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복

저자 정수복

사회학자이자 파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책은 파리에 관한 가장 풍성한 내용을 적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읽기 시작하자 장소(lieu)와 비장소(non-lieu)를 이야기하고, 니코틴 처럼 파리에 중독되게하는 요소를 "parisine"으로 이야기할 때만해도 잘 골랐다고 환호했다.


그냥 그렇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나가는게 뻑뻑했다. 지나치게 사변적이다. 어떤 개념을 여러 방면으로 곱씹어 다양한 의미 부여를 하는 부분은 좋다. 아니 난 환영한다. 그러나 책은 그냥 중년의 넋두리 같다. 감정과잉에 내부침잠으로 점철되어 있다.


Lieu의 함정
장소(lieu)는 정체성과 정서가 있는 곳이고, 비장소(non-lieu)는 단지 기능만 있는 곳이다. 이 책은 장소를 뼈대로 삼는다. 그래서 정서적 몰입은 필수 요소다. 그러나 개인의 사변 및 인상을 곁들이면서도 경쾌하고 또한 묵직한 글쓰기는 얼마든 가능하다. 잘 적힌 여행기들은 다 그렇지 않은가. 


출신탓일게다
사회학자로서 익숙함을 벗어나, 인문학적 글쓰기를 시도하는 자세는 높이 평가할 만 하다. 그러면, 아예 먹물과 힘을 빼고 가든지, 아예 서현처럼 전공자의 치밀함을 견지하면서 인문적 터치를 하든지 선택을 했어야 하는데 엉거주춤하다. 그나마 김석철의 소년감성 충만한 칭얼거림을 면한 게 다행이랄까.


크게 네부분
글의 첫 뭉치는 파리하면 흔히 방문하는 에펠탑, 노트르담 성당, 몽마르트 등을 이야기한다.
둘째 뭉치는 여행자들이 기피하는 장소다. 슬럼, 묘지, 감옥 등이다. 그 이후는 임팩트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저자가 좋아하는 파리의 뒤안길과 산책 코스 등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흔히 알려진 장소보다 현지에 솥뚜껑 걸고 살며 좋았던 장소에 대한 글을 높이 평가한다. 여행 가이드북이 아닌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정서와 정보가 빼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독자와의 공감을 포기하고 저멀리 혼자 달아나기 바쁘다. 그러다보니, 글 끈 따라 저자 쫓아가기가 버겁다.


지도 펴고 읽은 책
쉴새없이 늘어 놓는 파리 골목 이름이 어지러워, 아예 지도에 표시해가며 저자의 마음을 느끼려 애썼다. 그러다보니, 재미난 경험을 하긴 했다. 대개 해외 도시에 대한 글을 보다보면 환상이 모락모락 자란다. 막상 가보면 여행이 아닌 '짧은 생활'이 되면서 환상과 실제간의 괴리를 느끼게 마련이고. 하지만, 이 책의 설명을 추상하며 골목골목을 돌다 보니 파리 여행이 아닌 파리 산책을 한 듯 현지 사람의 정서를 경험했다. Lieu의 위력이랄까.


수고는 인정
다소 냉소적 평을 했지만, 저자가 발품 팔고, 공들여 쓴 책이라 배운 점도 많다.
에펠탑의 위대함을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으로 파악하는 통찰이랄지, 몽파르나스 묘지에서 느꼈던 '슬픈 화사함'의 공감, 그리고, 일반 여행 책이라면 여간해서 듣기 힘든 파리 코뮌의 흔적을 찾아 다니는 이야기는 매우 인상 깊고, 읽는 동안 신났다. 바라건대 다음 책에서는 'compact'함의 미덕을 갖추면 좋을 듯 하다.


파리에 몇번 가봤는지 모르겠다
주로 출장 길에 잠시 둘러 봐서, 내겐 점처럼 흩어져 있는 파리 지리다. 정수복 저자를 따라 파리를, 관광객이 없는 일상의 길 따라 걸어다닌 느낌이다. 그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하다. 책 읽는 시간은 좀 아깝되, 책 값은 아깝지 않았다. 가족 여행때 파리 꼬뮌의 골목을 걷는게 목표였는데 시간이 없어 못간게 아쉽다.


