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정본 백석 시집 본문
1️⃣ 한줄 평
말라죽어가는 한글 체언에 숨을 불어둔, 백석
♓ Inuit Points ★★★☆☆
백석 시 전체를 고형진이 공들여 엮은 우리말의 보물 창고입니다. 고고학적 유물을 발굴하듯, 시 한수 한수를 먼지 털고 빛 내어 모양을 잡아 현대 국어로 닦아두었습니다. 우리말인데도 영시 읽듯 한번에 읽히지 않지만, 곱씹다보면 들꽃 같은 단맛이 나는 시입니다. 별 셋 주었습니다.
❤️ To whom it matters
- 우리 입말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은 분
- 근대 문학과 작가들에 흥미 많은 분
🎢 Stories Related
- 리뷰는 간소한데, 여기 적어둘 스토리가 더 많습니다.
- '월북작가'로 한국 문단사에서 지워졌다가 해금되었지만, 정확히는 월북이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간 재북 작가입니다
- 정주 출신으로, 평안도나 이북 사투리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 사진 보면, 요즘도 통할만한 미남입니다.
- 흔히 알려진 자야는 그의 영혼의 사랑이 아니라 허언에 가까운 리플리란걸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 '천억원도 백석의 시 한줄에 못하다'는 명언과 함께 평생 운영한 요정 대원각을 시주해 길상사를 만든 자야 말입니다
- 이남의 백석 명소는 통영입니다. 그의 첫사랑, 절친에게 탈취당한 사랑 란(박경련) 때문에 자주 갔고, 마음이 오래 머문 도시죠.
- 통영이란 제목의 시만 세편, 그리고 란을 생각하며 쓴 시가 또 여러편입니다.
백석 지음, 고형진 편, 2007
🗨️ 좀 더 자세한 이야기
백석은 해금 이후 유명해졌으니, 이름만 들어보고 잊고 지냈었습니다. 시를 적극적으로 읽은 후, 다음 읽을 시집을 묻다보면 추천이 백석으로 귀결되더군요.
그의 글이 좋아서 야금야금 읽기도 했지만, 실은 빨리 읽히지도 않습니다. 시가 서른 단어면 열 낱말은 모르는 말일 정도로 생소한 말이 많습니다. 일단 휘리릭 읽고, 꼼꼼히 달아둔 주석으로 단어를 배운 후 다시 읽는 식으로 읽다보니 야금야금 읽게 됩니다.
편자 고형진의 말처럼, 그의 시는 독특한데 특징이 있습니다.
방언과 고어를 무작정 내지르는게 아니란 점입니다. 경성에서 신문사 근무를 했을 정도라, 표준어를 구사할 줄 알고, 실제 그의 시는 표준어로 되어 있습니다. 다만 명사, 대명사에서 일부러 방언과 고어를 사용합니다. 편자의 말대로, '소월이 우리말 선율을 살렸고, 지용이 우리말을 조탁했다면, 백석은 우리말을 채집'해 두었습니다. 시를 통해 정경을 노래하며 모국어를 확장하려 분투했던 거죠.
또 다른 특징은, 백석 시의 독특한 정서입니다. 구문을 각별히 사용했기 때문인데요. 길게 덧붙여 구수하게 이어지는 시는, 타령이나 판소리 혹은 사설같습니다. 그래서 그가 느낀 사람, 시골, 풍경과 외로움의 정서가 구수하고 진하게 전해지지요. 특히 그의 독특한 기행시에선, 현지 말과 지명등이 나오며 흑백 영화를 보는 느낌도 듭니다. 기행시 연작인 남행시초, 함주시초, 서행시초 다 인상 깊습니다. 이중 제가 알고 갈 수 있는 남행시초를 가장 좋아하고요.
이 뿐만 아니라, 백석의 시에 나오는 의성어, 의태어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장글장글 쇠리쇠리 쩌락쩌락 사르릉쪼로록 어득시근한 디퍽디퍽 흥성흥성 껑추렁 기드렁
읽다가 좋았던 시가 많습니다.
제목부터 모던한 '나와 니타샤와 흰 당나귀'도 좋지만, 이 작품을 시화로 낸 동료 화가 정현웅과 연관된 시도 좋습니다.
북방에서 -정현웅에게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扶餘)를 숙신(肅愼)을 발해(渤海)를 여진(女眞)을 요(遼)를 금(金)을
흥안령(興安嶺)을 음산(陰山)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중략)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영화 같은 시도 있어요
여승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전판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