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은 처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 여정의 다른 도시보다는 그 신선함이 현격히 떨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게다가 날씨마저 런던 특유의 변덕스러움으로 나다니기도 불편한 상황이라, 정해진 미팅 위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나마, 마지막날 비행기 타기 전에 약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런던에 큰 애착이 없는 저로서는 어디 가볼 곳도 마땅치 않은터라, 숙소 인근의 자연사 박물관에 들렀습니다.

같은 자연사 박물관도 어찌 그리 차이가 큰지. 워싱턴 DC에 갔을 때도 유일하게 들른 박물관이 자연사 박물관입니다. 하지만, 저는 런던에 손을 들어주고 싶군요.

전시공간 자체는 런던이 조금 모자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찰스 다윈의 나라답게 관록이 있습니다. 모든 전시물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고, 그 설명이 간결하지만 매우 적확하고 핵심이라 공부하기에는 딱입니다. 

저는 책 쓴 주제와도 상통하는, 인류의 발달이라는 주제에 깊이 관심을 갖고 박물관을 보았는데, 이 분야에서도 워싱턴 DC에 비해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완승입니다. 제한된 공간에서도 매우 적확하고 비주얼한 설명으로 인류의 발달 과정을 잘 요약했습니다. 워싱턴의 1/10 공간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펼치더군요.

다른 사람은 지나쳐도 제겐 신선했던 호먼클루스(homunclus)만 해도 그렇습니다. 감각기관과 운동기관에 해당하는 뇌의 영역을 매핑하여 만든 가상의 인간상인데, 입체로 그려 놓으니 보기도 편하지만, 뇌과학의 진수를 이렇게 쉽게 전해주는 전시물에 감명이 깊었지요. (왼편이 sensory, 오른쪽이 motory입니다.)

하긴, 대형 세코이아(great sequoia)의 나이테를 가지고 세계 연대를 표현한 그 스토리텔링 능력이라면, 재미 없기가 더 힘들겠지요.
  1. BlogIcon 이재상 2010.09.13 07:45

    지난 휴가 때, 자연사 박물관 지나만 갔는데, 내부가 이렇게 멋진 줄 알았으면 시간 내서 들어갈 볼껄 후회가 되네요.

    • BlogIcon Inuit 2010.09.13 22:31 신고

      다른 곳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세요. 실제로도 그랬을거에요. ^^
      하지만 아이가 있으면 꼭 보여줄만 합니다.

  2. luapz 2010.09.13 12:03

    샌프란시스코에 놀러 갔을때 갔던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에서 스토리 텔링에 감탄을 했었는데 영국도 만만치 않군요. 나무 나이테에 세계 연대 표현한건 정말 멋지군요.

    런던 갔을때 대영박물관만 갔던게 아쉽습니다... 여행 다녀오면 항상 어디도 가볼껄 싶은 아쉬움만 남는것 같아요.

    • BlogIcon Inuit 2010.09.13 22:32 신고

      대영박물관은 세상 최고의 장물창고니까 한번 봐둘 필요는 있지요. ^^;;
      말씀처럼, 여행 다녀오면 아쉬움이 많은데 그게 또 매력 아닐까 싶어요.

  3. BlogIcon Heliotrope 2010.09.15 20:28 신고

    여기가 박물관이 살아있다 영화 배경이 된 곳이라 유로스타 타는 곳이랑 조금 멀긴 했지만 가 봤었네요.
    저 공룡뼈다구를 처음 보고 우와~ 했지만, 너무 커서 생각보다 사진이 잘 나오지 않더라구요.
    제 기준으로 제일 멋진 공룡관을 먼저 보고 나니 나머지 관들이 초라해지고 ㅠㅠ 마지막 광물 전시해 놓은 곳을 봤을땐 너무 예뻐서 정신을 다 홀렸어요. ㅎㅎ
    이날은 저와 일행이 시간에 쫒겨서 휘휘휙 대충 둘러 보고 나왔는데 아쉬웠어요.
    여기 건물은 사진으로 찍으면 참 이쁘게 나와서 사진은 정말 많이 찍었네요. ^^

    • BlogIcon Inuit 2010.09.16 21:14 신고

      아.. 그렇군요.
      여기가 박물관이 살아있다 영화 찍은 곳.. 그 생각을 깜박했네요. 영화를 떠올리면서 봤으면 더 재미났을텐데. ^^

      그리고, 박물관 건물이 아름다운건 격하게 공감합니다. 저도 저기 안가보려다가 건물이 하도 예뻐서 자꾸 쳐다보다가 급히 들러보고 싶어졌지요.

