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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

Inuit 2011. 3. 6. 14:17
작년 전세계를 소문과 폭로의 소용돌이로 몰고 갔던 위키리크스입니다. 당시 상당 수의 국내 언론에서는 위키'리스크'라고 불러서 웃음을 참기 힘들었지요. 하지만 그 무의식에는 위험(risk)에 대한 치환욕구가 엿보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누설(leaks)을 근간으로하는 위키리크스 시스템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가 빚어낸 촌극이었습니다.

Marcel Rosenbach

(Title) Staatsfeind Wikileaks

국내에 경쟁하듯 위키리크스 책이 나오고 있는데, 같은 제목의 책이 두권입니다. 그 중 낫다는 평을 받고 있는 21세기북스의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 버전을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비교 평 쓴 풍림화산님이 선물로 주신 책인데, 마침 궁금하던 차에 딱 맞는 책을 골라주셔서 원래 책 읽는 스케줄을 바꿔 받자 마자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부분이 책을 통해 기대 이상으로 해소가 되었는데, 몇가지 포인트를 정리해봅니다.

Is Assange a hero or rogue?
가장 극명한 논란이 있는 부분부터 볼까요? 정보 좌파에게는 게바라보다 더한 정보 혁명의 아이콘이자 영웅이고, 보수 진영에서는 잡아 죽여도 시원치 않은 정보 테러리스트이자 극악한 스파이 무리의 괴수입니다. 과연 위키리크스의 창설자인 줄리언 어산지는 영웅일까요 쓰레기일까요.

이 부분에서 다니엘 돔샤이크 버전과 제가 읽은 슈피겔 기자 버전은 또렷한 대립각을 세웁니다. 위키리크스의 '세칭' 2인자인 다니엘은 어산지와 결별하고 악감정과 실제 사실을 버무려 책 한권을 썼지요. 슈피겔 기자들은 기본적인 시선은 애정이 있지만, 팩트와 인터뷰를 통해 가급적 중립적인 접근방법을 취합니다.

결국 어산지에 대한 평가는 그의 개인적 성벽과 사회적 업적을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해킹과 암호화에 관련된 현대 정보기술의 총체를 모으고, '부패한 엘리트로서의 국가'에 대항해 모든 정보는 공개되어야 한다는 정보좌파의 철학이 만나서 만든 위키리크스라는 플랫폼은 그 존재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새롭게 볼 부분이 많은 시스템입니다. 이미 자체로 큰 영향을 미쳤고, 정보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논점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인간적인 잣대를 들이댄 어산지는 좀 다릅니다. 그는 아직 리더감은 아니고, 전인격적인 부분은 모자란게 사실입니다. 그 다음 화두와도 연관성이 있습니다. 

Was he framed?
기사를 통해 파편적으로만 사태의 추이를 좇던 작년, 어산지가 여성 성추행 혐의로 체포 명령이 떨어졌다는 아이폰 속보를 봤을 때, 전 반사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참.. 너무 속보이게 일도 진행하네. 저렇게 추저분한 혐의로 억지구속을 한다는건 너무 전형적이고 진부하잖아.'
책을 통해 알고보니, 어산지가 빌미를 제공한건 맞더군요. 많은 지식인의 추앙을 받는 그에게 여성 팬들의 유혹이 몰려들었고, 피임을 싫어하는 성벽과 맞물려 여성의 의사에 반한 일부 행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사안에 국제적인 경찰조직이 동원되고 진원지인 스웨덴 담당 검사들마저 사태에 대한 견해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무조건 잡아 들인 부분은 정치적 목적이 매우 또렷했습니다.

요점은, 그는 금전적으로는 검약하지만 삶에 있어서는 자기통제와 거리가 멀고, 사회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이란 점입니다. 따라서 정보지능을 통해 위키리크스를 만들 수는 있었지만, 영속하는 시스템으로 이끌어갈 지혜와 배려는 충분치 않아 보입니다. 현재로서는 위키리크스의 가장 큰 취약점이 그 자신이라는게 아이러니 하지요.

Is Wikileaks a spy platform or a journalism platform?
어산지 개인에 대한 부분보다 제 관심을 송두리째 모은 화두는 위키리크스의 본질에 대한 부분입니다. 상세히 알고 나니 참 재미납니다. 

미군 폭격의 내부 비디오나 외교 전문이 공개되어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미국 정부는, 거의 백년전 방첩법을 도입하거나 이를 손질해 어산지와 위키리크스를 때려잡으려 합니다. 사실 정보의 이동경로와 손실을 보면 스파이짓과 상당부분 유사합니다. 하지만, 정보 유출 경로에 있는 사람과 정보 습득하는 사람이 그로 인해 얻는 명시적 이익이 없다는 점, 피아구분이 전혀 안 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스파이 플랫폼은 분명 아닙니다.

