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두 박물관을 나와 아름다운 알파마의 골목을 통해 리스본 대성당에 갔습니다. 여기 뿐 아니라 포르투도 그런데 그 도시 본당을 포르투갈에선 그냥 ()라고 하더군요. 저는 라틴 감성이라 그런지 성당 가면 마리아가 제일 좋습니다. 모성과 가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라틴 계 나라 어디나 마리아 성당이 가장 성대하고 시민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브라질과 스페인이 그랬듯 포르투갈도 그렇네요. 특히 대성당의 마리아는 미학적으로도 매우 아름답습니다. 파란 배경에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날고 있는 입체적 레이아웃은 넋놓고 한참을 보았습니다.

 


리스본 대지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상한 이유는 단지 진도가 높아서만은 아닙니다. 하필이면 대지진 날은 리스본에서 모든 성인을 기리는 만성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바로 큰일이 생긴다고 미신처럼 맹신하고, 국가의 자리를 대신해서 종교재판소가 만인을 압제하는 상황에서 리스본 시민은 빠짐없이 동네 성당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미사가 한창인 아홉시 반부터 땅이 뒤집히고 물이 일어서기 시작했지요. 리스본 대성당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상했습니다.

 

대성당을 나와 트램을 타려 몇발자국 걷는데, 알 것 같은 동상이 있습니다. 안토니우입니다. 리스본의 공식 수호성인은 비센트지만, 리스본 사람들이 가장 애호하는 성인은 안토니우입니다. 흔히 파도바의 안토니오라는 맞습니다. 성 안토니오는 뛰어난 설교로 많은 사람을 감명시켰고, 특히 잃어버린 사람과 물건을 찾는데 효험이 있다고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Saudade와도 통하는 정서네요. 아무튼 이곳 태생이라 리스본 사람들의 최애 성인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리스본 사람에게 파도바의 안토니오라고 하면 싫어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리스본의 안토니우지 왠 파도바의 안토니오냐며.

 

안토니우 성인도 비센테처럼 알아보기가 쉽습니다. 깨달음을 얻을 아기예수가 현신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안토니우 성인을 표현할 아기 예수가 항상 따라옵니다. 딱 봐서 애기 안고 있는 성인은 안토니우지요.

 


그러고 보니 뒤에 아담한 성당이 바로 안토니우 성당입니다. 스페인어 이름이 안토니오, 포르투갈 오면 안토니우인지라 한번 들러보려던 곳이 눈앞에 떡 나타나니, 주저하지 않고 들어가 봤습니다.

 

작지만 정감이 넘치는 성당이었습니다. 인상 깊은건, 지하 석실까지 아주 나이 많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힘든 몸을 끌고 숨을 헉헉 몰아쉬면서도 행복한 표정으로 계단을 가고 있던 장면입니다. 진짜 사랑 받는 성인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하늘은 어둑해졌지만 해지려면 아직 시간이 멉니다. 숙소로 가긴 아직 이르니 바이후 알투에 목적지 없이 구경이나 가기로 했습니다. 트램에는 사람이 많아 숨쉬기도 불편할 정도로 끼어서 갔습니다. 28번이 원래 그렇습니다. 그나마 한번에 탈 수 있으면 다행인거죠.

 

앞서 말했듯, 서울의 강남 나는 바이후 알투는 꽤나 .. 있겠지만 이땐 모두 지쳐 풍경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체력상 후퇴를 선언하고 숙소로 귀환 작전을 펼쳤습니다. 숙소는 바이샤지구에 있습니다. 지도로 보면 우리 위치에서 바로 직선 거리 수백미터도 안되는데 구글 맵을 돌려보면 아주 크게 돌아서 한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언덕과 저지대간 고도 차이의 탓이지요.

 

뛰어 내릴 수도 없으니 돌아서 걷자, 구글 맵 따라 터벅터벅 걷는데, 중간 쯤에서 아무리 봐도 저기에 길이 있을듯 했습니다. 길이 될 성 싶은 좁은 골목이 보이고, 사람이 지속적으로 들고 나는게 멀리 보입니다. 지친 식구들에게 있는지도 모르는 길로 한번 가보자고 하긴 어려워서, 식구들 잠시 쉬고 있으라하고 저만 먼저 가봤습니다.

 

세상에.

 


길은 없지만 엘리베이터는 있습니다. 원래 저희 투어 리스트에도 있는 산타 주스타 승강기입니다. 원래 바이샤와 바이후 알투 사이 고도차가 심해 만든 엘리베이터로 당시엔 대중교통의 일환이었습니다. 이 거대한 기계장치가 1902년에 완공되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요. 당시엔 눈이 휘둥그레해질만한 장관이었을겁니다. 지금은 고전미가 대단합니다.

