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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화법

Inuit 2007. 10. 7. 10:14
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빌 클린턴(Bill Clinton)이 아버지 부시 (George H. Bush)에 맞서 대선에서 격돌할 때의 슬로건입니다. James Carville이 만든 이 구호는, 걸출한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대의 이슈인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과 상대의 약점을 예리하게 파고 들면서, 간결하고 심각하지 않아 좋지요. 저도 포스팅에서 한번 패러디를 했습니다만.

이 구호의 모티브는 부시씨가 직접 제공했습니다. 슈퍼마켓 연합회 모임에 참석했다가, 나온지 10년도 더 된 바코드 인식기를 처음 본듯 신기해 하는 모습을 보인거지요.
뿐 만 아닙니다. 리치몬드에서 열린 타운홀 토론에서도 심대한 실수를 합니다. Marisa Hall이란 여성이 국가 부채가 후보 개인에게 미친 영향을 물었을 때, 부시씨는 결정적으로 상황판단 안되는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였고, 치밀한 토론 태도 준비로 그와 명확히 대조를 이룬 클린턴 씨는 대선고지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됩니다.

세상 살다 보면, 한순간에 많은 시간을 응축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에 삐끗하면 기회는 멀리멀리 달아나지요. 여러분은 그 순간을 위한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습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Jerry Weissman

(원제) In the line of fire: How to handle tough questions.. when it counts


빨간 표지와 흥미를 끄는 한국어 제목으로 인해 사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책 소개에서 받은 인상과는 다른 책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인생에서 한두번 올까 말까 하는 그 시점에서 어떻게 유효하게 대응하는게 좋은지에 대한 지침입니다. 그런 면에서 영어제목은 리듬감있으면서도 완벽하게 내용을 설명합니다.
(뭇 사람의 시선과 질문의 집중 포화를 받는) 사선에서: 아주 중요한 순간에 나오는 터프한 질문을 다루는 법..
책의 얼개는 단순하고, 설명은 세밀합니다.

상황
일반적인 프리젠테이션도 해당은 되나, IPO 투자 유치설명회나 정치 토론 등이 어울리는 상황입니다. 한순간에 많은 내용을 함축해서 보여줘야 하고, 실수는 치명적입니다.

실패
터프한 질문에 당한 결과는 세가지로 분류됩니다.
1. 방어적 태도 (Defensive): 계속 그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설명과 변명에 급급한 모양입니다.
2. 회피 (Evasive): 질문의 핵심을 빗겨가거나, 자리를 피하는 경우입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매우 잘 구사한다고 알려진 딴소리 하는 '사오정 전법', 의사당에만 들어가면 IQ가 50씩 낮아져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메멘토 전법'도 다 해당입니다.
3. 말싸움 (Contentious): 분노를 못이기고 바로 논쟁이나 말꼬리잡기로 들어가는 경우입니다.

살펴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터프한 질문을 받으면 위의 세가지 반응 중 하나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말했듯 결과적 실패입니다. 핵심을 은근슬쩍 회피하거나, 된통 윽박지르면 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fight도 flight도 모두 실패 맞습니다.
프로페셔널하지 않아 신뢰를 잃고, 원래의 목적인 설득에는 실패했으며, 내용과 상관없이 미숙한 인간이라는 이미지만 영영 따라다니게 됩니다. (그래서 앞서의 상황이 주로 해당된다고 한겁니다. 반복적으로 볼 일 있는 회사내 PT, 학술대회는 좀 다릅니다.)

그럼 어떻게 이 실패를 벗어날까요.

초식
매우 간결하지만, 확실히 성공이 입증된 초식이 있습니다.
1. 경청 (Listening)
매우 중요한 첫 단추입니다. 오감을 동원해서 상대의 말을 집중해야 합니다.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그렇고, 경청함을 몸소 보여야하기도 합니다 (visual listening). 부시씨가 Hall 양의 질문에서 실패한 원인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모르면 물어서라도 질문을 파악해야 합니다. 특히, 터프한 질문이 나오는 상황은, 대개 질문자가 비논리적이고 불명확한 질문을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2. 로마의 기둥(roman column) 찾기
로마의 기둥. 말은 화려하지만 개념은 쉽습니다. 각 기둥별로 주제를 할당해 놓은 로마의 연설가에서 따온 단어입니다.
이는 파악해야 하는 상대방 말의 진의입니다. 질문의 이면입니다. 하지만, 경청하지 않으면 이 부분을 찾기 어렵습니다. 저자는, (미식축구에서) 볼을 잡지 않고서는 뛰지 않듯, roman column을 확보하지 않으면 절대 대답을 하면 안된다고 할 정도입니다.

