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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종이 동물원

Inuit 2024. 12. 28. 08:54

1️⃣ 한줄 

리우였다

 

Inuit Points ★★★★☆

SF 균형감은 과학기반의 상상력과, 소설로서의 탄탄함 간의 겨루기입니다. 굳이 S F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 S. F 쪽엔 이야기꾼이 많지만 S 과학적 소양이 필요해 후보군이 적으니 말이죠. 리우는 과학과 소설,  둘을 잡았습니다. 현존 과학의 한계 내에서 사유하는 독자에게 , 매혹적인 세계를 던져줍니다. 이야기를 뽑아내는 솜씨도 말끔해, 내러티브와 스타일적 구성이 좋습니다. 최애작가가 리우인지 확실히 보여줍니다.

 

❤️  To whom it matters

  • SF 모르는데 한권만 읽고 판단하고 싶은 사람
  • 테드 후속작 기약없이 기다리는 사람

🎢 Stories Related 

  • 책은 단편소설 14개를 묶어둔 겁니다.
  • 단편집의 제목으로 채택된 소품 '종이동물원' 휴고 , 네뷸러 , 세계 환상문학상을 동시에 석권한 최초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 리우 이전 최애 SF작가인 테드 창을 오마주한 내용이 리우 글들 군데군데에 나옵니다.
  • 76년생 리우는 중국 태생의 문이과 통합형 인재입니다.
  • 하버드 영문과,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래머, 하버드 로스쿨 졸업후 변호사를 거쳤으니 SF 딱이죠.
  • 그는 화제작 '삼체' 영문판 번역가이기도 합니다.
  • 리우는 무명시절 10년을 버텨 종이동물원으로 깜짝 알려졌습니다.
  • 저는 후속작인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먼저 읽었습니다.
  • 시기적으로 앞선 작품들은 순한 맛인 대신, 초년 작가의 풋풋한 치열함이 느껴져서 정이 많이 갑니다

Paper menagerie and other stories

Ken Liu, 2011

 

🗨️ 좀 더 자세한 이야기

책속 단편이 네개니 크게 한번 갈라봅니다.

  • 과거와 현재, 역사에 관한 이야기
  • 개인의 용기에 관한 이야기
  • 스팀펑크
  • 마술적 사실주의
  • 우주적 확장 이야기
  • 기타

가장 마음을 사로잡은 이야기는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이들(The man how ended history)'입니다. 양자얽힘 현상을 이용해 과거를 있는 장치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기술의 제한으로 특정 시점과 공간을 보면 다시는 부분을 없습니다. 또한 육안으로만 관찰 가능합니다. 그리고 소설의 주된 과거 무대는 731부대, 마루타 실험입니다.

 

이제 과학이 제약을 벗기니, 관행적 현실에 던지는 굵직한 물음이 나옵니다.

우선 역사의 영유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731 역사의 주체는 어디인가요? 점령국 중국, 악행을 저지른 일본, 당시 정부의 후계인 대만, 대체로 지역의 주인이었던 만주국, 실제로 주민이 많았던 조선 이중 누가 역사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까요.

과학적 장치로 얻은 역사적 가치는 어떠한가요? 완벽한 사실 정보이지만, 재현불가능하고, 과거를 다녀온 사람의 기억에 의존하는 증거는 역사적 증거가 있나요, 없나요.

 

이런 축을 바탕으로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매우 현실적인 주장들과 현실적인 정치적 결론들이 나옵니다. 제가 글을 가장 좋아했던 이유는 이렇습니다.

"진실은 연약하지 않고, 부정한다고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진실이 숨을 거두는건 아무도 진짜 이야기를 하지 않을 때이다."

참고로 글의 내용이 동아시아엔 불편할정도로 도발적이라 일본판 리우는 아예 통으로 들어냈고, 중국은 뭉텅뭉텅 부분 삭제를 했으며, 한국과 대만만 온역을 했다고 합니다. 제발 저린게 영유권의 방증일까요. 소설의 내용이 얼마나 현실과 닿아있는지 새삼 생각합니다.

 

'시뮬라크룸' 위의 '종지부..' 같이 읽으면 흥미롭습니다. 아버지의 어떤 순간에 딸이 실망하고, 부녀간 사이가 세월따라 벌어져만 갑니다. 이야기속엔 행동의 본질을 복제하는 VR장치가 있는데, 아버지는 사이가 벌어지기 어린 딸의 모습을 내내 돌려보며 안타까워합니다. 말미쯤 가면, 딸은 아버지가 자기를 어린시절로 가둬놓고 혼자만의 사랑을 한다고 질책합니다만, 실상 자체가 아버지를 인생 한순간에 가둬놓고 미워하는 셈이 됩니다. 소설의 테제는 이겁니다.

"인생이란게 사건 하나로 인물을 재단할 있는가?"


'송사와 원숭이 왕(The litigation master and the monkey king)'은 켄 리우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일 겁니다. 동서양의 지적 소양과, 지식인의 문제 의식에서 한 톨이라도 모자람이 있다면 전체가 와르르 무너질 이야기니까요. 

"알았는데도 침묵하는 것은 결국 동조다." 

평범한 사람이 특별한 순간에 맞닥뜨리는 선택과 결심 그리고 역사의 머나먼 인과에 대해 눈물나도록 아름답게 풀어냅니다. 막판 소소한 반전은 동아시아 사람들에겐 짜릿할테고요.

 

좋았던건 '(the waves)' 비롯한 우주 확장 스토리입니다. 모종의 이유로 지구를 버리고 다른 행성으로 탐사, 탈출하는 스토리인데요.  특히 파는 대단합니다. 이야기속 SF장치는, 인류가 영생의 비밀을 풀었다는 겁니다. 순간 지구는 선대가 자리를 비우지 못하니 후대의 자리가 없는, 인구가 폭발하는 좁은 배가 됩니다. 이후 이런 저런 경로로 인류가 진화를 가속화합니다. 결국 진화의 후반 단계는 모종의 지성체가 되는데, 이게 우주론에서 예상해보는 진화단계입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육체란 하드웨어가 유전되는게 아니라, 지성만 유전되고, 지성이 외기와 엔트로피 준위 차이를 유지하지 못할 유기적 절멸로 간주하는거죠.

 

책의 제목이자 리우의 출세작인 '종이동물원' SF냄새가 옅습니다. 마술적 사실주의에 중국 양념 추가랄까요. 하지만 그래서 대단한 완성도입니다. 언어적 장벽을 교묘히 이용해, 순식간에 읽다보면 이민자 가정의 일들을 체감하게 됩니다. 이민자나, 이민자가 사람이나, 주변에 이민자가 있는 모두에게 생각할 포인트를 던집니다. 반전이나 과한 자극없어 매력적인 작품이죠.

 

하나를 언급하자면 레귤라(the regular)입니다. SF라기보다는 스릴러같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추리소설의 형식이지만, 막판의 육박전때는 느와르 느낌도 나서 재미납니다. 과학적 장치는 현존 기술에 가까워 S보다 F 몰빵해서 인상적입니다. 스타일을 정립하기 작가의 치열한 풋풋함이 느껴지니까요.

 

언급하자니 지나치게 글이 길어져 여기서 줄입니다만, 저는 거를 타선이 없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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