠고, 완수 후 뿌듯했던 도전은 '적막한 비행'입니다. 유럽가는 12시간 비행이면, 통상 영화를 세개쯤 봅니다. 영화로 반 쯤 시간을 때워야 지루하지 않으니까요. 이번엔 갈때 올때 영화를 단 한편도 보지 않았습니다. 음악도 듣지 않았습니다. 대신, 철저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책 읽고, 글 쓰고, 다시 책 읽다 시들하면 복도 끝 꼬리까지 가서 한참 서 있었습니다. 마침 아내도 따라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