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협상의 기술 본문

Review

협상의 기술

Inuit 2007. 8. 5. 16:05
당신은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입니다.
직원이 셋 있지만, 매장을 관리하는 강씨가 가장 핵심직원입니다. 당신과 함께 근무도 오래 했고, 태도도 좋고 매장을 훌륭히 유지해 나갑니다. 하지만, 작은 매장이라 매년 수입이 크게 늘기 힘들고 오히려 현상유지도 버거운 상태입니다. 반면 직원의 봉급은 물가상승률은 보장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가장인 강씨는 생활고로 인해 연봉인상폭에 대해 예민합니다. 작년초에는 가게의 상황을 설명하고 봉급을 동결했고 올해 대폭 인상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연봉을 다시 조정해야 합니다.

당신은 세가지 옵션을 떠올립니다.
1. 상황을 설명하고, 함께 같이 하며 미래를 보자고 약속한 후, 다시 연봉 동결을 요청한다.
2. 대폭인상은 어려움을 설명하고, 올해 물가상승률을 상회하는 5% 인상안을 제시한다.
3.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작년의 약속과 강씨의 생활고를 감안해 10% 인상안을 제시한다.

어떤 안으로 하시겠습니까?
최소한, 3번을 택했는데 강씨가 일을 그만두고 다른 곳을 떠났다면, 이해가 가십니까?

늘 그렇듯, 위의 상황은 제가 만든 가정입니다. ^^; 하지만, 실제로 저런 상황에서 best offer를 던졌음에도 산통이 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GE의 VP Boulware란 사람이 노조와 협상 시 괜찮은 offer를 제시하면서 더 이상 협상은 없다며, "take it, or leave it"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노조와 대파국을 맞이하였습니다. 당신도 고통을 감내하면서 강씨의 입장을 고려해 10%나 올리면서 더 이상 옥신각신 하기가 싫을 공산이 큽니다. 따라서 10%를 제시하는 대신, 이 정도 조건을 받지 않으면 나와 일할 마음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못을 박습니다. 강씨는 몹시 섭섭하다가 분개합니다. 그동안 말안하고 참은 사실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협상기법을 Boulwarism이라고 부릅니다.

결국 offer를 주는 사람은 혼자서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여 마음속에서 많은 양보를 했습니다. 따라서 이미 서운한데, 상대가 수용하지 않으면 매우 억울한 감정까지 들지요. 하지만, 마음속 양보는 혼자만의 계산이고, 실제로 상대가 필요한 양보가 아닐 가능성이 높은데도 말입니다.
반면, offer를 받는 사람은 고압적인 태도와 협상의 여지가 없음에 실망하여 논의를 진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선심을 쓰기 위해  initial offer를 높게 가는게 맞을까요?

(원제) Negotiate to win: The 21 rules for successful negotiating
사용자 삽입 이미지

Jim Thomas



저자는 "start high"학파의 전폭적인 지지자입니다. 결국 협상은 감정선의 조절이므로, 상대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내릴 여지를 가지고 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명료한 주장이며 저도 십분 공감합니다.

저는 비즈니스 스쿨에서 협상을 배웠습니다. 찾아보면 협상에 대한 책은 많습니다. 대개는 협상에 관한 사람들의 환상을 만족시켜주는 쓸모없는 테크닉이 많습니다. 반면, 학문적으로 가면 졸립도록 따분한 논의가 많습니다. 제가 배운 하버드 학파의 통합적 협상학이 그러합니다. 이 책은 실용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BATNA니 ZOPA 같은 현학적 개념에 하나도 의지하지 않으면서, 협상의 본질과 실제를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굳이 따지면 협상 전술 교범이라고 부를만 합니다.

이 책의 개념을 잘 설명하는 구조는 이렇습니다.

