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신도를 감싸안듯 웅혼한 광장에서 잠시 머물다, 산탄젤로(Sant'Angelo)를 향합니다. 

제가 로마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거룩한 천사의 성이란 이름에 걸맞는 대천사 미카엘 상이 꼭대기에 올려져 있습니다.

590년 대 역병이 돌 때 대천사 미카엘이 칼을 집어 넣는 모습을 교황이 꿈에 본 후 정말 역병이 멈췄습니다. 그 이후 거룩한 천사가 도시를 구했다는 감사로 지은 조각상입니다. 물론 건물 자체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영묘로 지어졌고, 그 튼튼함으로 인해 방어 건물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예술적, 문화적 건물이 빼곡한 로마에서 유일하게 본 성채, 카스텔로이지요. 중세 이후에는 감옥으로 사용 되기도 합니다. 

우아하지만 단단한 건물, 세련되지만 절제된 장식이 어울려 귀족 장군 같은 독특한 장관입니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계획은 의미 없습니다. 일정을 멈추고, 우리 가족은 산탄젤로 공원에서 한참을 머물며 지금 이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테베레 강이 있어 바람이 정말 시원합니다. 거리는 아지랭이가 보일듯 뜨거운데 여긴 별세계입니다. 게다가 앞에는 산탄젤로. 서로 무릎 베고 눈도 붙이고, 젤라토도 먹고 한참을 쉬었습니다. 아니 적극적인 붙박이 관광을 했습니다. 이게 자유여행의 진미이기도 하지요. 안 내키면 안가고, 마음에 들면 실컷 머물다 가고. 

산탄젤로에서 철수하고 테베레를 건너 다시 일곱 언덕쪽으로 가려던 차에, 아내가 제의를 합니다. 혹시 모르니 바티칸 미술관에 가보자고 합니다. 

그 때가 네시경. 기적같은 광경입니다. 미술관에 줄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관광객이 오전에 주로 보고 빠졌나봅니다. 그냥 걸어 들어가 바티칸 미술관을 어이없도록 쉽게 감상합니다.

미술관은 전반적으로 좋았지만, 시스티나 예배당을 본 순간 그 앞의 모든 기억은 지워져 버렸습니다. 천재 미켈란젤로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그 곳, 천장에는 천지창조가, 앞면에는 최후의 심판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곳. 아무리 봐도 계속 새로운 것이 보이는 뺴곡하고 세세한 천장화와 벽화들. 바티칸 미술관의 실체는 시스티나 예배당이었습니다.


시스티나는 콘클라베(conclave)라는 교황선출의 장소로 유명하지요. 선출권을 가진 추기경들이 이곳에 들어와 만장일치로 선출할 때까지 문을 잠궈버리는 독특한 시스템. 메디치의 아들들이 그렇게 교황으로 뽑혔고, 최근의 베네딕토 16세도 그렇게 교황이 되었습니다. 전 딱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이건 불후의 명작이 말 그대로 도배되어 있는 곳이었다니.
 
로마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은 이만하면 다 봤다고 단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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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관광의 백미 바티칸에 가는 날입니다. 

가장 들어가기 힘든 곳은 바티칸 미술관입니다. 여기서도 우피치와 같은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밥도 안먹고 바티칸으로 출발했지요. 그런데 아뿔싸. 모두 예정 시간에 일찍 일어났음에도, 오히려 그 사실 때문에 늑장을 부리다가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습니다. 갔더니 이미 줄이 한가득이더군요. 그냥 서있으면 두세시간은 족히 걸릴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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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우린 자유 일정. 내일 아침에 다시 더 일찍 오기로 하고 미련없이 줄을 벗어납니다. 바로 바티칸 시국으로 향했습니다. 워낙 일찍 움직인 탓에 줄도 없이 바티칸에 들어가고, 쉽게 베드로 성당의 쿠폴라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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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일경.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베드로 성당입니다. 베드로가 죽어 묻힌 자리에 서있는 성당이기에, 미켈란젤로가 왕관 형태의 쿠폴라를 씌웠습니다. 그 우미한 아름다움은 장관입니다.



쿠폴라에서 내려오면 바로 베드로 성당입니다. 세계 모든 성당의 본당이기도 합니다. 교황이 머무는 그 곳. 천주교 신자라면 정말 무한한 감흥이 몰려들듯 합니다. 무교인 저또한 이리 감격하니 말입니다.


게다가 그 미학이란. 하다 못해 근위병의 유니폼은 미켈란젤로의 디자인 아닙니까. 게다가, 중세 이후로 항상 교황을 지켜왔던 스위스의 용병 이야기며, 건물마다 내려 앉은 수많은 성인의 조각까지, 광장에 앉아 아이들과 나눌 이야기가 차고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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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언제가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
    그런데 정말 저리 깔끔하나요?
    거리들이 신기합니다.
    여긴 그렇지 않거든요..ㅎㅎ

    빈틈이라고는 없는 ,
    작은 생명들이 모여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들판이랑 논둑길. 골목길..

