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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ugal 2018: 10. Era of discovery

Inuit 2018. 2. 6. 17:30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강쪽으로 조금 가면 '발견의 (padrão dos descobrimentos) 나옵니다. 제가 기대를 많이 곳이지요.

 

무슬림이 중동을 장악하고 기독교도의 동방 출입을 통제한건 종교보단 경제적 이해다툼이었습니다. 길이 끊겨 동방무역이 된서리를 맞게 되자 바다의 나라 포르투갈엔 기회가 열렸습니다.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희망봉을 돌아 아프리카를 우회하는 루트를 개척하고, 이어서 바스쿠 가마가 아프리카에서 인도양을 횡단해 고아에 도착한 , 황금의 인도와의 해상 루트를 확보합니다. 계속 동진한 포르투갈은 말라위, 인도네시아 동남아 국가와, 중국의 마카오를 거쳐 유라시아의 극동인 일본까지 갑니다.

 

일본에 미친 영향은 우리가 고스란히 알지요. 빵은 포르투갈 그대로고, 뎀뿌라도 tempora라는 포르투갈 말입니다. 카스텔라도 포르투갈 선원이 전해준 스페인 지방 이름이지요, 까스띠야.

 

해양왕국 포르투갈의 기초를 놓은 사람이 엔히크 왕자입니다. 서열상 왕이 되지 못하니 아예 바다로 에너지를 돌렸지요. 포르투갈이 대외 공세를 취한 사례인 세우타 정복은 좁은 바다 건너 북아프리카 구역을 점령한 것에 불과하지만 의미는 세계적이었습니다. 외침에서 벗어나 포르투갈 제국주의의 시초를 사례이기도 하지만, 바다를 등지고 살던 유럽 열강들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항해왕자 엔히케는 포르투갈 남단 사그레스 지역에 항해학교를 설립하고 천문, 해양 선박 기술을 육성합니다. 토대 위에서 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가 열린 거지요. 물론 엔히크는 시대와 지리로 읽어야 합니다. 왕권과 포르투갈의 이익에 복무했을 , 대중과 이성 또는 합리에는 관심이 없었지요. 저는 그의 업적으로 그를 기억합니다.

 


나온 김에 알고 보면 좋은 포르투갈의 상징 하나를 소개하면, 장식 달린 십자가를 로고로 사용한 그리스도 기사단입니다. 그리스도 기사단은 템플러인 성전 기사단의 일파였다가 포르투갈 왕실의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교황청의 허락을 받고 분리했습니다. 그리고 급속히 포르투갈화 되어, 왕이나 왕가의 일원이 기사단장이 되어 바다 개척의 중심 조직이 되었습니다. 말이 기사단이지 해적단 항해단이지요. 따라서 그리스도 기사단의 십자가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비롯한 모든 마누엘 양식의 필수요소이기도 합니다. 재미난건 현대에도 그리스도 기사단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포르투갈 대통령이 명예직으로 단장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발견의 탑에 올라가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바다같이 트인 테주강과 멀리 리스본 시내, 고요하고 아름다운 벨렝 주택지, 멀리 가물거리는 대서양이 파노라마로 보입니다.. 그리고 영예와 욕망이 뒤얽힌 잠시의 찬란한 역사. 아래로 보이는 해양 진출의 역사 지도가 아련합니다.

 


대서양 근처라 비가 수시로 오락가락 하긴 했지만, 해가 제대로 나니 만물에 부서지는 햇살이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그레고리우스가 덜컥 리스본에 왔다가 이내 후회하고 베른으로 돌아가려던 , 리스본의 따사로운 햇살에 마음이 녹아 주저앉는 에피소드는 리스본을 사람만이 절절히 공감할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발견의 탑과 인근에서 물과 하늘 그리고 공을 주고 받듯 랠리를 하는 햇살과 바람 속에서 무한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바르셀로나 여행 우리 가족 최고의 모멘트는 maremagnum 나무 데크였던것 처럼, 리스본 최고의 순간은 벨렝의 강변이 되었습니다. 역사와 의미보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의 교감이 그리도 중요하네요.

 


발견의 탑에서 테주 강을 따라 서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벨렝 탑이 나옵니다. 런던탑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수도 방어의 요새였습니다. 대서양에서 리스본으로 들어오면 테주 강이 좁아지는 목을 반드시 지나게 되어 있는데 바로 위치에 대함 포격이 가능한 벨렝 탑이 있습니다. 이건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의 히사리도 마찬가지 입지입니다.

 


외부관계에 있어 대부분 평화로운 탑은 대내적으로는 내내 바빴던 탑이기도 합니다. 또한 런던탑과 마찬가지로 감옥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상징적으로 가장 극악한 형이 벨렝 지하 감옥인데, 가보면 극형인지 압니다. 강이 바다와 가까워 조수 간만의 차가 큰데, 지하 감옥은 만조 물이 차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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