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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 2011] 12. For one God and for all Gods

Inuit 2011. 8. 18. 22:00

식사를 마치고 판테온에 갔습니다. 구의 지름과 천장의 높이가 같은 독특한 기하라든지,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빛이 들어오는 구조 등은 잘 아는 바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처럼 기대를 뛰어 넘는 정서적 만족을 준 곳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웅장한 규모에 압도됩니다. 근방에서는 사진을 찍어도 전체 모양이 잡히지 않을만한 크기입니다. 이것을 고대 로마시대에 만들었다는게 짐작이 되지 않지요.

이 독특한 구조는 바티칸 미술관이나 파리를 비롯해 무수한 후대 건축가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오죽하면 브루넬레스코는 로마 유학 시절에 판테온의 벽을 몰래 깨서 그 공학적 비밀을 습득했겠습니까.

그러나 판테온의 매력은 넉넉한 공간 사이로 들어오는 서광입니다. 판(pan)테(the)온이란 뜻 그대로 모든 신을 섬기는 범신전입니다. 그래서 사방 어딜 둘러봐도 둥그런 평등한 구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특정한 신에게 바쳐지지 않은 모든 신을 위한 신전, 그래서 오히려 인간을 위한 신전 판테온입니다. 그 크기로 인해 실내이면서 답답함이 없고, 위가 뚫렸지만 안에 앉아 있으면 한없이 포근합니다. 


그리 유명 장소는 아니지만, 판테온 근처에 미네르바 성당(Santa Maria sopra Minerva)이 있습니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종교재판을 받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들, 로마에서 당당히 외칩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다음 행선지는 나보나 광장입니다. 

나보나 광장은 한쪽이 매우 긴 직사각형의 광장입니다. 과거 경기장이었기에 갸름합니다. 벤허 같은 전차 경기도 열렸겠지요. 이름 자체도, 경기장을 뜻하는 아고네(in agone)라는 말이 변해 나보나라고 불리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또 천재조각가 베르니니의 4대강 분수로 유명한 곳입니다. 로마의 거실이라는 별명처럼, 현지인들의 사교 장소이기도 하지요. 

비록 비싼 돌은 아닐지언정, 하나하나가 어디 고이 모셔 두어야 할 작품들인데 분수 하나에 오글오글 모여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자신들의 신이나 이상을 새기는게 아니라 세계의 모습을 담으려 애썼다는 점입니다. 남미의 플라테 강, 아프리카의 나일강, 동양의 갠지즈강, 유럽의 도나우 강 이렇게 4대 강입니다. 세상 지리에 밝고, 세계의 으뜸이라는 로마의 자신감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지요.

분수를 한참 즐겨보고, 다음 목적지로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성 아녜제 성당(Sant'Agnese)이 눈에 띕니다. 이런, 놓치고 갈 뻔했군.

아녜제는 흔히 말하는 성녀 아그네스입니다. 너무 예뻐서 빗발치는 구혼을 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종교에 귀의해 동정으로 죽기를 원했던 소녀, 결국 기독교도라는 죄목으로 창녀의 집에 넘겨졌어도 끝까지 동정을 지키다 사형을 당한 아그네스입니다.

과연 종교란게 무엇이길래, 어린 소녀가 목숨까지 하찮게 여기며 귀의했을까요. 또 그 꽃다운 정념을 기독교란 낙인 하에 꺾고 만 그 이들의 머릿속엔 무슨 생각이 있었을까요. 모두가 신을 모신 마음은 같았고 진실했을텐데 왜 그리 광적이었을까요. 아니, 그나마 이성이 좀 더 자리를 잡은 지금은 광기가 좀 사그라들었을까요.

어린 성녀 아녜제의 성당은, 수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소통하는 그 공간 곁에 물러서, 무수한 화두만 던진 채 고혹적인 우아함을 뽐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