 


바이샤로 바로 내려가는 길은 없지만 승강기를 타면 바로 가니 재미도 있고 몸도 편합니다. 승강기는 버스회사 소속입니다. 리스본 교통카드가 있으면 그냥 있지요. 줄을 잠시 대중교통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이샤로 귀환했습니다


염두했던 곳을 우연히 발견하는 재미가 컸고, 여행이란게 아는만큼 모르는만큼 각각의 재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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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시간이 길어 생각보다 매우 점심식사를 하고, 파두(Fado) 박물관에 갔습니다.

 

제가 처음 파두를 들은건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였을겁니다. 심야에 라디오에 신경을 내어주던 시절, 갑자기 심장 고동 같은 북소리(이번에 가서 보니 기타 두드리는것이었음) 함께 영혼을 끓여 내어 부르는 노래. 이 별세계에서 온듯한 곡이 무언가 귀기울여봤더니,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검은 돛배(barco negro)'라고 합니다. 노래를 들으며 이름도 낯선 포르투갈은 어떤 나라인지 꿈꾸며 잠들곤 했습니다


이종환 씨가 세계음악 치곤 꽤 자주, 몇달에 한번 정도, 검은 돛배를 틀어줬던것 같습니다. 당시 느낌에, 분명 외국 곡인데도 우리나라 정서와 매우 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십여년 , 베빈다라는 프랑스에서 발표한 신세대 파두를 들으며 또다른 파두의 매력에 빠졌었고요. 베빈다 테이프를 닳도록 들었던것 같습니다.

 

파두는 fatum, 운명이란 라틴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나라가 좁고 삶이 질박해 바다로 나가야 있었던 사람들. 처음엔 고기를 잡으러 대서양으로, 나중엔 기회를 잡으러 세상의 끝으로 사람들입니다. 갖가지 사연으로 떠난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생겨난게 파두입니다. 우리 민요와도 통하는 정서죠.

 

한발 더 나가면, 파두의 요체는 saudade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한(恨)처럼  단어로 번역 안되는, 포르투갈 정서가 응축된 단어지요. 영어사전 찾아보면 missing으로 나오는데 기본적으로 그리워 하는 마음입니다. 현지인의 정서를 반영해 의미를 더 채우면,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그리워하는 마음입니다.

 

몇년 전 파두 학교에서 교육을 하는 영상을 있습니다. 객이 듣기에 기교는 훌륭한 학생이지만 사우다드가 없다고 선생님에게 단단히 혼나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사무치는 그리움을 성조와 호흡, 심지어 표정까지 일체적으로 표현해야 훌륭한 파두가수라고 합니다

 

처음엔, 파두냐 하며 파두 박물관에 따라왔던 식구들이지만 다들 즐겼습니다. 아버지가 사우다드를 갖고 좋아한 탓도 있겠지만, 이리저리 듣다보면 매력이 있어요. 파두 박물관은 파두 문화 전파를 위한 답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수많은 파두 가수들이 벽화로 모여 있고, 원하는 사람 번호를 누르면 파디스타의 노래를 그 자리에서 지급된 개인기기로 들을 있습니다. 또한 음악 감상실에는 방대한 라이브러리가 있어 헤드폰을 끼고 좋은 음질로 원하는 만큼 음악을 들을 있습니다. 비디오 감상실에서는 파두 뮤지션들의 공연, 아말리아를 포함한 흑백시절 전설적 공연들 실컷 감상할 있습니다. 그외에는 파두 관련한 미술품과 설명들이 있어 찬찬히 보면 빠른 시간에 많은 걸 알고 느낄 수 있지요.

 


저에겐 너무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날도 쌀쌀해서 오후 내내 파두에 빠져 지낼까 생각하던 차, 지나치게 쾌활한 미국인 단체관광객이 들어와 파두 박물관의 평화는 깨지고, 우리 가족은 아쉽게 박물관을 나섰습니다.

 

기기를 반납하며 이리저리 이야기 나누다,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파두가 좋아서 리스본까지 왔어요. 박물관도 참 좋았고요. 밤에 파두 보려면 어떤 방법이 좋아요?"

친숙한 눈매의 직원은 사무적인 속도로 소상히 알려줬습니다

'파두 공연은 알파마 지구와 바이후 알투 지역에 있어요. 바이후 알투는 급이 되니까 값이 높지 관광객이 가기 편하죠. 알파마는 선술집 분위기에 즐기는 곳인데 알아서 걷다가 그냥 들어가면 돼요. 아무래도 여기 모르면 호텔에 말하는게 제일 나아요.

 

오후에 몇군데 더 둘러 보고 호텔 오자마자 프론트 분과 대화하면서 파두 예약을 부탁했습니다. 바이후 알투에 한군데 알파마에 한군데 있는데 어디로 할까 물었습니다. 숙소에서 걸어  있는 바이후 알투로 부탁했지요. 8 시작인데, 시차도 아직 남아 있고 오랜 걸음으로 지친지라 잠시 눈을 붙이고 파두를 보러 갔습니다.

 


직접 파두는.. 정말 단번에 매료될 정도입니다. 여행 프로그램에서 봤던 현지인 정서 물씬 나는 선술집의 파두에 비하면 여긴 정제된 공연 느낌이 더 강했지만, 눈앞에서 피끓는 파두를 들으며 공명하여 끓어오르는 감정은 현장에서만 느낄 있는 부분입니다.

