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고급 음식점을 가더라도, 영국 음식은 맛 좋다고 평하기 어렵습니다.
일단사 일표음이 몸에 배어 있고, 세상 주유를 일상처럼 하는 저조차, 대체 런던에서는 식도락이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런던에 머무는 지친 객들에게는 단연 에일입니다. 저번 글에서도 말했듯, 런던의 위안이자 큰 자랑거리는 펍이고, 펍의 고갱이는 에일입니다. 술을 안 좋아할지라도 에일 모르면 런던을 이해할 수 없고, 술 마실 줄 알면 에일로 견디며 지낼 수도 있습니다.
날씨가 죽 끓듯 변덕스러운 런던. 이번에도 멀쩡한 하늘이 비로 바뀌어 쫄딱 젖어 난감할 때, 펍은 따스한 음식과 훈훈한 온기로 객을 맞아 주었습니다.
혹자는 런던 사람의 삶이 펍을 통해 돌아간다고 까지 합니다. 일 끝나고 펍에 들르면 어린 시절 친구부터, 여자 친구, 사업 파트너까지 다 만나서 이야기가 되니까요.
전에 상세히 말했던 박지성 찬가의 장면도 펍 문화를 모르면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링크의 유튜브 동영상은 꼭 한번 보시기를 권유합니다. ^^)
이번 여정에서도, 펍은 제게 유일한 대피처였습니다.
흉한 음식, 못난 날씨에 펍은 낙원과도 같은 대안이지요. 꼭 술을 안 마셔도 낮에는 커피 마시러 들러도 됩니다. 저도 그랬구요. 그 분위기와 따끈한 식사에서 많은 느낌을 가질 것입니다.
전에 맥주 4대천왕을 이야기했습니다. 세상에서 흔히 비웃는 에일이지만, 저는 감히 에일의 고장 영국을 그 넷째 자리에 두고 싶습니다. 은근한 거품과 부드러운 풍미의 고상함이라면, 엄정한 별점따위 순위 매길 필요도 없이, 척박한 영국 풍토의 수호천사라는 그 의미론적 지위로도 4등은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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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wind 2010.09.16 15:25
안녕하세요. 런던 이야기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런던에서 살다와서 영국 친구들 덕분에 영국 전통음식도 많이 먹어보았지만 영국 음식이라면 몰라도 '영국 요리'라면 어색하긴 하지요. 제가 맛집을 찾아다는 것은 아니지만 영국 음식이 아니라면 인구 구성등을 볼 때 세계 각국의 요리를 즐기기에는 유럽에서는 런던이 제일 좋은 곳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가격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지만요. 런던 벗어나 시골에 있는 펍에 가면 주말 메뉴등이 푸짐하고 맛있게 잘 나오는 곳도 많아서 오히려 그런 곳이 좋더군요.
저는 술을 잘 안마시기에 펍에는 주로 커피 마시러 갔습니다. 축구경기가 있는 날은 좀 분주하긴 하지만 전반전 끝나고 담배피는 사람들은 펍 뒷마당으로 몰려나와서 경기이야기하다 후반전 시작하면 다시 들어가고. 마치 대학의 연강중간에 쉬는 시간 모습같습니다.
덕분에 여기서 여러 나라 다니시며 전해주는 살아있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