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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이성복 아포리즘

Inuit 2024. 7. 13. 08:36

이성복, 2001

 

격언이나 경구란 대신, 아포리즘이라는 생경하고 다소 나른한 어감의 짧은글 묶음입니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못한다.

 

상상력 풍부하고 절제감 단단한 부제에 이끌려 덜컥 질렀는데, 이런 보석같은 문장을 만나려면 잔디밭에서 보물찾듯 상당한 공을 들여야합니다.

 

짧더라도 내재된 내러티브와 미장센이 있는 시와 달리, 맥락이 흩날리는 문장들 묶음이기 때문이지요. 심하게 압축된 추상적 시의 난해함과는 다른, 용도가 다른 퍼즐 조각들인데다가, 나머지 퍼즐 피스는 아예 없으니 그저 문장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연, 저자의 습작 낙서장이라 보면 맞습니다. 세공한 맞는 목걸이에 끼우기 초벌 가공된 원석들을 그러모아둔 상황이니까요. 이리보면, 저자가 사유를 개발하는 모습, 문장을 다듬는 과정을 어렴풋이 느낄 있습니다.

 

시나 광고카피처럼 함축적 문장을 쓰고 싶은 분에겐 좋은 길잡이가 수도 있겠어요. 아래 문장들은 제가 읽다 생각나 적은 습작들입니다.

 

 

두드린다고 문이 열릴지 모르겠지만,
두드리고 있는 자만이 문이 열릴 바로 있다.

나는 가능성의 현가 할인인가,
죽음은 가능성의 만기인가.

유지를 위한 기도는 소박하고
반전을 위한 기도는 간절하다.

새신랑처럼 어색하게 사는 인생,
구태여 세련된다면 어찌 인간적일까.

 

다음은, 제가 두고 보려고 옮겨둔 이성복의 문장들입니다.

 

위증의 시대, 지성이 치러야할 노역은 거짓 명제를 기소하고 그것을 살찌우는 맹랑한 질문을 뿌리 뽑는 것. 예컨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달리 네가 무엇을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예술에 있어 새로운 주제란 없다.

영원한 주제의 새로운 체험만이 문제다.

내용에 의해 위협받고 그때문에 항상 긴장해있는 형식이 아니라면 죽어버린 형식이다.

자유의 극단은 형식의 창조에 있다.

너의 불안은 신의 요람이며, 너의 안정은 신의 무덤이다.

시인의 죄는 유사진실을 형상화 함으로써 진실을 은폐함에 있다. 여기서 진실을 고통으로 치환해도 무방하다.

절망함으로써 존재하는 비결.
한쪽 발을 땅에 내림으로써 비로소 다른 발이 공중에 선다.
Eli Eli lama sabachthani.

괴로움은 '거기' 있다. 나는 무심코 지나치거나, 스쳐 아플뿐이다.

- 심연으로 급히 떨어지며 물위를 스치고 날아오르는 새의 날개에 묻은 물기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한가지 위안 - 기쁨이 덧없다면 슬픔도 그러할 것이다.

생각해보라.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절망은 치유할수 없는 죄다. 그것이 게으름과 무감각을 불러오기 때문.

희망은 맹목적인 의지나 신념과는 다르다. 깨어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이다.

게으른 도덕주의자는 고뇌하는 악인 이상으로 퇴폐주의자다.

천국에는 희망이 없다.

좋은 의미의 의식은 무의식의 숨구멍을 터준다.

애정은 뜨겁기 때문에 식는 것이다.

새들의 비상은 오직 공기의 저항 때문에 가능하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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