 

1 가수가 20 정도 부르고 잠시 휴식, 이어서 2, 3 이런 순서로 파디스타를 바꿔 진행하는데, 마지막 4 멋진 할배 가수의 공연 때는 1, 2, 3 가수들이  나와서 제창을 합니다. 공간적으로는 방의 모퉁이에 나눠 서서 돌아가며 서라운드 입체음향을 보입니다. 와중에 아는 노래는 손님도 따라 부르고, 식당 전체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습니다.

 


사이클 공연이 끝나면 다시 가수가 돌아가며 2부 공연을 합니다. 전에 스페인에서 플라멩꼬 들을 때는 둘째 사이클이 오히려  좋았었습니다. 관광객은 공연에 보고 가고 현지인은 자정 넘어의 둘째 공연에서 어울어져 즐기는거죠. 아무튼 둘째 파두 공연을 보는데 슬픈 노래가 아니라 밝은 분위기의 노래를 듣다가 주체할수 없는 눈물이 나서 스스로 의아했습니다. 파두의 힘인지 여객의 지나친 감상인지.

 


 새서 노래를 듣고 싶었지만, 같이 딸램이 노래가 좋지만 졸립다하여 자정 넘어 쯤 몇곡을 두고 숙소로 들어왔습니다. 바이후 알투 언덕에서 내리막을 걸으며 보는 도시 풍경이, 언덕에 깔린 같았어요. 드디어 리스본 땅에 발이 닿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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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전통음식의 특징은 해산물입니다.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도 아주 맞습니다.

 

포르투갈 여행 식당에서의 주의점은 하나만 기억하면 됩니다. 자리 앉으면 빵과 버터, 올리브를 내오는데 이게 유료입니다. 어느 나라를 가든, 관광객 대상으로 사기치는 식당 말고, 처음 세팅된 거에 돈받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포르투갈은 이게 특징이라고 합니다.

 

이유가 있다고 해요. 해산물 요리가 주문 후에 요리를 시작해서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실제 주문해보니 최소 30 어떤데는 거의 한시간 가까이 소요됩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입맛 다시며 빵과 올리브를 먹는게 현지인의 습성인데, 타국의 관광객과는 문화코드의 충돌이지요. 맛나게 먹고 계산해보니 별도 계산이 거의 10유로 추가되면 기분이 나빠지니까요저희가 집중적으로 애용하는 trip advisor에서 훌륭한 식당인데도 계산서보니 사기당했다고 별점 테러한 미국인들 봤어요.

 

자리 앉고나서 바로 빵을 내오면, 돈받냐 물어보거나 안먹겠다면 알겠다고 가져갑니다. 눈도 안흘겨요. ^^ 포르투갈 음식이 양이 많은 편이라, 먹고 인당 요리 하나씩 정도 시키면 먹기 힘들기도 합니다그런데 나오는것도 케바케 같아요. 관광객이 흔히 오는 곳은 국제화되어 미리 물어보거나 달라기 전에는 아예 줍니다. 그러나 저희처럼 현지인 많은 식당만 찾아다니면 알아두는게 도움 됩니다. 어떤 식당에선 우린 안주고 포르투갈 손님은 갖다 주던데 올리브가 너무 먹고 싶어서 따로 주문을 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먹어야 하는가.

 

일단은 대구와 정어리입니다. 대구는 국민음식으로 천가지 넘는 레시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김치처럼 집안마다 독특한 조리법이 있을 정도지요. 재미난건, 포르투갈에선 대구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대구는 영국 인근 북해나 원해에서 잡아 옵니다. 해양국가 포르투갈에서 국민 식재료인 대구를 전량 수입한다는게 믿어져서 여러 문헌을 봤는데 정말 그래요.

 


역사적으로는 포르투갈의 얼치기 황금기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대항해시대 포르투갈은 금과 향신료가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유럽 왕실 한때 가장 많은 금을 보유했다고도 하고요. 브라질과 동남아 식민지 덕입니다. 문제는 눈부신 성장의 시기에 넘쳐나는 국부를 국가 개발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귀족 문화가 매우 강한 포르투갈에서 대중을 위한 정치는 뒷전이고 귀족의 삶만 살핀게 문제입니다. 최소한 왕실이 자신들의 안위라도 장기적으로 근심이라도 해야하는데 그러지도 않았지요. 공짜로 재물이 마구 들어오다보니 오늘 온건 오늘 쓰고 내일은 내일의 배가 들어와 해결해줄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팽배했습니다. 점을 카르발류, 폼발 후작은 우려했던거고요.

