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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로드

Inuit 2009. 10. 14. 22:52
강대리, 국수 언제 먹게 해 줄거야?
이 한마디에 담긴 뜻을 모를 한국인이 있을까요. 결혼잔치를 의미하는 국수. 그런데 왜 국수는 잔치의 상징이 되었을까요. '면식수행'이라하여 폐인의 상징으로까지 여겨지는 요즘 국수의 지위와, 피로연에 의례적으로 나오는 퉁퉁 불은 미지근한 국수가 갖는 의미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주중 열끼 중 네댓번은 면을 먹고,
주말 한끼는 꼭 라면을 먹어야 하며,
한달에 한 번 이상은 짜장면을 먹어줘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국수애호가인 저로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욱정

누들로드(Noodle road)는 단순히 국수를 다각도로 조명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국수의 발원에서 국수의 전파경로, 각 문명에서의 변용과 문화사적 의미를 찾는 방대한 문화인류학적 보고서입니다.

TV 다큐멘터리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누들로드'는 세계 유명 방송사에 판매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책 '누들로드'는 영상물 제작의 핵심인물인 이욱정 PD의 개인적 소회와 제작 과정을 적었습니다.


Truth finding work
가 장 흥미로운건 다큐멘터리 제작과정이 어떤지 실감할 수 있었던 점입니다. 명제를 추정하고,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는 끊임없는 작업입니다. 다큐멘터리의 펀치라인이자 키 팩트인 국수의 발원지를 찾는 초조한 노력은 본질적으로 유사한 일을 하는 제게도 실감나게 와 닿았습니다. 역사를 왜곡하려는 유인이 있는 중국의 학계에 휘둘려 애먼 시간 까먹고 결국 신장지역에서 최초가 될 단서를 찾지요. 물론, 현재 증거상 가장 오래 되었지만 최초라고 확언할 상태는 아닙니다.
마 찬가지로 이탈리아에 파스타로 전파되는 과정도 일종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입니다. 이슬람 상인을 통했으리라는 방증을 합니다. 엄밀한 논증적 방법론으로 말하자면 다중 경로 중 하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면식을 안하는 이슬람 지역을 메인 경로로 거쳤다고 보려면 상당한 보강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상물에서는 시각의 왜곡적 중요도에 의존해서 술술 넘어갑니다. 비슷한게 보이면 바로 믿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책을 보면서는 냉정하게 적절한 신뢰도를 갖고 대할 수 있습니다.


History of noodle
지금까지 학계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국수의 경로는 매우 재미있습니다.
  • 신장지역: 서역과 중국의 매개체인 신장 지역이 발원으로 추정됩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져온 밀로 국수를 만들었습니다. 신장 이서지역까지는 '밀가루=빵'이 공식인데, 여기서 밀반죽을 길고 가늘게 뽑은 독특한 형태를 만듭니다. 혁신의 시초입니다.
  • 송나라: 음식 문화의 창발지인 중국으로 유입된 국수는 중국의 조리법을 만나 만개합니다. 갖가지 형태의 국수와 요리법이 발달합니다. 당시 급속한 도시화가 추동력입니다.
  • 동남아: 몽골에 쫓긴 송나라는 남쪽 지역으로 이전하고, 한가지 문제에 봉착합니다. 밀이 안 나 그 맛난 국수를 못 먹습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인지라 물산이 풍부한 쌀로 국수를 만듭니다. 하지만, 쌀국수는 매우 공이 많이 듭니다. 밀반죽의 점성을 제공하는 글루텐이 쌀에 없어서 국수 모양을 만들기 힘들지요. 쌀을 물에 불려 갈아 죽처럼 만들어 다시 물기를 빼고, 발효를 시켜 자루에 넣고 구멍으로 뽑아내어 뜨거운 물에 응고시키는 지난한 작업을 거쳐 쌀국수를 만들어 먹습니다. 정말 국수를 사랑하지 않고서 가능한 일일까 싶습니다.
  • 산간지역: 물산이 척박한 산간지역에도 국수는 희망입니다. 아무데나 잘 자라는 메밀로 국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메밀도 쌀처럼 반죽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메밀을 음식으로 만들 방법이 있다는 점만 해도 다행입니다. 워낙 음식이 귀하니까요. 중국 산간지역은 물론 우리나라 강원도, 함경도의 메밀 국수와 냉면은 그렇게 삶의 등불이었습니다.
  • 이탈리아: 스파게티 류의 건조 면은 남부 시칠리아에서 성행하고 다시 북쪽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되어 서구화된 국수 세상을 열었습니다. 이탈리아 북부는 라자냐 계열의 생면을 먹습니다만 국수와 다르다고 보면 됩니다. 좀 더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만, 중국의 면이 이슬람 또는 실크로드를 거쳐 이탈리아로 전파되었다고 추정합니다. 그래서 누들 로드라 부르지요.


Meaning of noodle
전 세계, 남녀노소가 애호하는 국수. 그 의미는 뭘까요. 저도 이번에 책을 보면서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 대량 급식: 국수의 모양 상 빨리 익습니다. 그리고 미리 재료를 만들어 놓고 한번에 여러 사람 분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 패스트푸드: 같은 이유로 빨리 조리가 되지요. 익혀서 건져 놓은 면에 국물만 부으면 완성이니까요. 고명이 얹혀 있어 반찬도 없으니 먹기도 편하고 먹는 속도도 빠르지요. 중국, 일본, 이탈리아 등에서 도시화와 국수는 항상 같이 성장했습니다.
  • 선진해외문화: 국수 제법을 보면 매우 공이 많이 드는 음식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혁신적 조리법이기 때문에 노매딕한 속도가 아니라 유학생 학습의 속도로 전파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비싸고 감각적이면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음식입니다. 마치 각 나라의 초창기 맥도널드처럼 말입니다.
  • 문화적 포용성: 서구적 건재료에 동양의 습식 조리문화가 더해진 요리입니다. 재료의 식감은 살리고 맛의 관성은 유지합니다. 사랑받을 조건이 충분합니다.
  • 형상적 상징: 우리 뿐 아니라 여러 부족에서 국수는 그 긴 모양으로 오래가는 염원을 담습니다.
이쯤 되면, 국수가 잔치 문화의 핵심인 이유가 자명해 보이지요?


Fascinating visual
문 화사에 관심있는 분은 물론, 국수 좋아하는 분은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책을 보고 국수에 매력을 더 느껴 개인적으로는 국수 소비량이 늘었습니다. 게다가 다큐멘터리까지 다시보기로 보는데 영상물은 책보다 훨씬 매력적이더군요. 그 기발한 전개와 다양한 표현기법이 국수의 문화적 의미를 감각적으로 잘 그려냅니다. 책보다 영상이 더 나은듯 하니 관심 가져볼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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