    가끔은 아이들이 저리 깔끔한 도시에서 살고 싶다고 하지요..
    아사가재요... ^^;;;;
    • 아니요. 이탈리아 상당히 지저분 합니다.
      저기만 깨끗해 보이지 뒷골목은 쓰레기 널려있고 막 그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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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고대로마에 가볼 차례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버스를 타고 콜로세움에 갔습니다. 로마 패스 덕에 줄도 안서고 바로 들어가 체력과 시간을 많이 아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익숙한 모양. 항상 그림 속에서만 보던 콜로세움을 직접 보니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이 듭니다. 시공이 혼돈스러운 감정과 엄청난 규모에 압도됩니다. 

그나마 유적 안으로 들어가니 콜로세움에 왔구나 싶습니다. 이면을 봤다는건 실제와 마주했다는 좋은 증거겠지요.

콜로세움의 고층 관중석이 꽤 높은지라 바람이 셉니다. 해만 피하면 상당히 시원할 정도입니다. 지금 세계 사람들이 베르나베우캄프 노우, 웸블리에 열광하듯, 당시 콜로세움은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스타디움이었겠지요.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숫자인 8만명을 수용했던 위용은 대단합니다. 게다가 화재 발생 시 이 모든 인원이 10분이면 모두 빠져나갈 수 있었다니 당시의 건축기술이 어땠을까 상상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로마제국의 멸망 후, 로마의 도심을 신축할 때 필요한 돌을 깨다 쓴 인공 채석장 노릇을 했으니 참 아이러니칼 합니다. 이 부분은 포로 로마노가 더하지만 말입니다.


로마 패스의 첫째 무료 관람권은 콜로세움에서 쓰고, 다음은 팔라티노+포로 로마노에 무료 입장을 했습니다. 시간이 없어 휑하게 터만 남은 황성옛터 팔라티노 언덕은 신속히 보고 포로 로마노 쪽으로 향했습니다.

팔라티노 언덕 위에 포로 로마노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뷰포인트가 있는데, 이곳이 많이 도움이 됩니다. 아무리 미리 책을 많이 읽었어도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던데, 위에서 보니 하나하나 식별이 쉽습니다.


가기 전에 가장 관심 있던 곳은 베스타 신전과 (카이저가 죽은) 원로원이었는데, 실제 가서 보니 막센티우스의 공회당이 단박에 눈에 듭니다. 사실 콘스탄티누스에게 제압당한 불운한 황제이지만, 그 의미를 능가하는 규모의 무게가 대단했습니다. 


아스라히 흔적만 남은 폐허인데도, 과거 카이사르와 옥타비아누스가 실제 살아 숨쉬었던 바로 그곳이란 사실만으로도 아득한 세월을 넘어 감격이 가슴을 채웁니다. 해 떨어지고 조명이 켜질 때까지, 노닐며 머물며 밤의 포로 로마노를 완상하려했는데, 폐장 시간이라고 내 모는 관리소 측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노곤한 상태에서 타임 머신을 타듯 고대에서 현세로 문하나를 통해 다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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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 먼저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
      내용 정확하게 인용하셨고, 책에서 언급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대략 짐작은 가는데 어떤 멋진 책이 나올까 기대되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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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그 명성과 관광객의 수에 비해 대중교통이 매우 취약한 도시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경주처럼 땅속을 건드리면 유물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지하철을 깔기 어려운 탓이 큽니다.

하지만, 전차나 트램, 다중구조 버스 등 대량 수송 수단을 갖추지 못한 것은 분명한 문제입니다. 그러다보니 후진적인 버스 시스템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매우 불편하지요. 예전 80년대 서울이 생각날 정도입니다. 툭하면 잘 막히고, 차가 늦게 오기 쉽고, 와도 사람이 많아 비집고 들어가기도 힘든 교통입니다.

같은 이유로 소매치기도 극성이지요. 바티칸 행 64번은 잘 알려진 도난전문 노선입니다. 이탈리아 간다니 여러 사람들이 경험담을 들려주며 조심을 당부한 탓인지, 우리 가족은 소매치기나 도난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소매치기 용의자는 여러 번 봤습니다. 버스 안에서, 정류장에서 눈을 바삐 놀리며 먹이감을 찾고, 끊임없이 이동하더군요. 미리 노려보며 경계하면 슬슬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고.

