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영화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일반적인 답은, 신경학의 증례들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들입니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영화와 이야기는 많습니다. 하지만, 신경학은 상대적으로 적지요.
정신분석학이 우리 마음의 OS 또는 SW를 다룬다면, 신경학은 HW와 구조를 다룹니다. 환자가 오면, 정신분석학자는 소프트웨어 스택을 살피고 바이너리 코드까지 내려가 이리저리 문제점을 진단하고 파악한 후, 작동되도록 고치는 디버깅 작업을 합니다. 하지만, 신경학자는 기계적 구조로 뇌에 접근하므로 마음껏 실험하지는 못합니다. 손상되면 안되는 하드웨어의 특징 때문이지요.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아직 우리는 우리 뇌 구조의 하드웨어적 구조를 잘 모릅니다. 확률적으로 얻어지는 특이한 사례에 의해 구조와 기능의 인과관계가 아직도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중이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Oliver Sacks

(원제) 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


그리고..
위 문제의 좀더 좁고 구체적 답은 바로 이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모티브가 되는 사례가 있는 영화들입니다.


1. 길잃은 뱃사람(The lost mariner)에 나오는 Jimmy G의 경우, 전쟁이 끝난 1945년 이후의 기억이 없습니다. 새로운 기억은 단 1분도 가지 않습니다. 인생의 시계가 어느 순간 멈추었습니다. 알코올에 의한 유두체 변성이 일어난 Korsakoff 증후군 환자입니다.

2. 투렛(Tourette) 증후군 환자는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된 운동능력을 보입니다. 또한, L-도파의 투여에 의해 화석화된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스티븐의 사례처럼 약물중독에 의해 후각의 해상도가 비약적으로 증가해서 냄새로 사람의 구분이 가능해진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 페노미논처럼 3주간의 초능력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3. IQ 60의 자폐증 쌍둥이 존과 마이클의 이야기입니다. 사칙연산도 못하지만, 4만년 앞뒤의 임의 날짜를 말하면 요일을 그 자리에서 답합니다. 그리고 실수로 성냥을 쏟았을 때 쌍둥이는 동시에 111을 외칩니다. 세어보니 성냥의 갯수였지요.

4. '사랑의 기적'은 안 보신 분이라면 꼭 권할만큼 감동깊은 이야기입니다. 저도 이제야 알았지만, 영화의 원작인 'awakenings'가 바로 Sacks 씨의 작품입니다.

저도 이 책을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영화에 빠져들게 하는 극적 장치가 하나의 책에 다 나와 있다니 말입니다. 특히,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공중그네' 포스팅의 댓글이었기 때문에, 이라부의 연장선상 정도로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흥미위주의 기묘한 증례만 모은 책은 아닙니다. 우주에 다녀왔음에도 정작 자신의 우뇌가 어떤 기제로 작동하는지 파악조차 완전치 못한 의학과, 구조적 결함을 딛고 굿굿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의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래도 의문은 많습니다.
더 이상 기억이 안되는 사람의 경우, 작가의 표현대로 '인생이 망각속에 녹아내리는' 지경입니다. 기억이 안되는 존재는 어떤 맥락에서 존재 의미를 찾을까요.
자기 몸을 못알아보는 환자도 있고, 기억에 문제가 있는 환자도 있습니다. 실존은 추억에 있을까요, 육신에 있을까요. 두 결함에도 불구하고 모두 인간이라면 총합만이 실존인가요. 일부 기능이 문제있다면 결함있는 실존일까요.
관자엽 부근에 총탄이 박혀, 랜덤하게 아름다운 선율을 환각하는 쇼스타코비치처럼, 결함이 오히려 축복이 되는 경우는 또 어떤 의학적 함의가 있을까요.
책의 테마처럼 '상실'된 기능을 극복하고자 하며, '과잉'된 기능에 굴복하지 않으려 내적인 투쟁을 하는 환자들의 존엄한 의지가 존재아닐까 생각합니다.

총평하자면, 책의 소재를 바탕으로 이미 몇가지 영화가 나왔듯, 새로운 이야기 쓰기에 관심있는 예비작가에게는 귀중한 영감을 줄 책입니다. 좋은 책 추천해주신 aspirinboy님whitesox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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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트랙백이 하나이고 , 댓글  14개가 달렸습니다.
  1. 헉! 깜짝 놀랬습니다. 스킨이 ... 그리고 태터 미디어^^
    이런 기회로 더 많은 블로거에게 이누잇님의 포스가 전해지길 기원합니다.
    • 놀래켜셔 죄송합니다.
      저도 제 블로그 보고 깜짝 놀랍니다. 영 어색합니다. ^^;
      응원 고맙습니다.
  2. 모자 눌러쓴 담배피는 형님이 없어져 좀 서운하지만...
    녹색도 특이하고 좋습니다.그리고 여전히 인터페이스 깔끔합니다. ^^
    태터미디어 참여가 블로그의 외연과 영향력을 확장하고 진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나도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 담배피는 사진이 없었구만.
      덕분에 다시 넣었으. ^^
  3. 재밌겠는데요... 위시추가합니다^^
  4. 순간 잘못온게 아닌가 깜짝놀랐습니다. ㅋㅋ

    오늘 TV에서 본 머리에 총알이 박힌채 40년을 사신 할아버지가 생각나네요.
    밀린 책들을 어서 빨리 읽어야 겠습니다. 새책들이 밀려오는구나..
  5. 공중그네 리뷰 올리신거에 추천을 해드렸는데 읽으셨네요.
    오래전에 읽은 책이지만, 이제서야 저도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트랙백 보냅니다~
  6. 위에 적어주신 네 편의 영화도 보고싶어 집니다.
    얼마 전에 박사가 사랑한 수식 이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신경학이라는 것과 무관(?한가? 한 것 같아요. -_-;)하지만 기억력과 관련이 있어서.. 포스트 읽는 동안 계속 생각이 났어요.
    이건 책꽂이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경제 쪽은 좀 힘들어서..ㄱ-)
    • 네편 다 안보셨나요? 다들 강추입니다. ^^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영화도 있지 않았나요. 제목이 익숙하네요.
  7. 스킨이 바뀌었군요. 구조는 예전의 것도 괜찮았는데요. 지금은 오른쪽에 메뉴가 몰려있어욧!
    아 재밌는 책들이 많네요. 뇌라는 H/W랑 마음이란 S/W가 어떤 관계가 있을지 아주 어렸을때부터 궁금했어요. 좀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런걸 연구해봐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돈은 별로 못벌겠지만요. 푸하하.
    • 뇌쪽 연구도 잘하면 돈 됩니다. 할게 많을텐데요.
      마인드해킹은 어땠나요? 별로 적성에 안맞는다고 했던듯..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