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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하늘을 디자인 하다

Inuit 2013. 3. 10. 10:00

용기를 줄 때 흔히 사용하는 스토리.
"예전 중세 사람들은 저 바다의 끝은 절벽과 같은 낭떠러지가 있다고 믿었으나, 콜룸부스는 그 말에 의문을 품고 바다를 건너 신대륙을 발견했다."

그럼 이 말은 어떤가?
"지레의 원리를 발견한 아르키메데스는 말했다. 
나에게 충분히 긴 장대와 지지점만 다오. 지구도 들어올릴 수 있을테니."

그리스 시절의 아르키메데스는 분명히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염두에 두고 말을 한 것 같은데, 과연 그 후대인 중세 사람들은 정말로 지리에 무지렁했을까?


E. Edson & E. Savage-Smith

옛 지도에 담긴 중세인의 우주관

(Title) Medieval views of the cosmos
 
결론부터 말하면 답은 아니오다. 

이미 그리스 시절에 지구의 모습이 구형일 것이라는 과학적 추론이 있었다. 북쪽에서 보이는 별자리와 남쪽에서 보이는 별자리가 다른 것에서 착안하여 지구가 둥글 것을 예견한 철학자가 있었다. 더 나아가, 구형 지구를 가정하여 위도 길이를 산정하여 지구의 둘레를 측정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그리스의 과학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중세까지 평면 지구 가설을 모두가 믿고 있었다고 믿을까? 

책은 그 답을 워싱턴 어빙이라는 소설가가 콜럼버스의 삶을 미화한 허구를 쓴 이후,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믿음을 퍼뜨린 결과로 생각하고 있다. 

신화와 신학이 지배해온 중세에, 교육이 충분치 않은 그 시절에 일반인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구형 지구를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확실한 무리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고대 그리스 이래로 구형 지구를 바탕으로 수많은 지도가 그려지고, 셀 수 없는 탐험이 이뤄져 왔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사실은, 암흑시대에 조차도 천문과 지리가 신의 권위에 질식되어 압살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이슬람 문화의 공이 크다. 이슬람 학자들은 그리스의 원전을 온전히 받아 들여 자기의 언어로 번역하여 그 학문적 위업을 계승하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슬람의 율법과 정책이 이 부분의 스폰서였다. 우선, 메카를 향한 참배를 하기 위해서는 Qiblah라는 메카 위치를 알아야 한다. 즉 어느 위도-경도에 있어도 메카의 방향을 알아내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무슬림 학자들은 정교한 위치 측정 시스템을 발전시켰고 이의 핵심은 바로 천문이다. 

또한, 무슬림의 정복사업과 제국 내 관할을 위해서는 지리 탐구와 정확한 지도제작이 필수였다. 따라서 다양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받아들여 중세의 지도를 발전시켜 갔다. 

그렇다면 보물지도 같은 우스꽝스러운 고지도는 무엇인가. 사실, 기독교 문화의 지도 역시 정확한 지리적 정보를 기반하고 있다. 다만, 에덴 동산이 표시되고 지옥의 위치가 포함된 지도가 신화적 색채를 지닐 뿐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탐험이나 교역처럼 실용이 아니라, 지식과 세계관의 표현이라는 종교적 목적을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슬람 지도의 경우 간간히 추상적인 모양을 띄는데, 이는 지리적 정보의 부정확이 아니라, GIS의 개념화로 봐야 한다. 지하철 노선도의 역간 간격이 똑같고 순환선이 직사각형에 가깝다고 지리적 정보의 불완전성을 논하는 사람이 있는가? 

아쉽다면, 그리스에서 발전시킨 찬란한 과학적 관행이 로마와 기독교를 지나며 화석화된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세상 모든 현상에는 물질적 이유가 있고, 세계는 영원불멸한다." 
하지만 이런 불멸적 세계관과 유물론적 자연관은 기독교의 심한 거부감을 자아내어, 그리스적 과학이 풍성히 발전시키기 어려웠던 단초이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이슬람의 실용적 접근법이 아리스토텔레스적 사고방식을 입양하여 잘 양육했기에 그 바탕으로 동-서양의 교류와 대항해시대가 꽃피운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발전이 식민시대와 제국주의의 소용돌이를 촉진하였을 수도 있지만, 다변수 세상에서 단선적 귀책은 의미 없는 일이다. 

책은 논문에 가깝게 건조하여 재미는 솔직히 없다. 하지만, 책장 넘기기가 아깝도록 신기한 고지도의 그림이 풍부한 점과, 안개마냥 모호한 중세 이전의 천문,지리에 대한 깨우침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좀 더 온전하려면 중국과 동양의 천문-지리를 포괄했으면 좋았겠다. 저자들 학문의 일천함인지, 기획단계의 오리엔탈리즘적 협소함인지 난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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