한번은 시루같은 버스 때문에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차안에 승객이 너무 많아, 발 디딜 틈조차 없어 더 이상 타지 못하고 같은 버스를 네 번 연속 놓치니 정류장의 사람들 모두가 무척 열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버스. 어떤 이가 꽉찬 버스임에도 무슨 일이 있어도 타겠다는 각오로 들이댔고, 내릴 사람이 비키라고 했습니다. 단 두어 마디 시비끝에 바로 내리려는 사람이 들이대던 사람 턱에 펀치를 날려 격투가 벌어졌지요.

이건 뭐 2011년 도시 사람의 감각이 아니더군요. 뒷일 생각 안하고 바로 내지르고 봅니다. 무책임한 테르미니 사람들에 이어, 다혈질 이탈리안의 모습을 확실히 각인시켜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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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판테온에 갔습니다. 구의 지름과 천장의 높이가 같은 독특한 기하라든지,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빛이 들어오는 구조 등은 잘 아는 바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처럼 기대를 뛰어 넘는 정서적 만족을 준 곳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웅장한 규모에 압도됩니다. 근방에서는 사진을 찍어도 전체 모양이 잡히지 않을만한 크기입니다. 이것을 고대 로마시대에 만들었다는게 짐작이 되지 않지요.

이 독특한 구조는 바티칸 미술관이나 파리를 비롯해 무수한 후대 건축가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오죽하면 브루넬레스코는 로마 유학 시절에 판테온의 벽을 몰래 깨서 그 공학적 비밀을 습득했겠습니까.

그러나 판테온의 매력은 넉넉한 공간 사이로 들어오는 서광입니다. 판(pan)테(the)온이란 뜻 그대로 모든 신을 섬기는 범신전입니다. 그래서 사방 어딜 둘러봐도 둥그런 평등한 구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특정한 신에게 바쳐지지 않은 모든 신을 위한 신전, 그래서 오히려 인간을 위한 신전 판테온입니다. 그 크기로 인해 실내이면서 답답함이 없고, 위가 뚫렸지만 안에 앉아 있으면 한없이 포근합니다. 


그리 유명 장소는 아니지만, 판테온 근처에 미네르바 성당(Santa Maria sopra Minerva)이 있습니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종교재판을 받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들, 로마에서 당당히 외칩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다음 행선지는 나보나 광장입니다. 

나보나 광장은 한쪽이 매우 긴 직사각형의 광장입니다. 과거 경기장이었기에 갸름합니다. 벤허 같은 전차 경기도 열렸겠지요. 이름 자체도, 경기장을 뜻하는 아고네(in agone)라는 말이 변해 나보나라고 불리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또 천재조각가 베르니니의 4대강 분수로 유명한 곳입니다. 로마의 거실이라는 별명처럼, 현지인들의 사교 장소이기도 하지요. 

비록 비싼 돌은 아닐지언정, 하나하나가 어디 고이 모셔 두어야 할 작품들인데 분수 하나에 오글오글 모여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자신들의 신이나 이상을 새기는게 아니라 세계의 모습을 담으려 애썼다는 점입니다. 남미의 플라테 강, 아프리카의 나일강, 동양의 갠지즈강, 유럽의 도나우 강 이렇게 4대 강입니다. 세상 지리에 밝고, 세계의 으뜸이라는 로마의 자신감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지요.

분수를 한참 즐겨보고, 다음 목적지로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성 아녜제 성당(Sant'Agnese)이 눈에 띕니다. 이런, 놓치고 갈 뻔했군.

아녜제는 흔히 말하는 성녀 아그네스입니다. 너무 예뻐서 빗발치는 구혼을 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종교에 귀의해 동정으로 죽기를 원했던 소녀, 결국 기독교도라는 죄목으로 창녀의 집에 넘겨졌어도 끝까지 동정을 지키다 사형을 당한 아그네스입니다.

과연 종교란게 무엇이길래, 어린 소녀가 목숨까지 하찮게 여기며 귀의했을까요. 또 그 꽃다운 정념을 기독교란 낙인 하에 꺾고 만 그 이들의 머릿속엔 무슨 생각이 있었을까요. 모두가 신을 모신 마음은 같았고 진실했을텐데 왜 그리 광적이었을까요. 아니, 그나마 이성이 좀 더 자리를 잡은 지금은 광기가 좀 사그라들었을까요.

어린 성녀 아녜제의 성당은, 수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소통하는 그 공간 곁에 물러서, 무수한 화두만 던진 채 고혹적인 우아함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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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상에 종교적 광신만큼 무서운게 없지요. 그렇기에 어린 소녀의 순수한 열정을 무참히 짓밟을 수 있었을 겁니다. inuit님 포스팅이 왠만한 가이드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올겨울에 로마로 가족여행을 갈까 생각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 로마는 정말 아는만큼 보입니다. 가이드 써도 좋지만 지금부터 열공하시면 재미날겁니다. ^^
  2. 아그네스가 누구인가하여 찾아보았습니다. " 집정관 아들의 구혼을 이미 그리스도와의 약혼을 이유로 거절" 했다니..대단한 사람이군요.
    저도 신혼여행기 후기를 빨리 올려야겠는데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군요. 으하하하하.
    • 네 미모도 뛰어났지만 의지도 대단했던 소녀입니다.