마지막 단상 하나
시간 날 때마다 곳곳을 다녀도 또 다닐 데가 많은 파리다. 그 사실 자체로 매력이다. 그렇다면, 서울은 어떨까?
곳곳에 장소(lieu)가 있고, 스토리가 있고, 역사와 그 흔적이 있는가? 혹시 관광객이 돈 쓰도록 기능만 작동하는 비장소로 빼곡한건 아닐까?


Inuit Points 
별 셋을 주었다. 읽기가 즐겁지 않고 수십페이지 읽어 몇 줄 건지는 수율이 섭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책은 저자의 감상을 과감히 덜고 반짝이는 독특함만 추려내면 꽤 수작이다. 처음 파리 여행 가는 사람은 이 책 읽지 마라. 파리한번 다녀온 사람은 읽어라. 아련한 정서가 쓸만할 것이다. 어쩌면 다시 또 파리행 비행기를 뒤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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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vivid입니다. 통일된 독일의 수도로서 정치적 기능을 담당하면서, 유럽의 관광객 유치 순위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물론, IFA를 필두로 수많은 전시회와 베를린 영화제, 베를린 마라톤 등 다양한 행사가 손님 몰이에 한 몫을 합니다. 

그러나, 큰 행사를 유치할 만한 베를린의 매력과 힘, 도시 전체를 떠받치는 하부구조가 그만큼 튼튼하다는 반증이기도 하지요.


IFA만 해도 그렇습니다. 약 23만명이 참관한 대규모 전시회입니다만, 제가 가본 전시회 중 가장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전시장 동선이며 곳곳의 식사시설은 대규모 인원이 효과적으로 전시회를 활용하도록 배려되어 있습니다. 특히, 지친 다리와 눈에 쉴 기회를 주는 중앙광장(Sommergarten)은 베를린 메세만의 장점입니다.

교통마저 그렇지요. 숙박은 편하지만, 이동이 젬병인 베가스의 CE Show와 비교해도, 사통발달 뚫려 있는 문과 게이트마다 편리하게 이용가능한 U-Bhan과 택시 등 대중교통 망은 타 도시에 비해 압도적 우위를 보입니다.

무엇보다 베를린이 생생하다고 느낀 점은, 갈 때마다 변모한다는 사실입니다. 처음 갔을 때만 해도, 동베를린 지역인 베를린 성당 근처가 크레인으로 가득했는데 지금은 단정하고 우아한 건물로 바뀌었습니다. 하긴, 베를린 성당 자체가 해마다 변했는데 더 말해 뭐할까요.

카이저 빌헬름 교회처럼,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폭격맞은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는 자세나, 전통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가운데 또 다른 내일을 모색하는 그 모든 것이 베를린의 생생함에 단단히 기여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온갖 외국 음식만큼이나 횡적인 다양성이 있고, 종적으로는 고성과 첨단 현대건축이 거리에 일렬로 스펙트럼을 이루는 베를린은 과연 독일 최고의 도시라 칭하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우리 서울은 이러면 안될까요. 과연 4대강에 쓰는 돈의 10%만 서울에 투자해도 더 아름다운 서울이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누구 못지 않은 전통과, 누구 못지 않은 현대성, 동양과 서양의 감각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국제도시 서울은 언제나 '나 서울이요' 하는 정체성을 갖게 될런지. 베를린에서 잠깐잠깐 느꼈던 도시의 여유가 부러우면서, 자꾸 고국과 고향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1. BlogIcon 칫솔 2010.09.30 12:54 신고

    어.. 저도 이번 IFA에 갔을 때 저 중앙 무대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풀밭에 앉아 구경했습니다. 콘서트를 보면서 그냥 제품 구경만 하지 않고 숨돌릴 여유가 있던 전시회인 것이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또 가고 싶더라구요. ^^

    • BlogIcon Inuit 2010.09.30 22:45 신고

      저도 블로그글 보고 칫솔님이 다녀가신걸 알았네요.
      알았으면 IFA에서 한번 뵈었어도 좋았을걸. ^^

  2. BlogIcon LaStella17 2010.09.30 18:04 신고

    독일의 무서울 정도로 공정한 사람들과 잘 짜여진 법과 맥주가 부럽습니다. =ㅂ=

    • BlogIcon Inuit 2010.09.30 22:46 신고

      엉? 스텔라님 맥주 드세요?
      왠지 맥주랑 안친할듯한 느낌이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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