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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 장비, 관리자 만들기

Inuit 2006. 6. 10. 13:18

그림: 검궁인 삼국지 (www.geomsam.com/tt100)

삼국지 같이 유명한 원전은, 그 내용이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전체의 스토리 라인을 통째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예컨대, 저자거리에서 돼지고기 파는 우락부락한 사내와 시골에서 훈장하던 과묵한 사내가 만나 술을 마시는 지극히 평범한 사건임에도, '바로 장비와 관우가 처음 여기서 만나는구나.' 긴장하고 만남의 디테일에 주목합니다.

그러나 요즘에 제가 삼국지를 보는 입장은 의사결정자라는 측면에서 보게 되더군요.
즉,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개념이 아니라, 어떤 한 장면의 snapshot에서 그 상황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서주성 유실사건은 여러모로 생각해 볼 것이 많은 인상 깊은 장면입니다.
유비 무리가 처음으로 서주성이라는 근거를 마련하고 힘을 키우는 도중, 조조의 계략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성을 비우고 원정을 가게 됩니다. 성의 경비에 비중있는 인물을 기용해야 하는데, 마땅한 인재가 없습니다.
관우는 쓸모가 많으므로 원정에 꼭 필요합니다. 아직 장수기 기갈인 유비 진영에서, 게다가 여기 저기 새로 영입된 인물이 많아 무한한 신뢰를 보낼 사람도 딱히 없으니 그나마 장비가 물망에 오릅니다.
하지만 이때의 장비는 훈련교위 출신이라 전투기술은 좀 갖췄으나, 아직 자기 규율(self-discipline)이 없는 열혈 젊은이입니다. 술 먹으면 꼭 사고치고 부하들 패고 난동이지요.

이때 유비가 단지 의동생이라고 장비에게 맘편히 성을 맡길 수 있을까요. 요즘 말로 하면, 객관적으로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초짜 과장 정도에게 회사가 그간 어렵게 모은 잉여자금을 모조리 싸주고 눈앞에 보이지도 않는 해외 지사에 내보내는 경우인데, 이 의사결정이 쉽겠습니까.

유비는 짐짓 말하지요. 장비야 너는 술먹으면 개가 되므로 불가하다.
장비는 펄펄 뜁니다. 자기를 못믿어 준다고. 그리고 애지중지 아끼는 옥잔을 깸으로서 금주의 맹세를 합니다.
어차피 유비, 대안도 없습니다. 저렇게 해보겠다는데 기를 꺾기도 그렇습니다. 그나마 장비 정신 교육은 잘 된 것 같습니다. 기왕 키워야 할 장수, 믿어 보기로 합니다.

이 부분이 현대 경영학에서 말하는 권한 위임(empowerment)의 진수입니다. 권한 위임은 부하의 장단점을 살펴서 강점 위주로 업무의 권한과 책임을 할당 하는 것입니다. 공통의 목표를 갖고 충분히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러나 종종 간과하는 부분은 coaching입니다. 강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권한 위임을 해도 단점을 커버하지 못하면 큰일을 그르칩니다. 그리고 새로운 권한에 부하는 부담감을 가질 수 있으므로, 상사(leader)는 코칭 프로세스를 병행해야 합니다. 바로 이렇게 장비가 가진 싸움실력과 top management의 신뢰라는 강점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술먹고 자기통제 못하는 단점은 단기간에 보완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딱 들으면 아름다운 스토리지만 결과는 쫄딱 망했습니다. 결국 장비는 '딱한잔'의 유혹을 못 뿌리치고 술에 대취한채 여포의 일가 나부랭이를 패버립니다. 얻어 맞은 조모시기가 쪼르르 소패성으로 달려가 여포에게 성이 비었다고 알려주고, 장비는 여포에게 손한번 못쓰고 서주성을 빼앗깁니다. 유비 일당들 장사 밑천 한번에 털어 먹는 순간입니다.

형수일가도 못구하고 그야말로 혈혈단신으로 유비를 찾아온 장비. 그를 마주한 유비.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유비는 죽고 싶다고 펄펄 뛰는 장비를 말립니다. 우리는 한날한시에 죽기로 했잖느냐. 뭐, 기왕 벌어진 일인데 말이라도 따뜻히 해야겠지요. 하지만, 정말 스스로 잘못했다고 뼈저리게 뉘우치는 사람에게 매몰차게 다그치는 것보다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이 얼마나 그 사람을 키우는지 아는 사람은 압니다. 그리고, 야심이 컸던 유비에게는 일개 서주성 보다는 십만 군사를 호령할 수 있는 대장군이 장기적으로 더 필요했을 것입니다.
결국 장비는 후에 홀로 장판교에 서서 조조의 대군을 막아내고, 엄안을 계교로 사로잡는 등, 용맹과 지략을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평생 유비와 함께하며 어엿한 대장군, 관리자로 커 나갑니다.

현실로 돌아와서 회사나 기타 조직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후일의 장비, 관우가 바로 곁에 있는데 우리는 그를 필부 대하듯 하는 것은 아닐까요. 똑같이 몸이 뚱뚱하지만 동탁과 장비를 구별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 덩지 큰 사내를 동탁이 아닌 장비로 키워낼 수 있을까요.

그림: 검궁인 삼국지 (www.geomsam.com/tt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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