      정말 엘윙님 신혼여행 이야기가 빨리 듣고 싶군요. ^^
  3. 저도 로마 관광의 백미는 판테온과 나보나 광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판테온 돔 천장의 커다란 구멍, Oculus? 설명을 들으면서 정말 비가 와도 신전 안으로 안 들어올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지요.
    • 더운 기운이 밖으로 나오면서 비가 잘 들이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비가 들어오긴 하지요.
      내부의 복도가 가운데가 솟아 올라 물이 쉽게 빠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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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로마 패스를 얻고 나니, 무슨 운전면허증이라도 딴 듯 기쁘더군요. 어쨌든, 로마에 3일 이상 있을 사람은 로마패스를 꼭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모든 로마의 교통시설을 3일간 무제한 이용 가능한데다, 바티칸을 제외한 두 곳의 관광지에 무료 입장이 가능합니다. 세번째 관광지부터는 할인요금이 적용되지요. 그래서 3일간 집중 관광하는 경우, 비용과 시간 면에서 매우 유용합니다. 예컨대, 콜로세움 같은 곳은 로마패스 줄이 따로 있어서 긴줄 안서고 바로 들어가 두시간 정도는 벌어줬으니 티켓 값 이상을 톡톡히 했지요. 아침에 로마 패스 산다고 허비한 시간을 바로 토해냈습니다.

로마 패스를 들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버스타기였습니다. 베네치아 광장에 가고 싶었습니다. 바티칸까지 가는 64번 버스를 타고 중간에 내리면 됩니다.

베네치아 광장 자체보다 그 뒤에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목적이었습니다. 중세 이후로 도시 국가 형태로 쪼개져 있던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입니다. 사보이 공국의 영주였지만, 지역명인 이탈리아를 국호로 했을 정도로 통일주의자 였지요. 밀라노에도 두오모 근처에 비토리아 엠마누엘레를 기념하는 파사주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곳은 유구한 역사의 로마에서도 독특하게 근대의 로마가 근거하는 곳입니다. 포로로마노 근처의 고대 로마와, 바티칸 중심의 중세 로마와는 또 다르지요. 특히 캄피돌리오 북쪽은 제국시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고, 베네치아 광장에서 근대의 점을 찍었지요. 바로 이 기념관입니다.

비토리오 기념관은 그 눈에 띄는 흰색과 독특한 모양으로 인해 많은 경멸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타이프라이터 또는 웨딩 케익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에펠탑이 그랬듯,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가 그랬듯, 지금은 조화로운 로마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다음 들른 곳은 비토리오 기념관 바로 뒷편의 캄피톨리오 광장입니다.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넓직한 계단, 그 위에 날렵히 내려 앉은 매우 세련된 광장이 특징이지요. 로마에 가면 꼭 가보고 싶던 곳 중 하나입니다. 특히 뒤로 넓도록 사다리꼴로 광장을 만든 미켈란젤로의 센스가 돋보이는 곳이지요.

로마의 일곱언덕 중 제일 작지만 발원지로서의 강력함을 가진 언덕입니다. 수도라는 capital의 어원이며, 현재도 비토리오 기념관이 기대고 있습니다. 민중 혁명가 크라수스가 추락형을 당한 곳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성당.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하늘 제단의 성모 마리아 성당(Santa Maria d'Aracoeli)으로 바로 갈 수 있습니다. 이름마저 거룩하고 낭만적인 성당은 내부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십자가 형태의 서방 교회가 아닌 정방형의 바실리카 식입니다. 양식이 중요한게 아니라 로마의 주요한 언덕에 있는 교회치고 소박한 외양, 정성이 하늘에 닿을 듯한 계단의 간구가 강렬한 심상을 전합니다. 
무엇보다 교회 안에 들어가면 마음이 치유되는듯한 따뜻한 정서가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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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월드컵 경기 갈꺼라고 겸사겸사 유럽에 갔었던 아는 동생이 거기나 여기나 더운건 마찬가지인데 유럽쪽은 건조해서 살것같더라고 말하더라구요. 정말 그렇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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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을 한다면 가장 나중에 봐야한다는 로마입니다. 여길 보고 다른 데를 보면 모두가 시시해 보일테니까요.

영 과장은 아닌 것이, 고대부터 중세까지 제국의 황제, 기독교의 황제가 거한 곳이며 서양세계의 트렌드를 주도했고 문명의 선도자였던 곳입니다. 그래서 로마를 유럽 도시의 홈타운이라고도 하지요.