 

덕에 유럽에서 가장 문맹율이 높고 독실한 (이라고 쓰고 미신같이 믿는) 가톨릭이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했습니다. 신으로 윽박지르면 통치하기도 쉽고, 실은 왕가도 맹신을 했어요. '미친왕' 아폰수 5세는 여섯살인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사제인 친척들 손에 키워졌다고 해요. 결국 자신과 포르투갈이 가톨릭을 구할수 있다고 믿고 계란으로 바위치는 전쟁에 나가 전략은 물론 교리와 전술도 없는 전쟁을 일으켰지요. 결국 젊은 왕이 후사도 없이 적진으로 무모하게 돌진하다 허무하게 죽고, 이후 포르투갈은 왕위계승전의 복마전으로 빠져들기도 했었지요.

 

이런 정황으로 당시 맛난 대구를 수입해 먹는게 산업적으로 경제적으로 대수가 아니었고 포르투갈 국민은 수입대구에 입맛이 길들여져 버린겁니다. 그래서 포르투갈 대구의 특징은 먼바다에서 가져오느라 아주 강한 염장이 상태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대구 조리법의 핵심은 염장된 간을 빼내어 대구의 맛을 다시 부드럽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심지어 냉장기술이 발전해 이상 강한 염장이 필요없는 현대에도, 냉장대구를 가져와 굳이 다시 염장해서 판다고 해요. 사람의 입맛은 합리로만은 설명이 안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반면 정어리는 포르투갈 바다 전역에서 잡힌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어리는 포르투갈 음식에서 대구처럼 왕의 지위는 아닐지라도, 동네 친구처럼 계절 메뉴를 메우는 친숙한 존재입니다. 실제로 이날도 알파마 골목을 지나는데 현지인들이 밖에서 정어리를 굽는데 냄새에 급속한 허기를 느껴 식당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외에 포르투갈 음식의 특징은 쌀을 매우 많이 먹는다는 점입니다. 자기들 말이지만 유럽에서 인당 소비량 1등이 포르투갈이라고 하네요. 쌀이 많이 나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 유명한 빠에야가 있다면, 포르투갈에는 해물밥, 아호스 마히스쿠(arroz de marisco) 있습니다. 빠에야가 사프란을 넣어 좀더 고급스럽고 고슬고슬한 맛이라면, 포르투갈 해물밥은 해물탕 마지막에 퐁당 넣고 졸여준 맛과 비슷합니다. 이탈리아의 리조또와도 다른 풍미에요. 매우 맛있고 서민적입니다. 저는 탄수화물 안먹겠다고 버티다가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맛에 쉴새없이 숟가락질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다소 곁다리지만 포르투갈 감자는 정말 맛납니다. 종자가 다른지 토양이 달라서인지 다른 감자와 사뭇 다릅니다. 먹으면 포슬포슬한 식감이 일품입니다. 삶은 감자는 쳐다도 안보는 제가, 앉은 자리에서 먹고 먹어 알이나 먹었는지 기억도 안납니다.

 

배가 불러 디저트는 생략하더라도 커피 한잔은 해야죠. 포르투갈 커피는 매우 진합니다. 진한 풍미의 이탈리아보다도 한등급씩 진하다고 보면 됩니다. '커피' 주문하면 매우 진한 에스프레소가 나오고, '아메리카노' 시키면 이탈리아의 카페 정도 진한 녀석이 나옵니다. 물론 커피가 연료인 저에겐 맛만 있으면 상관 없습니다. 아무튼 맛이 상당히 좋으니 현지가면 묽게라도 드셔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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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클래식맨 2018.02.03 20:05 신고

    맛있겠네용 ㅎㅎ

둘째 날은 밝았고 제일 걱정이 되는 날입니다. 예보상 가능성이 높았는데 다행히 아침 예보에 비는 없습니다. 다만 종일 흐린 상태에서 해가 감질나게 나왔다 들어가는 날씨이고, 나가보니 실제 온도보다 춥게 느껴졌습니다.

 

아침에 원데이 교통카드를 사고, 트램을 탔습니다. 리스본의 트램은.. 정말 정서적입니다. 언덕을 오르내릴때는 샌프란시스코의 느낌과도 비슷하지만, 유럽의 오래된 건물과 좁은 골목을 헤집고 다닐때는 테마파크에 가깝습니다. 리스본 여행자들의 수호신 28 트램은 주요 관광지를 죄다 커버해서 유명한데, 페소아의 100년전 책에도 나오는것이 신기합니다. 어쩌면 도시로서 시간속에 박제된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덕에 수도의 산업적 기능에는 제약이 있었겠지만, 세월 견디고나니 세상 어디에도 없는 관광적 가치가 생긴점도 아이러니 합니다. 전통과 현대, 기능과 미학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안되는 도시입니다.

 


전망대에서 잠시 바다, 아니 구경을 했습니다. 리스본 항구에는 거대한 강이 흐릅니다. 지리를 모르고 가면 영락없는 바다인데, 실은 테주 (Rio Tejo)입니다. 영어로는 타구스(Tagu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강이란걸 아는 저도 보면서 말할 바다라고 말실수를 계속 정도로 대단한 강폭을 자랑합니다. 리스본은 어마어마한 테주 덕에 천혜의 바다 도시가 되었습니다. 대형 선박이 쉽사리 들어올 있지만 바다의 폭풍은 피할 있는 내륙의 항구. 바다의 확장적 접근성과 내륙의 통합적 기반이 뒤섞이는 도시.

