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작가의 신작에 해당하는 '7년의 밤'을 먼저 읽고 나니, 그의 다른 책은 읽고 싶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글솜씨는 인정하겠지만, 불편할 정도의 몰입감과, 있음직하게 뒤틀린 세계관이 휴식을 위한 독서와 잘 안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권 다 읽은 아내가 전작인 '내 심장을 쏴라'는 보다 가볍고 유쾌하다고 줄곧 말한지라, 작가의 다른 세상을 만나보려 휴가 때 읽었습니다.

정유정

확실히 낫더군요. 인생에 갑자기 변화구가 던져진 '7년의 밤'처럼, '내 심장'도  갑자기 정신병원에 갇힌 사내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돌이킬 수 있다는 점, 실낱 같은 탈출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는 한껏 희망적입니다.

무엇보다 스테레오 타입의 악역은 있을지언정, 뼛속까지 철저한 악인은 없습니다. 그래서 폭력과 증오의 농도도 훨씬 묽습니다. 게다가 수용자들끼리는 큰 틀에서 용서와 화합을 하니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지요.

결국, 열악하지만 물리적 생존에는 큰 지장 없는 곳이지만, 정신적 생존과 자유를 위해 바깥 세상으로의 위험한 동경을 드러내는 자체적 위기구조의 책입니다. 그렇다고 흔한 탈출 스토리와 궤를 같이하지는 않습니다. 우선 치밀한 정신병원 묘사로 인해 다른 무대가 펼쳐 졌다는 점과 무엇보다 정신병원 탈출은 일탈일지언정 위법은 아니니까요.

신작을 먼저 읽고 전작을 읽은 탓에 자꾸 비교하게 됩니다. 신작이 테크닉 면에서는 보다 화려해졌지만, 순박한 주제정신과 몸을 던진 노고의 장대함에서 전작인 '내 심장을 쏴라'가 저는 더 좋네요. 가볍게 읽으면서 마음 한구석의 짐을 스르르 내려놓게 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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