하지만, 첫 인상부터 로마는 꾸깃꾸깃합니다. 역 근처의 마디손(Madison)이라는 호텔에 묵는데 서비스가 끔찍합니다. 불친절과 무뚝뚝은 관광지라고 이해한다 쳐도, 미리 예약한 방조차 준비가 안되어 네명이 세명 한 방, 한명 한 방 묵어야 합니다. 미안한 기색도 없습니다. 정 싫어서 바꾸고 싶으면 내일 바꿔달라고 말해 달랍니다. 당연히 싫다고 했더니, 한번 자보고 내일 말하면 조치를 취해 보겠답니다. 
 
다음날 아침 다시 가서 방 바꾸고 싶다고 했더니, 아직도 조건이 많습니다. 짐을 다 싸서 한방에 모아 놓으면 싫은 걸로 간주하고 원래 예약한 4인용 큰 방으로 옮겨주겠답니다. 대체, 같은 호텔 묵으면서 매일 짐싸는건 무슨 일이고, 내 권리를 찾기에 참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게 기가 막힙니다. 아 물론, 와이파이 같은건 돈주고 사려 해도 없답니다. 인테리어는 비교적 깨끗하지만 미니바 냉장고는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식사.. 

여행지에서 아침은 여러가지로 중요합니다. 바쁜 아침에 빠르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점과 더불어 그 나라 그 도시의 특색있는 메뉴를 맛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베네치아에서는 아침을 정말 맛나게 먹었더랬지요. 하지만 여기는, 아침이 군대 배식 수준입니다. 하도 끔찍해서 아침을 못 먹고 길 나서는 날 오히려 식구들은 더 즐거워 했습니다.

뭐 호텔만 이런가하면 전체적으로 끔찍합니다. 다 상기하기도 꿉꿉하고, 일일이 쓰기는 더 귀찮지만 몇가지 사례만 이야기합니다. 


둘째날 로마패스 살 때는, 표를 어디서 사는지 알아내는데만 30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로마 사람 특유의 두가지 기질 때문입니다. 첫째 기질입니다. 빼도박도 않게 자기소관이 아닌한 무조건 다른데로 가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둘째는, 그 가리키는 방향이 매우 확언적입니다. 설마 잘못 가르쳐줄거라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지요. 나중에 알고보니 이탈리아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걸 인정하기 싫어해서 잘못된 정보도 매우 확실하게 가르쳐준다고 하더군요. 매번 새겨 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지요.

-역의 경비원에게 로마패스 어디서 사는지 물어봅니다. 저기 역무원이 판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역무원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잠깐 한가지만 묻겠다 하니 줄 서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줄을 서서 내차례가 되어 로마패스 살 수 있냐고 물으니,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고 'News stand!' 한마디 합니다. 
-뱅뱅 돌아 가판대를 찾아 로마 패스 있는지 물어봅니다. 
-'Sold out!'하고 끝입니다.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다시 물어보니 거리 이름을 말합니다. 테르미니 역안에 있다고 들었는데 뭔 소린가 싶어 있었더니, 종이에 펜을 들어 거리주소를 적어줍니다. 
-지도를 꺼내들고 역 건너편의 거리를 가보는데 있을리가 없습니다. 
-다시 역으로 들어와 다른 신문가판대에 가서 물어봅니다. 로마 패스좀 팔아주실래요? 
-손가락으로 단호하게 가리킵니다. 그 방향에는 아까 뉴스가판대로 보낸 역무원이 보입니다. 

순환의 고리가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ㅠㅜ
 
화도 나고 어이없어서 어떻게 할까 궁리하던 차에, 아내가 뉴스스탠드의 점원이 바뀌었으니 다시 물어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처음으로 다른 방향으로 가르쳐 줍니다.
'24, information'.
24번 플랫폼 근처에 인포메이션 가보란 소리 같습니다. 그쪽으로 갔더니 드디어 판매대가 있었습니다. 별거 아닌데 감격이 되더군요. 

그도 잠시, 이젠 끊임없이 느린 이탈리아식 처리 시스템의 횡포에 놀아납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5분도 안걸릴 정도의 사람들이 서있는데, 근 한시간 기다려 로마 패스를 살 수 있었습니다. 아니 팔아주셨습니다 고맙게도. 물론 그 와중에 새치기 세번, 관광객끼리 말싸움 등 소란이 많았지요.

뭐 이 뿐이겠습니까. 표 하나를 잘못 사서 환불하려고 역에 갈 때마다 10번도 넘게 시도했지만, 결국 돈을 돌려받지 못한 것은 자연스럽게 이해될 정도입니다.

로마인, 선조는 위대했지만, 현재 살고 있는 이탈리아인들은 참 못나보였습니다.