 


그로 인해 고대부터 힘센 이들은 리스본을 장악하려 노력했습니다. 십자군 전쟁 안되는 성과를 이룬 곳도 리스본 수복인데요. 폭풍으로 길잃은 십자군이 포르투에 입항했습니다. 그리고는 포르투 대주교의 설득으로 리스본 공성 중인 왕을 만납니다. 왕은 함께 성을 치자고 했고 십자군은 양아치 기질을 발휘해서 거절합니다. 결국 리스본 왕이 3일간 약탈의 권한을 준후에야 만족해서 공성에 참가합니다. 리스본을 무슬림에게서 수복했지만, 십자군이 동료 가톨릭의 도시를 탈탈 털어버린 흑역사의 고장이기도 합니다.

 

물리적으로 강물이 벌떡 일어선 적이 한번 있었는데, 리스본 대지진이었습니다. 처음에 건물이 무너져 사람들이 깔리고, 한시간 정도 후에 쓰나미가 오면서 강물이 도시를 덮쳐 2 피해를 입혔다고 합니다. 부수고 씻어 내린후, 화재가 도시를 며칠간 불태웠습니다.

 

아무튼, 밀려드는 상념을 뒤로하고 목적지인 조르주 성으로 갑니다.

성은 윤곽이 매우 아름답고, 바이샤 지구 왠만한데서는 항상 보이기 때문에 관광객이라면 위에 뭐가 있는지 필요도 없이 본능적으로 가고 싶은 곳입니다. 최소한 저는 그랬습니다.

 


성은언덕 고도에 걸맞는 엄청난 풍경을 자랑합니다. 딸램은 불과 리스본 3일차인 조르주 성에서 인생 최고의 도시로 랭킹을 바로 바꿨을 정도지요. 이날 바람이 매워 원하는만큼 충분히 머무르진 못하고 성을 내려왔습니다.

 

성문에서 내려 걷다 비센트 동상을 봅니다. 비센트는 리스본의 수호 성인입니다. 비센트가 리스본으로 복귀할 배가 길을 잃었는데 까마귀 떼가 길을 열어주었고, 두마리 까마귀가 끝까지 함께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리스본의 도시 문장도 배와 두마리 까마귀입니다. 비센트 수호성인은 알아보기가 쉽습니다. 수도사가 배나 까마귀랑 함께 있으면 비센트입니다.

 


이어서 구불구불한 골목에서 길을 찾으려 구글 맵에 나침반까지 켜고 방향을 찾습니다. 골목 골목이 자체로 볼거리지요. 노후해도 사연이 숨은듯해 아름답습니다. 특히 글을 못읽던 시절 집주인을 표시하던 관습으로 주인의 사진이 문패로 걸려있는건 매우 인상적입니다. 주인의 아름다웠던 시절이 상상이 갑니다. 현지말을 안다면 눈마주칠때 커피라도 한잔 청하고 싶은 정도.

 


시내가 넓지 않고 언덕이 가파른 편이라, 걷기에 익숙한 한국인 걸음으로는 '벌써 다왔어' 정도로 빠른 시간에 평지에 도착했습니다. 의도하고 간건 아닌데 알파마 지구로 내려오니 파두 박물관이 보입니다. 가기 전에 일단 주린 배를 채우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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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여정은 호까 (Cabo da Roca)입니다.


여긴 제가 무척 가보고 싶던 곳입니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품은 이스탄불도 봤지만, 징기스칸이 그토록 닿고자 했던 서쪽의 땅끝은 왠지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게 사실입니다. 바로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이란 하나로 유명한 호까 곶입니다.

 

원래 유럽에서 유명한 포인트는 땅끝이라는 이름 그대로 피니스테레(Finisterre)입니다. 포르투갈 북쪽 스페인 땅인 갈리시아에 있지요. 유명한 까미노길의 종점 산띠아고 꼼뽀스뗄라 성당에서 서쪽으로 걸으면 나옵니다. 중세와 현대의 순례자들이 들르기도 했고,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도 시차를 두고 주인공들의 상황 전환이 이뤄지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발견의 시대 전에는 피니스테레가 세상의 한계점이었지요. 거기서 바다로 나가 끝까지 가면 물밖으로 떨어지거나 괴물들이 나와 항해자를 죽게 만든다는 신화적 안전한계선.

 

하지만, 지리학이 발전되면서 포르투갈의 리스본 근처에 진짜 서쪽이 있다는게 알려지고는 지리상 땅끝은 이젠 확실히 호까곶입니다. 까몽이스를 빌리면,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도다'라는 감성.

