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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다큐 본문
오랫만에 매력적인 과학책을 읽었다.
우주비행사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미국 기준으로 보면, 공군 조종사 중 정예를 선발해 우주로 보낸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전국민 대상으로 소동을 벌인 후 엘리트 두명이 선발된 바 있다.
여기에, 영화 '아폴로 13' 같은 내용을 더해 추측하건대, 우주 비행은 '무중력 상태에서 생사의 위험을 걸고 복잡한 조작과 임무를 수행하는 심신의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의 모험'으로 보인다.
Mary Roach
하지만 우주 비행의 실체는 상상과 상당히 다르다.
책은 우주비행의 진면목을 꽤나 자세히, 하지만 복잡한 내용을 해학적으로 조근조근 설명하고 있다.
우선, 무중력은 상당히 문제가 심각한게 맞다.
지상에서의 상식은 전면 폐기해야 한다.
우선 하체로 체액이 몰리지 않으니, 상체는 부풀고 하체는 가늘어진다.
뼈는 중력에 눌리지 않으니 급격히 약해지는 골소실이 생긴다.
더 나아가,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이석이 무중력 상태가 되어, 균형감각이 새롭게 편제된다. 멀미는 필수다.
배변도 어렵다. 힘을 주어도 중력으로 떨어져 나가지 않으니 말이다.
심지어, 과열이 되어도 퓨즈가 작동하지 않는다. 녹아도 흘러내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중력 이외의 부분은 얼핏 드는 생각과는 좀 다르다.
우선 조종술을 볼까.
물론 수동 조종이나 긴급상황 대처에는 비행사의 조종이 필요할 수 있지만, 대개 우주선은 자동으로 조종된다.
실제로, 사람 이전에는 유인원이나 개가 다녀왔고, 조종사들은 이 부분을 싫어한다.
개나소나 조종석에 앉을 수 있다는 점을.
그러면, 왜 공군 조종사 같은 프로파일이 필요한가.
조종 그 자체보다 심신의 능력과 자기 절제, 명령에 대한 복종 등이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러하지만, 요즘에는 심리적, 신체적 특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비행 인원을 선발한다. 꼭 파일럿일 필요는 없다.
자기절제와 명령 복종이라는 부분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
이코노미석으로 10시간 비행만해도 고달픈데, 한 좌석에 며칠 동안 밀폐된 상태로 지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동료들끼리도 마찰이 생기고, 관제센터와도 감정이 상하기 십상이다.
게다가 관제센터에서는 조종사의 모든 생활, 사생활까지도 모니터링해야 하는 상황이다.
당신이 먹는 음식은 물론이고 배변까지도 세심히 신경을 쓴다.
배변이야기가 나오니 말인데, 우주 비행은 악취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소변은 콘돔 형태의 장치로 받아내는데 실수하면 우주복에 오줌이 찬다.
대변은 더 심하다. 초기에는 비닐로 받아내고 중력이 없으니 손으로 끊어내는 형태였다.
이제는 바람으로 빼내는 변기를 사용하는데, 조금만 조준이 잘못되면 막히고 사용이 불가하다.
대단한 선발조건을 갖춘 우주비행사는 우주공간에서 낑낑 거리고 막힌 변기를 뚫어야 한다.
실패하면 밀폐된 공간의 모든 조종사가 60년대 방식의 비닐봉지를 죄다 사용해야 한다.
실제로, 이 배변이 너무 귀찮거나 거북스러워서 짧은 임무의 경우, 아예 변비로 지내기를 선호하기도 한다.
사실, 중력이 없어 의지만 없으면 변의도 느끼기 힘들다.
배변은 물론 심리적 스트레스까지, 짦은 우주비행이라면야 어찌어찌 참고 버티는게 한가지 방법이지만 비행이 길어지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몇개월의 임무를 수행하는 우주정거장도 있지만, 유인 화성탐사는 2년여의 비행이다. 신체와 심리에 큰 타격이 되는 일정이다. 변을 2년간 참을 수도 없다. 그래서, 면밀히 체크하며 인간의 능력과 이를 돕는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우주비행을 중력이 없는 잠수함 상황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매우 다르다는걸 깨달았다.
고립은 공통이되, 잠수함이 우주비행보다 나은 점이 확실히 있다.
유사시 물밖으로 신속히 나와 인간세상과 재접속이 가능하고,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누군가가 모니터링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재미난 점은, 서너군데에 우리나라 이소연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소연의 함장이었던 휘트먼의 이야기기에 딸려 나온건데, 지구 진입시에 큰 사고가 날 뻔했었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에 불시착해서 농부가 살려준 이야기 등은 꽤 흥미로왔는데, 당시 우리나라에서 이소연 착륙시의 위험천만한 일에 대한 보도가 있었던가? 난 기억에 없다.
총평이다.
매우 독특한 소재이고, 발로 뛰어 흥미로운 이야기를 빼곡히 담았다.
전문적 내용을 설명하면서도 재치와 유머가 끊이지를 않는다.
과학 이야기를 이 정도 쓸 수 있는 내공은 정말 높이 평가한다.
그정도 규모가 되는 영어권의 도서 시장이 다시 부럽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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