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만한 누군가의 추천이 없었다면 쳐다보지도 않았을겁니다. 크고 다양해 복잡한 중국을 한칼로 정리하는 내용을, 대락 졸업 무렵의 청년 저자가 썼습니다. 중국어도 할줄 모르고, 중국에서 공부나 살거나 직장을 가진것도 아닙니다. 그냥 슬로우 뉴스에 기고하면서 그간의 의문점을 차분히 공부했다는게 다입니다.

 

임명묵

그러나, 그 추천해준 분이 누군지 지금 기억이 안나지만 아주 고맙습니다


중국을 이해하고 싶어, 약간의 글들 읽었지만, 현대 중국은 까막눈에 가까웠습니다. 단편적인 기사와 '중국통' 알려준 파편화된 퍼즐조각들만 수두룩했습니다. 책을 읽고나니 퍼즐이 맞춰지면서 그림이 또렷이 드러났습니다.

 

내가 궁금했던건 시진핑은 갑자기 시황제로 등극했는지, 일대일로인지, 나가던 보시라이를 때려잡은 이유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근원적 통찰인데, 기사의 피상적 분석으로는 감질나는 갈증상태였습니다. 책은 부분에 합리적인 생각의 틀을 제공합니다. 흔히 나오는 태자방 - 상하이방 - 공청단의 권력싸움 이면의 입체적 역학관계를 정리해두었기 때문입니다.

 

문혁 vs 천안문

현대 중국의 캐릭터, 나아가 국가적 행보의 보폭과 방향까지 영향 미치는 두가지 트라우마가 문화혁명과 천안문 사태입니다. 공산당은 자유진영의 거울상이므로, 극좌가 보수파고 중도우파는 진보적 스탠스입니다. 진영의 세력 균형에 따라 좌우로 스윙을 하지요. 중국 공산당의 태두인 마오쩌뚱은 문화혁명을 통해 씻을수 없는 상처와 거대한 퇴보를 남겼습니다. 이를 치유하고자 개방의 길로 나서며 중국을 발전시킨 덩샤오핑은 민주화 요구에 의해 천안문사태를 겪고 우방한계선을 긋습니다.

 

덩샤오핑의 3 유산

마오쩌뚱의 야만적인 문혁을 목도한 덩샤오핑은 선부론, 집단지도체제, 도광양회라는 메시아적 처방을 내놓습니다. 엄청난 우회전이었지요.

 

장쩌민의 신권위주의

덩샤오핑은 천안문사태를 겪으면서 당이 설정한 마지노선은 절대 넘을 없음을 천명합니다. '중국식 사회계약'입니다. 권력을 이어받은 장쩌민은 이를 공고히 합니다. 경제는 자유화하되 정치는 통제를 강화하는 신권위주의론을 정립합니다. 그리고 그전 -우인 균형파와 건설파 힘겨루기의 결과로 세력이 없는 중도파로 선임된 장쩌민은 출신지역인 상하이 출신 인재를 대거 등용하면서 상하이방이 결집되게 됩니다. 상하이방은 동해연안의 선부론적 성향이겠지요.

 

후진타오는 시진핑을 위한 동력이었다

장쩌민은 후진타오에게 자리는 넘겼지만 권력은 넘기지 않았습니다. 권력의 속성이란게 나누기 쉽지 않을 뿐더러, 공청단의 후진타오는 내륙의 개발과 민영기업 주도의 발전이라는 상하이방 이익에 정면으로 대립하는 이념을 갖고 있었으니 이양의 시기는 하염없이 늦어졌지요. 그래서 건국공신의 자손들이자 '기득권' 태자방의 시진핑에게 자리와 권력을 미련없이 줍니다. 상하이방과 장쩌민의 괴롭힘이 지긋지긋했겠지요.

 

결국 시황제

따라서 시진핑은 집권후 덩샤오핑의 3 유산에 전면적 수정을 가합니다. 해안가부터 부자되어 나라의 경제를 이끌자는 선부론은 다같이 잘살자는 공부론으로, 전임자의 그림자가 남아 아무것도 못하게 집단지도체제는 1인중심체제로, 조용히 힘을 기르자는 도광양회는 중국도 국제무대에 나서는 신형국제관계로 대체됩니다

그럴것이, 중국이 이제 경제적 성장이 이뤄졌으므로 균형 발전의 프레임이 필요한 상태니까요. 마오쩌뚱 때처럼 독주하기엔 개방과 상호의존성이 커졌으며, 국제적 위상에 걸맞는 역할과 기여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고요. 일대일로가 결과로는 제국주의적 행태지만, 구상은 고육책이었다는 점은 제가 그간 일대일로 보며 의아했던 점이 풀리는 지점이었습니다.