협상과 설득은 동전의 양면이다. 설득은 이유를 가지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다. 수용되면 최고로 좋다.
하지만, 거부되면 별 수 없이 협상을 해야 한다. 그리고 협상은 양보(concession)를 뜻한다.
또한, 협상의 실패는 가치관, 견해, 소신의 갈등이 원인이다. 이해 상반으로 결렬되는 협상은 그리 많지 않다. 협상 자체의 관리가 중요하다.

따라서, 전문가로서의 협상은 윈-윈 협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버드 학파의 핵심주장과 일치합니다. 하지만, 그 근거가 재미있고 실용적입니다. 정의 때문이 아니라, 프로페셔널로서의 평판관리, 그리고 상대측 협상가 상사의 분노, 마지막으로 후려친 협상가의 원한 등을 이유로 윈-윈 협상이 베스트라고 제안합니다. 굳이 학문적 프레임웍으로 말하면 repetitive game은 unilateral deviation의 유인이 작아진다는 뜻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책략과 기법으로 상대를 후려치는 협상은 하수의 방법이지요. 따라서, 책의 모든 내용은 적절한 양보와 비대칭 정보의 교류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그리고, 협상전략보다 '어떻게'라는 실행에 집중합니다.

절대로 공짜는 주지 마라. "OK, if.."를 입에 달고 살아라.
크게 양보하고 절반씩 폭을 줄여가라. 초기의 대폭은 건설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말미의 소폭은 확신을 제공한다.
양보의 폭을 결정했으면 상황과 무관하게 mandatory로 진행해라. 55:45 정도로 이기는게 현명하다.
내가 "해보겠다"라고 말했으면, 반드시 해보고 피드백을 줘라. 남이 "해보겠다"고 하면 그냥 그러려니 믿지 마라.

그 외에 실용적 팁도 있지요.

counter-offer보다 품위는 떨어지지만, 딴전 피우기(Krunch)는 매우 좋은 전술이다.
협상이 끝나갈 때, 덤(nibble)을 얻어내라. 콜롬보처럼.
창조적 협상의 항목으로, option, tax, referral 을 고려하라. 하지만 창조적 양보는 실제로 안되는 경우가 많음을 염두에 둬라.
상대의 BL(Bottom Line)은 묻지도 말고 믿지도 마라. 내 BL은 마지막 한순간 이외에는 언급하지 마라. 중립적으로 offer를 던져라.
여러 agenda 사이를 계속 움직이리라고 생각하라. 멈추면 숨을 못쉬는 상어처럼.
아무리 좋아도 상대의 initial offer를 그냥 받아주지 마라. 상대를 미치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
잡담을 충분히 하라. small things first이다.
과다한 권한으로 협상에 임하지 마라. legitimacy와 bad-guy를 잘 활용하라.

전체적으로 내용이 어렵지 않고, 재미있습니다.
아쉽다면, 통찰력있는 21가지 rule 설명 이후에, 월간 여성지 부록같이 연봉협상, 자동차 값 후려치기, 호텔과 항공사 벗겨먹기 같은 생활 속의 협상 기법이 달려있는게 뱀의 발 같이 느껴집니다.


책의 번역는 전반적으로 깔끔한데, 원문 자체가 간결한 탓도 있을겁니다. 딴전 피우기 (Krunch)와 덤(nibble) 같은 번역은 재치있습니다. 그리고, 중대한 번역상 오류가 하나 있습니다. 내용 중 협상 봉투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이는 'the Envelope of Negotiation'이 원래 단어이고, 여기서 envelope은 'zone of acceptible agreement set' 정도의 개념입니다. 응용과학에서는 통상 '포락선'이라고 하는데 저는 일본 역어 냄새가 나서 싫어하고, '포위선도' 정도로 쓰고 있습니다. 하여간 '봉투'는 아닙니다. ^^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전 개인 재무설계  (22) 2007.08.18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14) 2007.08.12
자기혁신 i디어  (8) 2007.08.04
뉴로마케팅  (14) 2007.07.29
스토리텔링 석세스  (10) 2007.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