아무리 고급 음식점을 가더라도, 영국 음식은 맛 좋다고 평하기 어렵습니다. 
일단사 일표음이 몸에 배어 있고, 세상 주유를 일상처럼 하는 저조차, 대체 런던에서는 식도락이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런던에 머무는 지친 객들에게는 단연 에일입니다. 저번 글에서도 말했듯, 런던의 위안이자 큰 자랑거리는 펍이고, 펍의 고갱이는 에일입니다. 술을 안 좋아할지라도 에일 모르면 런던을 이해할 수 없고, 술 마실 줄 알면 에일로 견디며 지낼 수도 있습니다.

날씨가 죽 끓듯 변덕스러운 런던. 이번에도 멀쩡한 하늘이 비로 바뀌어 쫄딱 젖어 난감할 때, 펍은 따스한 음식과 훈훈한 온기로 객을 맞아 주었습니다.

혹자는 런던 사람의 삶이 펍을 통해 돌아간다고 까지 합니다. 일 끝나고 펍에 들르면 어린 시절 친구부터, 여자 친구, 사업 파트너까지 다 만나서 이야기가 되니까요.

전에 상세히 말했던 박지성 찬가의 장면도 펍 문화를 모르면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링크의 유튜브 동영상은 꼭 한번 보시기를 권유합니다. ^^)
 
이번 여정에서도, 펍은 제게 유일한 대피처였습니다.
흉한 음식, 못난 날씨에 펍은 낙원과도 같은 대안이지요. 꼭 술을 안 마셔도 낮에는 커피 마시러 들러도 됩니다. 저도 그랬구요. 그 분위기와 따끈한 식사에서 많은 느낌을 가질 것입니다.

전에 맥주 4대천왕을 이야기했습니다. 세상에서 흔히 비웃는 에일이지만, 저는 감히 에일의 고장 영국을 그 넷째 자리에 두고 싶습니다. 은근한 거품과 부드러운 풍미의 고상함이라면, 엄정한 별점따위 순위 매길 필요도 없이, 척박한 영국 풍토의 수호천사라는 그 의미론적 지위로도 4등은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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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xwind 2010.09.16 15:25

    안녕하세요. 런던 이야기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런던에서 살다와서 영국 친구들 덕분에 영국 전통음식도 많이 먹어보았지만 영국 음식이라면 몰라도 '영국 요리'라면 어색하긴 하지요. 제가 맛집을 찾아다는 것은 아니지만 영국 음식이 아니라면 인구 구성등을 볼 때 세계 각국의 요리를 즐기기에는 유럽에서는 런던이 제일 좋은 곳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가격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지만요. 런던 벗어나 시골에 있는 펍에 가면 주말 메뉴등이 푸짐하고 맛있게 잘 나오는 곳도 많아서 오히려 그런 곳이 좋더군요.

    저는 술을 잘 안마시기에 펍에는 주로 커피 마시러 갔습니다. 축구경기가 있는 날은 좀 분주하긴 하지만 전반전 끝나고 담배피는 사람들은 펍 뒷마당으로 몰려나와서 경기이야기하다 후반전 시작하면 다시 들어가고. 마치 대학의 연강중간에 쉬는 시간 모습같습니다.

    덕분에 여기서 여러 나라 다니시며 전해주는 살아있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 BlogIcon Inuit 2010.09.16 21:21 신고

      네. 런던은 영국요리가 없는 대신, 세계 요리가 다 있다고 하지요.
      실제로 저도 런던에서 만든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아르헨티나는 물론 노르웨이 음식까지 다 먹어봤습니다.

      펍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시골의 펍은 정말 흥겹고 정이 갈것 같아요. 일로 가면 참 어려운게 그런 흥취를 느끼는겁니다. 기회되면 가보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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