 

Inuit Point ★★★★★

문체는 매우 건조하여 역사 교과서를 읽는 느낌입니다. 사람따라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문체의 즐거움이 목적은 아닌 책이고, 어느 정도는 이런 건조함 덕에 역사적 사실관계의 파악이 용이한 장점도 있습니다. 분명히 중국에서 한발 물러난 입장의 저자이지만, 그렇기에 무감하게 학자적 접근으로 난마속 쾌도질이 가능했을 같습니다. 읽고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은 오랜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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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심천 갔을 때 가이드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저는 한국 여행객들 많이 모시다보니 돈 쫌 벌었습니다.
그분들은 딱 보시면 아시나봐요. 여기쯤 땅사면 좋겠네~
처음엔 안 믿었는데 진짜 딱 맞더라고요.
그래서 샀더니 몇천만원 벌었습니다.
중국 생활 수준에 한화 환산 몇천만원이면 큰 돈이지요.
저 말이 사실이라면, 가이드 팁보다 예지를 얻기 위해 무료로라도 봉사할 만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발전이 우리나라를 무척 닮아가고, 그러나 매우 압축해서 쫓아오고 있나보다 느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Duncun Hewitt

(원제) Getting Rich First

자기매몰적 제목입니다. 사용성(usability)은 IT업계만의 문제는 아닌게지요. 읽을 사람 생각하지 않고 쓰는 사람 입장에서 지은 듯한 제목이니 말입니다.
저는 이 책을 신간 소개 리스트에서 본 적 있고, 무슨 재테크 책 쯤 되리라 생각해 잊었습니다. '비즈니스는 이메일로 완성된다: SEND' 추천사로 인연을 맺은 랜덤하우스에서 신간 소개차 보내 주신 이후에야 목차를 들쳐보았습니다. 중국 출장에 가져갔고, 충실한 길잡이로 역할을 했습니다.

사실 '선부론'은 덩샤오핑이 1978년 주창한 개념이고, 지금의 중국을 있게한 근간입니다.

능력있는 자가 먼저 부자가 되고, 그 효과를 확대해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건설하자.
결과로, 질곡에 빠져있는 중국 경제를 일으켰고, 엄청난 관성으로 질주하게 만들었지요.
저도 이번 출장에서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상상만으로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중국은 나날이 변모하고 있습니다.
사실 마오쩌뚱 시절의 중국 모습을 잊을 수 있다면, 그냥 70년대에서 90년대 한국이 하나의 나라에 횡으로 펼쳐져 있다고 보는게 더 이해가 빠릅니다. 부동산 투기 열풍, 전통의 붕괴, 도시 형성과정, 소외되는 노동자와 불비한 복지, 혼란스러운 성문화는 물론 교육 과열까지 30년 근래의 한국 어느 시점을 뽑아 들어도 항상 대응가능할 정도입니다. 황해 건너로 지역을 이동했다기보다 시점만 과거로 옮긴듯한 착각입니다.

농촌형 경제의 동양적 발전 모형인지, 동양 경제의 서구형 발전 과정상 필연인지 좀 더 고민해볼 주제입니다만, 제 보는 관점에서 우리나라를 닮아도 참 많이 닮았습니다.

결국 덩샤오핑의 선부론은 예상보다 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반쪽의 성공입니다.
능력있는 자가 먼저 부자가 되도록 족쇄를 풀긴 했지만, 그 효과를 확대해 모두가 잘 살지는 못하고, 앞으로도 요원해 보입니다. 빈부와 동서 가치관과 문화가 혼동스러운 형국입니다. 문화혁명 당시 펜을 놓고 혁명전선에 나섰던 세대들은 민영화와 효율화의 기치아래 실업자가 되어 끼니를 걱정해야 합니다. 글로벌 스탠다드나 자본주의적 프레임에서는 국가도 기업도 이들을 돌보기 힘듭니다. 혁명 엘리트로 자부하며 살던 세대들은 그전 세대와 마찬가지로 단절적 문화 충격을 감내해야 합니다.

선부론을 읽기 전, 그리고 중국 출장 전까지 제가 갖고 있던 중국의 미래 가설은 '자유 통제의 위기'였습니다. 우리나라처럼 bottom-up 시민 사회화를 겪지 못한 어려움을 극복하는데서 음속 장벽을 겪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 부분은 제 생각보다 순조롭게 음속을 돌파 중이라고 보입니다. 물론 베오그라드 중국대사관 오폭 후 청년 시위처럼, 아직 자유화 관련한 불씨는 더 지켜봐야 합니다. 서양에서는 관제 데모를 우려했지만, 중국 정부는 시위확산의 통제에 속앓이를 했으니까요. 천안문 사태는 결코 작은 생채기가 아닙니다.