물론 최대의 관광지인 로마, 그리고 관료적인 테르미니 근처의 사람들이 주로 제공한 인상이긴 하지만, 제 발로 걸어와 수많은 유로를 사용하는 관광객의 접점이 그렇게 형성되어 있다면 이런 실망에 에둘린 관점도 크게 틀린 시각이 아닐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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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로마 입성입니다.

테르미니 역 근처, 숙소에 여장을 풀고 제일 먼저 성모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Maggiore)에 갑니다. 한 부자가 성당을 기부하려고 하던 차에 교황이 꿈을 꾸었는데, 한 여름에 눈이 내리는 곳에 지으라는 계시를 받지요. 설마 했는데 과연 흰 눈이 내린 곳이 있어 성당을 지었다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입니다. 그래서 별명도 설지전(雪地殿)이에요. 로마 4대성당 중 하나입니다.


7월의 이탈리아는 일광절약시간을 운용중이라서 9시나 되어야 해가 집니다. 그러니 저녁 때도 덥지 않아 오히려 다니기 쉽습니다. 가벼운 산책삼아 나선 길이지만 내쳐 걷습니다. 매일 순례자처럼 걷다보니 꽤 피곤했지만, 마침 로마오는 기차에서 한참 잘 쉰 덕에 멀리 걸을 수 있을듯 했습니다.

베네치아 광장 쪽으로 가다가 뭔가 멋져보여 길을 들어선 곳이 퀴리날레 궁전 앞이군요. 사고뭉치 대통령이 사는 곳입니다. 다시 베네치아 광장 쪽으로 갈까 하는데, 로마 담당관인 아내가, 여기라면 트레비 분수가 가깝다고 하여, 베네치아 광장은 무시하고 바로 신나게 내려갑니다.

분수의 여왕이라는 트레비 분수. 사실 분수가 아니더군요. 엄청난 조각 모듬 세트 사이로 물이 날아들 뿐이었습니다. 그 규모와 조각의 아름다움은 왜 트레비가 그리 유명한지 스스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보려던 계획을 바꿔, 물가에 걸터 앉아 한참을 보고 또 봤습니다. 이 분수를 만든 아그리파와 고대 로마의 수로 이야기부터, 헵번의 로마의 휴일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지루한 줄도 몰랐습니다.

하긴, 한참 봤다고 생각해도 또 새로운게 보이고, 누가 또 저거봐라 하면 신기한게 다시 보이는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한 볼거리가 많지요.


트레비 근방에서 식사를 하고 스페인 광장까지 걸었습니다.

여행 전부터 정이 가던 스페인광장과 스페인 계단은 실제로 봐도 참 좋더군요. 특히, 공간자체를 가득 채운 젊음의 열기가 인상적입니다. 아버지 베르니니가 만들었다는 배모양 분수도 흥겨운 볼거리였지요.


마침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이 켜져 로마의 야경을 본격적으로 감상하려던 차에, 비가 오기 시작합니다.

여행이 일상의 일탈이라면, 그 비일상을 충분히 즐기는 것이 여행의 참맛이기도 할 것입니다. 피할 수도 있었지만, 하루의 마지막인지라 온 식구가 비를 흔쾌히 비를 맞았습니다.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 비를 줄줄 맞아봅니다. 더위도 식고, 비 피한다고 다들 급한 움직임 속에 오히려 스틸 사진처럼 느린 우리 가족만의 동작이 품고 있는 여유도 좋습니다. 애들도 아내도 다 재미있어 합니다. 

그렇게 로마의 첫날은 온갖 낯설음, 설레임, 노곤함 속에서 저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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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 육로 이동은 두 번입니다. 베네치아에서 피렌체로, 다시 피렌체에서 로마로의 이동이 기차편을 이용합니다. 둘 다 AV, 특급 열차라 두시간이면 이동이 가능합니다.

여행사에 예약할 때, 제게 1등석과 2등석 중 어떤 클래스로 할지 묻더군요. 재미삼아 한번은 1등석, 한번은 2등석으로 해봤습니다. 비교체험을 해보고 싶었지요.

기본적으로 고속인 것은 같고, 일등석 이등석은 차량 따라 다릅니다. 끝의 한량 또는 두량이 1등석입니다. 자리는 2등석이 일반적인 2열-복도-2열의 구조라면, 1등석은 우리나라 우등버스처럼 1열-복도-2열의 구조입니다. 따라서 일등석이 공간이 훨씬 넓습니다. 유럽의 장거리 열차에서는 큰 캐리어의 수납도 신경쓰이는 일입니다. 차량의 끝에 캐리어 선반이 있지만 미리 다른 사람들이 차지해서 짐 놓을 곳이 없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일등석은 열차 중간에도 수납공간이 있어 좀 더 넉넉하고 쾌적했습니다.

