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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경계선에서

Inuit 2013. 9. 8. 10:00
한때 통섭이 유행했었다.

제 과학을 통합하여 인간사의 비밀을 푼다는 것은 분명 근사한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르네상스형 인간이 사라진 시대에 여러 과학을 통합하여 진리를 탐구하기엔, 지식이 넘쳐난다.
대학도 그 준비가 안 되었고, 설령 천재가 있다손쳐도 주어진 시간 내에 섭렵할 지식이 너무 많다.

하지만, 통섭적 연구는 그 거품이 걷힌 지금도, 물밑에서 조용히 진행 중이다.
'통섭'의 저자인 에드워드 윌슨, 그에게 강하게 경도된 저자는 뇌과학에서 출발해 인류사적 입장에서 전환기의 상황을 진단한다.

Rebecca Costa

(Title) The watchman's rattle


책의 주장은 명료하다.

인류의 역사를 볼 때, 절멸에 가까운 파국이 생길 때는 패턴이 있다는 점이다.
첫째, 어떤 문명이 성공에 도움되는 핵심 기술이나 강점으로 번성을 한다.
둘째, 번성에 따른 복잡도가 증가하고, 그에서 야기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방법을 고수한다.
셋째, 그 과정에서 효과가 안 나오는 시점이 있는데, 이 때도 기존의 방법에 집착하는 '인식한계점'에 도달한다.
넷째, 이런 인식한계점 상황에서, 근원적인 해결을 위한 방법을 쓰지 않고 '믿음'을 바꿔 안주한다.
다섯째, 결국 이런 미봉책으로 문제는 다음 세대로 넘어가고 그런 취약성이 누적된 상태에서 가벼운 외부충격에도 그 문명은 절멸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의 인식은 현재 우리의 문명이 절멸 직전의 상황이고, 현대 문명 역시 과거에 찬란했다 사라진 문명들처럼 파국에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분석은 꽤나 적절하며 상당부분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그 전제 이후의 해법과, 책 내용 전개 자체에 대해서는 그리 높은 평점을 못 주겠다.

우선, 파국 패턴의 분석은 회고적이라 십분 수긍이 간다.
하지만, 그 파해법으로 내 놓는게 '통찰'인데 이 부분이 매우 모호하다.
솔루션으로의 통찰과, 망하는 첩경으로서의 '믿음' 사이는 노새와 당나귀만큼이나 유사하다.
물론, 저자는 수퍼밈(supermeme)에 대항하는 지성으로, 통찰에 대한 상세한 정의를 한다.
그러나 개인의 통찰이 아닌 집단의 각성이 중요한데 이 부분에서 층위를 섞어 서술하여 솔루션 측면에서의 동감을 하기 어렵다.

무조건적 반대(irrational opposition), 책임의 개인화(personalization of blame), 조작된 상관관계(counterfeit correlation), 사일로식 사고(silo thinking), 극단의 경제학(extreme economics)를 문명 붕괴 직전의 증상이자 원인인 다섯 가지 수퍼밈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 부분도 당혹스러운게 bottom up식의 관찰인지라 MECE하지 않다. 따라서 읽는 동안은 긍정하며 읽지만 읽고 나면 이게 다일까라는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더 큰 불편함은, 책이 취하는 방식이다. 앞서 말했듯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적 프레임에 지나치게 경도된 탓인지, 논리적 비약을 수사학적 언변으로 때우고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개인적 취향이 반영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내가 '설국열차'에서 느끼던 불편함과 똑 같다 즉, 비현실적 무대장치에 물리적 실제성이 어색하게 뒤섞여 어느 한쪽의 체계도 못 따르고 어정정하니 멈칫거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책은 단단한 학문적 뼈대위에 하고 싶은 말을 죄다 얹어 놓은 구조다.
그래서 쉽사리 부정하고 말 내용도 아니고, 부분부분 논리 전개는 동의할만한 시사점도 많다.
그러나, 결론과 솔루션은 강한 의문부호를 남기며 마침표를 찍게 된다.
여깅 비하면 책 전편에 표방하고 있는, 저자가 스스로 인류 문명의 붕괴를 막을 방법을 찾아 냈다는 메시아적 자신감은 애교다.

문명사의 현대적 적용 같은 부분에 아주 특별한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진화론과 유전학 더하기 뇌과학의 통섭적 포용을 보고프다든지, 디지털 시대의 인류사적 위기와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많이 아쉬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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