이제 제가 눈여겨 보는 관전 포인트는 'spectrum length의 위기'입니다. 선부(先富)의 과속으로 양극간 스펙트럼이 엄청 길어졌습니다. 과거 중국의, 똑같이 못살지만 갈등없던 시절의 장점은 기대하지 못하게 된겁니다. 동서의 경제 발전, 빈부의 격차, 신구세대의 조화 등 이슈가 민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중국 정부의 '엘리트 관료주의'가 또 한번 빛을 발할지 두고 볼 일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두 책이 떠오릅니다.
첫째는 Nicholas Kristoff의 '중국이 미국된다'입니다.
저자가 저널리스트이고, 실제 현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선부론' 역시 매우 생생하며 제법 깊이도 있습니다. 컬럼이라기 보다는 르포 형식이고, 역사책이라기 보다는 사진첩 느낌입니다.

둘째는, '
대국굴기'입니다. '대국굴기'가 엘리트 지도층의 제국주의적 야심을 드러냈다면, '선부론'은 서민의 격동을 담아냈습니다. 어떤 이는 총체로서의 야심을 두려워하고, 어떤 이는 휴머니티로서의 중국을 사랑하지만 두 모습 모두가 중국입니다.

한국 교역의존도가 20%를 훌쩍 넘어가고, 숨막히게 우리나라의 기술을 쫓아오는 중국입니다. 수조원대의 기술 유출 사고의 진앙지이며, 유해 음식이나 짝퉁상품으로 안 좋은 인식도 많은 중국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랬듯, 중국도 음울하고 너저분한 시절을 어떻게든 통과할 것입니다.
과연 그 시점에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다시 조공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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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이승환 2008.04.28 19:52

    아, 정말 어떻게 먹고 살죠, 한국 발전을 보나 중국 발전을 보나 관료의 힘이란 건 참 대단한 듯 싶습니다. 물론 지금처럼 고도화된 사회 경제를 관료가 주물럭거리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지금처럼 자꾸 이상한 아젠다만 가지고 왈가왈부할 때는 아닌 것 같네요. 독재니 뭐니 해도 적어도 중국은 국가 경제 전체의 합리적 자원배분을 성공적으로 해 나가고 있는 듯 한 중국이 (그 부분만-_-) 부럽기도 합니다.

    • BlogIcon inuit 2008.05.01 22:06

      기회되면 중국의 정치 시스템을 깊이있게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덩샤오핑 이후는 특히 눈부신 면이 있는데 말이지요.

  2. BlogIcon 쉐아르 2008.04.29 02:24

    inuit님 글을 읽으며 새삼 중국에 대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가지 실험이 벌어지고, 그 결과가 어떠한지 알 수 있다는 면에서도 그렇고, 현실적으로도 중국을 빼고는 경제를 논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생각에서도 그러네요.

    "능력있는 자가 먼저 부자가 되고, 그 효과를 확대해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건설하자." 전 앞부분에는 동의하지만, 먼저 부자가 된 사람이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만들수 있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질 못할 것 같습니다. 인간의 속성에 반하니까요.

    • BlogIcon inuit 2008.05.01 22:09

      네. 인간의 이기적 속성을 어떻게 모아서 긍정적으로 변환하느냐가 숙제겠지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가 일정부분 실패한 경험이 있으니까요.
      종교적 프레임웍이 동원되어야 할까요..

  3. BlogIcon mode 2008.04.30 11:47

    어쨌거나 시간이...

    ^^

    이런정도랄까요.
    중국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생각보다 깊고, 깊이보다 얕게, 상상보다 현실이
    더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점장이 빤스도 이해못할 복잡함이 숨어 있겠고

    우리나라, 아마도 지금은
    그 복잡함에 미래를 예측할 수 없지 않은가 싶습니다.

    • BlogIcon inuit 2008.05.01 22:10

      그런점에서 mode님이 직접 중국에 방문 한번 해주셔야겠습니다.
      날카로운 통찰을 기다리겠습니다. ^^

  4. BlogIcon 풍차베기 2008.05.01 18:17

    돈을 벌 줄 아는 사람에게는 참 쉬운일이고

    그걸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다른 세상 이야기일 뿐이고..

    먼저 알고 먼저 부자가 되는 방법.. 저에게는 잘 안보이네요 ^^

    • BlogIcon inuit 2008.05.01 22:11

      저 맥락에서는 '변화'가 키워드일겁니다. ^^
      물론 말로만 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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