그렇다면, 위키리크스가 표방하는 대로 저널리즘 플랫폼인가요. 그도 아닙니다. 저널리즘은 팩트 기반에 매체의 견해가 담긴 정치적 플랫폼입니다. 하지만, 정보 유통 채널 구축을 통한 기계적 유통과, 정보 제공자의 선의를 인정해 요건을 만족하면 무조건 공개하는 원칙을 가진 기계적 중립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위키리크스가 저널리즘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저널리즘이 되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이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됩니다. 소위 말하는 에디터가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고 공개방식에 있어 왜곡을 가하는 순간, 스스로가 정보권력이 되는 자기모순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냉정하게 봐야 합니다. 위키리크스는 기술적으로는 누출 플랫폼이고, 사회적 함의는 공공 도서관입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누출 플랫폼 (leaks platform)의 존립 근거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서 존경받는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와 닿아 있습니다. 은밀한 곳에서 맴돌이하는 정보는 사회적 후생을 감소시키는 불량자산입니다. 이를 드러내, 잠시 아파도 고쳐서 전체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가치에 근거해 내부고발자는 철저히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간과하면 권력 주체간 싸움을 위한 의제설정에 매몰되어 스파이니 저널리즘이니 함께 헛다리 짚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위키리크스는 절대 저널리즘이 아니라 공공도서관의 역할을 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대개 기자들이 정보를 찾아 의미를 추리고 스토리로 가공해 컨텐츠를 만드는 저널리즘과 위키리크스가 다른 점은 mass pull 방식이란 점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위키리크스 팀이 가장 공들이는 점은 정보의 습득이 아니라 정보의 진위 확인입니다. 대형 건수일수록 조작여부를 꼼꼼히 판단해야 합니다. 또한, 한 두가지의 숨어있는 스토리면 습득 주체에 따라, 첩보, 고발, 특종이 되지만, 수십만 건이 있는 것은 결국 검색에 의해 정보의 본질이 드러나는 아카이브 플랫폼일 뿐입니다. 즉 위키리크스는 정보의 가공과 배포에서 가치를 찾는게 아니라 습득과 아카이빙까지가 정체성이자 가치인 플랫폼입니다.

Is it right to publish hidden information? 
그런 점에서, 위키리크스는 이름이 유사한 위키피디아보다는 오히려 트위터를 지독히 닮았습니다. 본질적으로 대량 폭로 플랫폼이라 모든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폭로하기도 힘듭니다. 그저 세상의 모든 폭로를 아카이빙하고, 누군가 멘션하거나 검색에 응하여 의미를 찾아낼 때까지는 시한폭탄처럼 얌전히 바이트로만 존재하는 시스템입니다.

같은 관점에서 보수진영에서 제기하고 있는, 국가의 중요 정보를 만천하에 공개하는게 옳냐는 질문은 다시 음미해야 합니다. 실제로 극우파 조직의 명단이 공개되어 실질적인 피해를 받기도 했고, 미군 작전 기록의 경우는 내부 정보원의 이름이나 작전의 동선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공개시 많은 죽음과 작전의 진행에 상당한 영향이 미칩니다. 이 점을 공표하는게 옳은가요 아닌가요?

여기에 칼을 긋듯 분명히 답할 수는 없습니다. 트위터만 해도 그렇습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의 혼잣말이 순식간에 유포되어 신문지상을 장식하며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개인의 단견이 RT 되면서부터 새로운 함의를 지니며 다른 이슈로 성장하기도 합니다. 실천적 답은 남이 봐서 우스울 말은 생각도 말고, 생각했다해도 트위터에 쓰지도 말 일입니다. 그러나, 말과 행동은 맥락(context)이 있고 디지털 환경에서 그 컨텍스트가 사라지거나 왜곡되는 순간 생뚱맞은 텍스트만 남아 그 저자를 옥죄게 마련이지요.

다시 위키리크스로 넘어가면 제 견해는 분명합니다. 위키리크스는 기본적으로 누출에 의존하는 기생적 시스템입니다. 초창기 위키리크스 시절처럼 해킹을 사용하지 않는 한, 정보제공자의 선의에 기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 해킹을 한다면 정보좌파에서 정보 게릴라가 되어 현행법의 테두리에서 바로 말살 되기 쉬우니 생각하기 어려운 옵션이구요. 

결국, 정치적 마케팅에 의한 이미지 왜곡이나, 정치적 의도에 따른 법적 구속이 들어가는 상황을 배제하면, 정보제공자의 선의는 비대칭적 정보가 시스템의 후생을 감소시키는 한도까지만 존재합니다. 모든 비대칭적 정보를 저는 말하지 않았음을 강조합니다. 전체 사회의 후생을 감소시키는 은밀한 정보가 상당 수 해소되는 순간 위키리크스는 그 소명을 다하고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 실질적인 해소 메커니즘은 이미 작동되고 있습니다. 오픈리크스를 포함해 상당수의 누출 시스템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고여서 썩는 정보를 원천적으로 막는 사회적 견제장치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분명한 점은, 정보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에 맞는 정보의 공개와 활용에 대한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위키리크스는 명확히 어젠다를 던졌고 세계는 이미 그에 답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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