 

헤갈레이라 별장에서 호까 곶을 가려면, 신트라 패스로 버스를 타고 다시 신트라역에 가서 호까 가는 버스를 갈아 타야합니다. 시간이 세시가 넘어 버스를 두번 기다려 갈아타면 호까 곶에 가도 해가 떨어질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무어인의 , 페나 , 헤갈레이라 별장까지 모두 산을 헤집고 다닌 일정이라 첫날부터 체력도 상당히 소비한 터라, 우버를 불렀습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포르투갈의 우버는 환상입니다. 가격도 착하고 차도 깨끗하고 기사님은 훌륭하고 모든게 좋았습니다. 중턱의 헤갈레이라에서 호까 곶까지 16km 되는 길을, 심지어 행정구역도 바뀌는 거리를, 14유로 정도에 가니 이래도 되나 싶었습니다.

 

호까 가며 이야기 나눈 기사님은 조지 클루니 같이 멋진 수염을 기른 분인데, 브라질에서 오래 살다가 왔다고 합니다. 기사님의 처가인 아마존 동네 그리고 슈하스까리아나 까이삐리냐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다 보니 순식간에 땅끝에 도착했지요. 재미난건 리스본에 돌아와 산지도 십수년인데, 양반 호까 곶을 오늘 처음 가본다고 합니다.

" 됐네요. 우리 내려주고 구경 하다 가요."

말없이 웃기만 하던 기사님은 진짜 그럴 작정으로 콜을 잡았는지, 주차를 하고 담배 한대 멋지게 피워 물고 해변으로 갔습니다.

 


드디어 마주한 대서양. 기분 탓인지 감흥이 다릅니다. 베니스의 아드리아해, 아테네에서 보던 에게해, 바르셀로나의 지중해와는 원래 규모가 다르지만, 하와이에서 사방이 물이었던 태평양도, 끝없이 햇살이 부서지던 캘리포니아의 태평양, cape cod DC, 마이애미에서 보던 해오르는 대서양과 느낌이 다릅니다.

 


땅끝이란 상징성에 대항해시대의 영광이 스러진 파두(fado) 같은 문화에 남아 서려 있는 , 몸이 날아갈듯 강한 바람 등이 묘하게 종말적 느낌마저 듭니다. 춥지만 않다면 점심 먹고 앉아서 해질때까지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 였습니다. 평생 노동하신 할아버지의 굳은살 배겼으되 닿으면 온기가 전해지는 손을 잡은 기분이었습니다.

 

의미를 접어두면 호까 자체는 섬과 해안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많이 풍경입니다. 등대가 있고 깔끔하게 정돈된 투어 라인이 있는 그런 장소. 여행 내내 놀랄 정도로 한국인 관광객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특히 호까 곶은 방금 관광버스로 한국 손님들을 쏟아 놔서, 제주 섭지코지에 있는 느낌과 같습니다. 그정도의 외국인과 정도의 한인들.

 


뒤집어 말하면 아직 중국인 단체 여행객에 오염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유럽 주요 관광지 아닐까 싶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호까 곶에서 일몰을 보려던게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름에도 한기를 느낀다는 곶의 바람이 너무 맵습니다. 우버를 타서 절약한 시간이 한시간 정도 되니, 원래 계획엔 있었으되 빠듯해서 포기했던 카스카이스에 가기로 했습니다.

 


여기는 대서양을 남면하고 있는 해안 마을입니다. 풍경이 아름다워 부자들의 별장 마을이라고도 하지요. 잠깐 봐서는 그런 사회경제적 의미는 모르겠고, 그냥 아름다워요. 상점이 늘어선 골목에 들어서면 심장까지 들어오는 깔사다(Calçada) 매혹.

 

포르투갈의 거리 미술 세가지라고 하면 세가지를 꼽습니다. 구석구석 꼼꼼히도 벽들을 점령한 그래피티, 색과 형태가 일품인 도자기 타일 아줄레주(azulejo) 그리고 공공 시설 만들라하니 예술을 해버린 깔사다.

 

저희 가족이 깔사다를 처음 본건 마카오였습니다. 광장에서 성당까지 물결치는 파도같은 무늬의 신선한 생경함이란. 기분이 좋은걸 넘어 유럽에 듯한 기분을 흠뻑 느꼈지요. 식당에서 세트로 끼워준 맛좋은 포르투갈 와인과 깔사다 깔린 광장이 포르투갈 여행을 은밀히 추진해온 의식속의 음모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호텔 주변에서도 깔사다를 봤겠지만 급히 이동 중이라 기억 없었는데, 여행객의 완보로 즈려 걷는다면 이야기는 완전 다릅니다. 단지 이름 모를 골목을, 광장을 걷는데 멋진 행사의 주인공이라도 기분입니다. 조금 수다 떨며 기다리면 뭔가 근사한 일이라도 벌어질 정황입니다. 공간이 지어내는 정서는 디자인의 공공재적 역할을 넘어 인본적 존재의미까지 되새기게 합니다.