3. 시간 끌기 (buffering)
이 부분은 질문의 복잡도와 대답자의 준비상태에 따라 필요시 가져가면 됩니다. 저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 단계입니다.

4-1. 바꾸어 말하기 (Paraphrasing)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질문에서 로마의 기둥 중심으로 질문을 다시 진술해서 질문자에게 확인합니다. 이 과정에서 적의와 감정이 사라지고 중립적인 단어로 문제가 바뀌기 때문에 대답이 쉬워집니다. 또한 literal한 수사학과 궤변에 함께 빠져 허우적대지 않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4-2. 키워드 환산 (keyword)
질문이 그렇게 toxic하지 않는 경우나 간결하고 빠른 진행을 원할 때, paraphrasing하지 않고 핵심 개념만 언급하면서 바로 답하는 방식입니다. 달인의 경지에서 가능한데, 콜린 파월씨가 능하다고 합니다.

5. 긍정적 인상 주기 (topspin)
4단계까지 잘 되었으면 방어에는 성공했습니다. 여기에서 끝내지 않고, 논의를 이어서 답변자가 원하는 주장과 설득을 함께 실어 마무리를 하는 방법입니다. 저는 이번에 읽으면서 한계효용성이 가장 높은 항목이었습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위의 기법은 특정상황에서는 매우 유용합니다. 저는 부분적이지만 실제로 적용해 보았고, 이론을 배우기 전에 몸으로 깨져가며 배웠기에 그 효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 질문 컨트롤 하는 기법은 알고 있으나, 단상에 나가면 잘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훈련이 필요하지요.
예컨대, 앞으로 세개의 질문을 더 받겠다고 공지하고 카운팅을 하는 부분은 시간과 신뢰를 다 지킵니다.
질문자에게로 다가가서 답하는 부분은 부수적 효과를 유발합니다. 클린턴이 위 사례에서 사용했지요.

우리나라에선 좀 힘들지만, 답변을 you-answer로 하는건 언제든지 마력을 발합니다.
단, 청중의 이름을 다 알지 못하면 직칭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누군 Tom이라 부르고 누군 you라고 하는게 더 실례이니까요.
또한, 미디어 앞이라면 문장에서 아무리 논리적이라도 guilty를 인정하는 말은 하면 안된다는 점은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져있습니다. 앞 뒤 다 잘라먹고 그부분만 따다 쓰기 때문에 그렇지요.

전체적으로 사례도 재미있고, 답변의 상황도 긴박하여 잘 읽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쉽게 쓴 책입니다.
한권 내내 부시-클린턴 사례와 정치 이야기로 품이 많이 안 들었고, 상황이 매우 제한적이므로 저술의 전개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기법을 사용할 상황이 얼마나 많을까요. 물론 일부 테크닉은 중요하게 쓰이겠지만, 일반적인 프리젠테이션 기법에서도 커버해주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프리젠테이션 능력을 키우기 위해 굳이 이 책을 볼 필요는 없을겁니다.
그러나, 큰 물에서 사자후를 토할 날을 꿈꾸는 사람은, 미리 송글송글 땀흘리는 기분을 맛보는 재미 때문이라도 볼 만합니다.

어쨌든, 이 책에서 배울 내용은 결코 '불의 화법'이 아닙니다.
굳이 가르자면 물의 화법이지요. 남들이 불을 지를 때 불을 꺼나가고 흐름을 제어하는 물 말입니다.
그래서 제목보면 할 말이 많습니다. '사선에서'를 '불의 화법'으로 지은 출판사의 상상력에는 그저 경탄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손자의 '손자병법'을 선 쥬 장군의 '전쟁의 기술'로 번역한 센스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대학 교수인 저자가 학생들 시켜 숙제로 모은건가요, 전공과목 이외의 주제에 대해서는 이해가 깊지 못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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