피부에 와닿는 가장 큰 특징이 있지요. 1등석에는 비행기처럼 음료 서비스를 하더군요. 커피는 물론, 저와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푸만테(spumante)까지 서빙이 되니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비용 차이는 두시간 기준으로 인당 17유로 정도 되는듯 합니다.

하지만, 음료고 뭐고간에 가장 즐거운건 가족과 함께 노는 시간이지요. 이등석일지라도 네명이 한 콤파트먼트에 모이니 이야기하고 카드놀이하느라 이동하는 중 지루한 줄 몰랐습니다. 스페인의 초고속 열차인 AVE 보다 실 속도는 느릴지라도, 놀다보니 체감속도는 비행기 같습니다. 오히려 너무 빨리 시간이 가서 아쉬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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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온 가족이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네요. 저는 아이들이 한국으로 치면 고2 중2가 되고 나니 여름에는 애들이 더 바쁘더라구요. 올해는 여름 여행 계획도 아직 못잡고 있습니다 ㅡ.ㅡ
    • 그쵸. 가뜩이나 기차여행이 귀한 요즘이네요.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게 되니. 쉐아르님 역시 계속 바쁘게 지내시나봐요. ^^
  2. 오 마지막 사진 정말 좋아요~!^^
  3. 오랫만에 들어왔더니 각종 염장글이 그득합니다^^ 생활터전을 LA로 옮기느라고 벌써 석달째 가족과 떨어져있는데... 이거이거 주말이 더 외롭고 씁쓸해질 것 같네요 ㅡㅜ..
    • SuJae님 정말 오랫만이네요.
      동부에서 서부로 완전 큰 변화였네요.
      가족분들과 빨리 함께 모여 살도록 잘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종종 뵈요! ^^
  4. 유럽 기차 정말 편하더군요. +_+ 이탈리아도 편해보이네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기차 타보고 완전 반했어요. 사람도 별로 없었고 여유로운 분위기에 오스트리아 기차는 칸칸이 나눠져 있어서 오붓했답니다. 생각해보니 모르는 사람들이랑 같은 칸에 탔으면 뻘쭘했겠지만요.
    사진속의 가족들이 정말 행복해보입니다. 후..저는 어느세월에 낳아서 키울지 막막..-_ㅜ
    • 스위스, 오스트리아 같이 독일 계열 기차는 그 정결함과 정확한 운행이 더욱 매력적이지요.

      흠흠 근데 이제 곧 가족계획을 세울 때가 되었군요 그러고보니. 심즈보다 리얼 엘윙심을 만드세요. ^^
  5. 이태리는 유레일 패스가 있어도 자리를 예약해야 한다는... 아니면 검표할때 80%정도 비싼 금액을 물기도 합니다. 이번 여름에 경험한 이야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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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둘째 날의 주요 일정은 단연 우피치 미술관입니다. 첫날인 월요일은 휴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둘째 날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문제는 예약이었습니다. 쾌적한 관람을 위해 당일 대기 인원의 경우, 입장객을 15분에 20명 정도씩 끊어서 보내기 때문에 줄이 매우 깁니다. 하지만 예약을 미리하면 지정된 시간에 바로 가서 관람할 수 있지요. 물론 예약료는 추가로 내야하지만 여행지에서는 그게 더 경제적입니다.

그런데, 방문 전날 예약하려 전화를 하니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휴관일이라 예약도 안 하나 봅니다. 갑자기 황당해졌습니다. 오늘은 피렌체를 떠나는 날이기 때문에 서너시간 줄서고 나면 호텔 체크아웃부터 로마 이동까지 모든 일이 좀 복잡해집니다. 사실 그래서 전날 밤까지도 아쉽지만 우피치는 일정에서 생략하기로 했었지요. 

하지만, 피렌체 담당관인 아들이 몹시 섭섭해 합니다. 원래부터 피렌체 일정의 핵심으로 우피치를 생각하고 있었고, 관람료를 예산에 꼭 넣어달라고까지 신신당부했던 터였습니다.

다음날, 시차증도 있어 6시에 잠이 깬지라 일정을 세우다가 깨달음이 왔습니다. 
'강행하자'
좀 고생하더라도 줄을 서보기로 했습니다.

우피치를 제낀 줄 알고 곤히 잠든 아내와 딸 방에 가서 잠을 깨우고, 아침을 거른채 호텔을 나섰습니다. 8시15분 개장인데, 30분 전에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줄이 길지 않습니다. 한국인의 근면성이 승리한듯 합니다.