 

깔사다는 실제로 돈이 많이 든다고 합니다. 장인들이 전체 그림을 생각해서 그에 맞춰 색돌을 픽셀처럼 박아 넣고 모래를 뿌려 틈새를 메운 , 나머지는 행인의 몫으로 둡니다. 그래서 유명한 광장은 사람들의 발굽에 닳고 닳아 매끈해집니다. 돌과 돌의 점묘가 아니라 거대한 얼음판처럼 면발광을 합니다. 모습은 저희같은 포르투갈 초짜는 매번 놀라는데, 흡사 방금 비온 느낌입니다. 점포에 있다 나오면 바닥에 사물이 비춰 비가 왔었나 흠칫하면 마른 . 무척 아름답고 기분 좋고 걷는게 행복한 포르투갈의 깔사다입니다. 마카오 가보신분들은 느낌 아실듯.

 


해변과 바닷가 마을의 골목, 광장을 정신없이 걷다가 리스본으로 열차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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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세트가 아니라고?

페나성(Palacio de Pana)은 여행 사진으로 볼때부터 아기자기한 미감으로 기대가 컸습니다. 허나 실제로 가보니, 초현실적이었습니다.

 


무어인의 성에서 버스로 정거장, 걸어도 15분거리지만 오르막입니다. 체력을 아껴야 하는 여행객은 신트라 패스로 버스를 타고, 여정이 넉넉하면 산길을 걸어도 좋습니다. 좁은 산길에 거의 꽉차는 버스는 구불구불 길을 잘도 가는데, 마지막 모퉁이를 돌면 눈앞에 튀어나오는 노란 성은 소리가 나옵니다.

 

페나성은 유명한 관광지라 무어성보다 줄이 몇배 깁니다. 하지만, 딸램의 사전조사로 무어성에서 통합 입장권을 샀기 때문에 우리는 안서고 바로 입장했습니다. 피같은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최소 반시간 이상 아꼈고, 괜히 기분으로 흡족히 입장했습니다. 페나성은 정문에서 자그마한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데, 다리가 불편하면 3유로 정도하는 카트를 타도 됩니다. 우리는 내면 마음이 불편하니 신나게 걸어 갔습니다. 사실 포르투갈 정도 언덕은 한국사람에겐 귀엽습니다. 연일 다니는게 힘든거지.

 

신트라 마을에는 리스본 왕가가 더위를 피하던 여름궁전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트라 여행의 주요 목적이라 정도로 페나성이 유명하지요. 기암절벽위에 강렬한 원색의 성은 동화책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성은 페르디난트 왕이 부인에게 선물했다고 전해지는데, 부자의 왕놀이보다는 자체의 생김새가 눈을 잡고 놔주지 않습니다.

 


건물을 찬찬히 뜯어보면, 이슬람 양식과 고딕, 심지어 포르투갈 고유의 마누엘 양식까지 혼재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오랜 오욕의 세월을 견뎠다는 이야기고, 한발 물러서 보면 사실 건물이 욕볼일이 뭘까 싶기도 합니다. 거주하는 사람이 서로 이기고 바뀌었을 뿐이지.

 

아무튼 인생사진 건진다는 페나성에서 아이폰X 초상화 모드로 사진을 잔뜩 찍고 다음 장소로 향합니다.

 

 


멋진 점심을 먹고 싶었지만, 레스토랑 가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카페(Tasca보다 캐주얼해서 음료와 가벼운 빵을 파는 식당의 통칭)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산위에서 바람을 많이 맞아 뜨끈한 빠니니가 매우 반갑습니다.

 


다음은 헤갈레이라 별장(Quinta da Regaleira). 장소를 점지한 딸램은 어떤 곳인지 알고 갔지만 저는 아무 생각없이 따라갔다가 가장 즐거웠던 곳입니다. 왕궁도 아니고 백만장자의 별장이 대수라고.. 생각했던 저는 짧았던 소견을 뉘우쳐야 했습니다.

 

정원의 여러가지 탑과 인공호수, 건물들도 아름답지만 이런건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수도 없이 봤으니 넘어가고.. 별장에는 매우 특별한 장소가 있습니다. 3차원적이고 매립형이라 사진으로는 제대로 보여주기도 힘들어요.

 

일단 설명하면 언덕의 위에 작은 돌무더기가 있습니다


돌무더기 사이에 돌판으로 문이 있는데 문을 열면 동굴입구가 나옵니다. 그리로 바로 들어가도 되고 돌무더기에서 약간 내려오면 작고 평평한 운동장이 있는데 여기에도 비밀의 돌문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보듯, 돌판인데 밀면 회전하면서 한명이 빠져나가도 다시 닫히는.

