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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Project L

회장님 아빠의 방침

Inuit 2007. 4. 15. 11:10
요즘 초등학교에는 반장이 없더군요. 대신 회장이라고 합니다.
예전처럼 선생님이 학기초에 임명하지 않고, 추천과 투표에 의해 뽑습니다. 공부만 잘한다고, 집에 돈이 많다고 꼭 뽑히지는 않기 때문에 나름 어렵습니다. 초등 2학년인 둘째가 올 봄에 회장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실은 회장되게 하고 싶은 엄마 마음에, 학기초에 연설 연습을 시켰다지요. -_-
어떤 이야기를 할지 들어보고 쉽고 자연스럽게 내용을 다듬어 주었습니다.

제가 회장이 되면 우리 반을 웃음이 피어나는 반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겠습니다.
저를 꼭! 뽑아주세요.

보통 회장선거에 나오는 친구들이 하는 말들이 매우 비현실적이랍니다.
최고의 반을 만들겠다던가, 친구들에게 봉사한다느니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좋은 말만 한다는 누나와 엄마의 다년간 경험을 토대로 만들었지요.


아빠도 숙제가 있었습니다. PT하는 방법에 대해 여러차례 들어보고 조언을 해줬지요. -_-

눈은 천장을 보지 말고, 천천히 아이들 하나씩 눈을 맞춰 보면서 수평으로 이동해야 해.

마지막 말이 가장 인상에 남으니까, 약간 쉬었다가 또.박.또.박. 배에 힘을 주고 말해.

아이들은 새학기라 너를 잘 몰라. 그러니까 천천히 부드러운 표정으로 이야기하렴.

얼굴은 웃고 있는데 몸이 너무 뻣뻣해. 손가락으로 두손 얽어 꼼지락 거리면 초조해 보여.

좋아졌는데 내내 차렷자세로 있으니 좀 심심하다. 꼭! 할때 손을 주먹쥐어 가볍게 들어봐.
결국 둘째는 회장이 되었습니다. -_-;

재미있는 사실은 여자 친구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는데, 이유가 가관입니다. 똑똑해 보인다네요.

학기가 진행되면서 꼬마숙녀들로부터 초콜릿이나 편지를 많이 받아옵니다. 아빠의 대리만족을 충분히 기대에 잘 부응하는군요.

중요한 점은 이겁니다.
매주 말이 되면 둘째는 엄마, 아빠, 누나 앞에서 학기초의 공약을 다시 읊습니다.

제가 회장이 되면 우리 반을 웃음이 피어나는 반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겠습니다.
저를 꼭! 뽑아주세요.

회장의 감동을 오래 즐기고 싶은 고슴도치 가족이냐구요.
그게 아니라 이것도 공부입니다.
공약은 여러사람 앞에서의 약속이거든.
처음에 너의 말을 믿고 많은 친구들이 너를 뽑아준거야.
그래서 시간이 지났다고 잊어버리면 안되고 처음 너의 약속을 늘 지켜야 하는거야.
공약을 다시 연설하고 아빠랑 앉아서 한주간 반을 웃음이 피어나게 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지, 어려운 친구는 누구를 어떻게 도았는지 이야기를 듣습니다.

둘째가 어린 탓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혼자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고, 남 잘못을 바로바로 지적해 성을 돋구기도 합니다. 사내아이 답게 권력을 즐길 여지도 많았지요.
이런 저런 걱정으로 아이 공부삼아 시켜왔던 일인데, 습관이 되어서인지 요즘 회장일을 잘한다고 합니다.
차고 넘침없이 차분하여 선생님도 엄마에게 몰래 칭찬을 하셨다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젠틀하고 공평하다고 평이 좋다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작지만 소중한 처음의 약속을 꾸준히 지키는 것.

이건 회장님의 방침일뿐 아니라 회장님 아빠의 방침이기도합니다.
네.. 팔불출 아빠지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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