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 시대에 바닷길이 열리고, 각 나라는 앞다투어 배를 띄워 탐험과 통상에 나섰지요. 그 때, 가장 문제가 된 것이 항법(navigation)이었답니다. 배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데, 위도는 북극성과 수평선과의 각으로 쉽게 측정이 가능했지만, 경도를 알아낼 방법이 없어서 항해에 큰 문제가 되었던 거지요. 실제로, 경도 측정이 가능했으면, 콜럼버스가 미국에 도착후 인도에 다왔다고 집으로 돌아갈 일은 없었을 것 입니다. ^^;

그래서, 당시 바다를 주름잡던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의 국왕들이 거액의 상금을 내걸고 경도를 측정할 방법을 공모했답니다.
결국, 170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바로 시계공 John Harrison이란 사람의 덕이랍니다. 이 사람은 평생을 걸려 강풍이나 험상궂은 날씨에도 정확한 시간을 나타낼 수 있는 시계(정확한 이름은 chronometer)를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서 시계공이 경도를 측정하는 기계를 발명했을까요?
두개의 시계를 가지고 타서, 한 시계는 그리니치 기준시에 맞추고, 다른 시계는 매일 낮에 해가 중천에 떴을 때를 정오로 맞추면 바로 두 시계의 차이가 런던에서 상대적 경도가 되는 거지요.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재미 없는 경제학 책에서 읽은 사례입니다.
즉, 아이디어를 사는 시장이 없는 상태에서는 평생을 공들일 만한 노력을 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국왕의 특별 포상같은 유인이 없는 한 인류 전체를 진보시킬 수 있는 대발명은 나오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인류의 기술 발전에 대한 재미있는 비유가 있습니다.
역사를 100야드인 풋볼 경기장에 비교를 하면, 처음 인류가 나와서 돌들고 --; 사냥하러 다니던 때를 한쪽 끝이라고 하면, 그로부터 99야드를 내내 수렵과 채집에 의해 살았답니다. 그리고, 서기 1년은 마지막 7인치에 해당하고, 산업혁명은 마지막 1인치에 해당한답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을 미개하게 살았을까요?

경제성장론자들은,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기 시작한 이후로 기술 발전이 급격히 늘게 되었고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아이디어의 독점적 사용을 보장해주고 그것을 팔수 있는 시장이 생기게 된 후에 지속적 성장으로 급격한 국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거죠.

지적 재산권의 영향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by 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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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qnseksrmrqhr 2009.09.30 13:43

    인센티브가 지금의 지적발달을 가져온 근본적인 까닭이 되었다니 아무래도 사람은 공적인 사유보다는 개인적인 편익을 본능적으로 생각하게끔 되어있는 갈대인가 봅니다.

    • BlogIcon Inuit 2009.09.30 21:44

      네. 역사를 굴린 원동력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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