드디어 개장. 줄은 짧지만 워낙 찔끔 찔끔 들어가니 한시간 정도를 기다려서 드디어 입장. 하마트면 지나쳤을 뻔한 우피치 미술관에서 르네상스의 명작들을 감상했습니다. 어쩌면 평생 궁금했을겁니다.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의 그림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그 기이한 느낌은 피렌체나 파리에서만 가능한 압도적 물량감이기도 합니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니 피곤은 하지만 기분이 산뜻합니다. 아침을 거른 것을 빼곤 일정이 여유롭습니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나와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긴 후 마지막 여정을 갑니다.

메디치의 본산입니다. 메디치 가문을 상징하는 저 여섯개의 둥근 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이 많지요. 메디치 쪽에서는 선조가 거인과 싸우다 방패에 생긴 철퇴 자국이라고 하지만, 세인들은 메디치(Medici)라는 이름이 뜻하듯 약종상이었고 여섯 개의 둥근 환약을 의미한다고도 읽습니다. 맨 위의 원은 프랑스 왕가에서 부여받은 부르봉 꽃 무늬가 들어 있습니다. 꽃의 도시 피렌체를 꽃피운 메디치 가문, 그 문장에는 프랑스의 꽃이 피어있음도 독특합니다.


두오모 광장 북쪽에 메디치의 본래 저택이 있고, 메디치의 가족 성당이 있습니다. 도시 전체에 메디치의 흔적이 있으며, 그 중 메디치-리카르디 저택은 그닥 볼게 없다는걸 알지만 피렌체까지 와서 메디치의 근원을 안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메디치라는 역사적 배경은 하나도 모를지라도, 로렌초 광장은 사람을 편안하게 감싸는 공간입니다. 아마 근처에 중앙시장과 가죽시장이 있어서 서민적인 느낌이 강한 탓일지도 모릅니다.


피렌체의 가죽시장은 유명해서 관광객의 발걸음이 잦습니다. 페라가모와 구찌가 피렌체의 공방에서 출발했다면 뭐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산 로렌초 성당과 중앙시장 사이에 늘어선 노점상은 꽤 즐거운 볼거리입니다. 품질이 최상은 아니지만 비싸지 않은 가격에 쓸만한 가죽제품과 여러 상품들이 눈길을 끕니다. 

중앙시장은 마드리드의 산 미구엘 시장을 똑 닮았습니다. 둘러 보는 자체로도 참 즐겁습니다.

즉석에서 계획을 바꾸어 노천 점심을 합니다. 우리 가족이 너무도 좋아하는 살라미를, 시장 정육점에서 슥삭슥삭 썰어내어, 생 올리브와 얇은 빵을 곁들여 광장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비용도 그리 많이 들지 않았지만, 싱싱하고 맛난 재료를 직접 골라 만들고, 광장에서 경치구경 사람구경하면서 계단에 앉아 먹는 풍취가 새로왔습니다. 이날 점심은 온 일정을 통틀어 인상깊고 맛있는 식사 중 하나였습니다.

이렇게 서정적 만족과 아쉬움이 교차하고 나니, 로렌초에서 피렌체와 이별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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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오..살라미 맛있겠어요. 먹고 싶습니다. ㅜ_ㅠ
    스위스의 쿱에서 사먹은 마늘맛 살라미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노점상에서 사먹는 맛은 어떤 맛일까요. 으아아!!
    • 현지인 가는 시장이라, 가격대비 질이 좋습니다. 근데 살라미 못먹는 사람 많은데 엘윙님은 저희랑 비슷하네요. ^^
    • 살라미를 못먹는 사람이 있나요? 전 한번에 이건 꼬기닷! 이러면서 호텔에서 주는 여러 종류의 살라미를 미친듯이 퍼담아 먹었다는..(주변의 조식을 같이하는 외국인중 그렇게 퍼담은 인간이 없다는 ㅜㅜ )
    • 모드님, 살라미 냄새가 꼬릿하다고 못 먹는 사람 많아요. 선물 줬다가 별로 환영받지 못한 일들도 있었지요.
      mode님이나 엘윙님은 입맛이 개방되셨거나 미식을 즐기시는듯 합니다. 물론 살라미는 공짜라면 무한정 먹어주는게 맞습니다. ㅋ
  2. 피렌체에선 일명 고현정 크림이라는 한국에서 16만원에 팔리는 5만원 정도의 화장품을 사셨어야 하는데.. 우피치보다~ ㅎㅎㅎ 사실 전 보티첼리에 홀딱 빠졌네요. 그저.. 그의 작품은 예쁘더이다. 거기다 덤으로 카라바조의 작품에 쓰러졌네요. 사진을 보니 다시 가고 싶다능~~~ 꺄악~
    • 고현정 크림이라니 생전 듣도보도 못했습니다 저는. -_-
      알았으면 찾아볼걸 그랬어요.
      미리 tip을 좀 알았으면 좋았을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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