 


입구로 들어서면 밑으로 깊이 파인 원형 계단이 있습니다. 결국, 언덕속에 묻혀있는 탑인겁니다


탑을 따라 내려가다가 길이 아닌듯 어둠속으로 분기해서 수도 있습니다. 깜깜한 동굴을 믿음 하나로 걸어 밖으로 나가면 전체 언덕의 중턱으로 빠져 나옵니다. 광장과 분수도 있고요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고 중간이므로 다시 원형계단을 따라 탑의 끝까지  내려갑니다. 탑의 바닥에서는 손바닥만한 하늘이 멀리 보입니다


다시 원형 바닥에 어두컴컴 뚫린 구멍으로 몸을 낮추고 걸으면 미로 동굴이 나옵니다. 미로 동굴의 끝에는 폭포가 보입니다


폭포 넘어에 언덕 아랫자락인거죠. 언덕 속에 거대한 탑과 미로 동굴이 폭포와 숨은 돌문 속에 숨어 있는 구조입니다.

 

철학적으로는 탑의 최상층에서 아래로 가서 폭포로 나오는 과정이 죽음 이후의 환생 과정이라고 하는데, 아무튼 매순간이 매우 기이하지만 가슴 설레이는 경험입니다. 어른을 위한 놀이터라고나 할까요. 헤갈레이라 별장은 브라질과의 커피무역으로 돈을 많이 아들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돈만 있다고 이런걸 쉽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 주인장의 세계관이 대단하단 생각이 드는 곳입니다.

 

페나성과 헤갈레이라 별장, 정말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펼쳐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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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nibest 2018.02.02 08:57 신고

    열혈독자가 다음 포스팅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어요.
    페나성 딱 내 스똬일~

  2. BlogIcon Inuit 2018.02.03 10:51 신고

    응 페나성 가서 너가 이거 보면 꽤 좋아하겠다 생각했었네. 근데 사실 헤갈리이라 가면 더 좋아할걸. 완전 인디아나 존스같은 느낌..

여행에 있어 계획은, 사전 정보의 정리본일 뿐이다

 

자유여행으로 수년간 가족여행을 하며 배운 점입니다. 장소와 시간까지 철저히 계획해봤자, 현지에 가면 모든게 달라집니다. 가족의 체력, 입맛, 날씨, 현지의 갖가지 돌발상황으로 계획이 어긋나기 일쑤지요. 특히 동선 짜서 식당 봐두는건 2~3년차에 관뒀습니다. 장소에서 배고파 식사할 확률은 희박하니까요.

 

아무튼 포르투갈의 첫날, 신트라에 가리라고는 생각을 안했습니다. 포르투갈 겨울 날씨는 한국보다 온화합니다. 여행 2주부터 모니터링 해보니 7도에서 17 사이에서 움직이네요. 늦가을 날씨 정도로 생각하고 준비했습니다. 리스본이 유럽 부자들 겨울 휴양지로도 자주 활용되는 곳이란 점도 참고했고요.

 

그런데, 리스본 관련 글들을 읽어 가다 보니 느낌이 합니다. 대서양에 인접한 리스본과 포르투의 겨울은 그리 상냥하지 않은듯 합니다. 바다에 면한 탓인지 습해서 체감은 춥고, 기후상으로도 연중 가장 비가 많이 내리는 시기가 겨울이라합니다.


 

해가 변수다

 

그래서 가급적 좋은 예쁜 곳을 가기로 방침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첫날이 햇살 매우 좋은 날이란 점을 감안해 여행 순서를 완전히 바꿔, 교외의 신트라(Sintra) 가기로 했습니다. 우리로 치면, 서울 도착해서 바로 기차타고 경주 놀러간 셈입니다. 왜냐면 신트라는 딸램이 매우 기대를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가장 좋은 가고 싶었습니다.


 

우리 숙소가 시내 한복판이라 잠깐 걸어 호시우역에 갔습니다. 신트라 패스가 있어 당일 여행에 최적입니다. 리스본에서 신트라까지 가는 교외 기차와 신트라 지역 모든 버스가 당일 무제한입니다.

 

포르투갈은 스페인이 아니다 

신트라 가는 기차에서 메모한 내용입니다. 제가 오해했듯, 흔히 포르투갈은 스페인 문화의 부분집합으로 생각하지요. 말이 매우 유사하고, 떼어내면 지도에서 이가 빠져 보일 정도로 나라 같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역학관계로만 보면 우리나라가 일본의 부분집합이라고 보는 정도로 심각한 오독이란 점을 포르투갈 역사를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부르고뉴에서 젊은 기사가 이베리아 왕국을 도와주고나서 공주와 결혼해 한명은 스페인, 한명은 포르투갈의 왕조를 것조차 출발선의 유사성이지 혈연적 연관성은 아닌거죠. 물론 60 정도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시기도 있지만, 바로 독립했습니다. 역사에 걸쳐 포르투갈은 대국 스페인이 병합하는게 매우 심각한 위협이었을 정도로 독립 상태를 내내 유지했고, 스페인 여러 왕국중 그냥 이탈한 나라는 아니란 점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까딸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안함을 전제하고) 까딸루냐는 스페인의 부분집합으로서 마드리드 정권이 철저히 억압하고 통제를 해온거고요. 심지어 포르투갈 독립도 까딸루냐 반란을 막는 혼란의 와중을 틈탔을 정도입니다. 까스띠야 정권은 포르투갈은 욕심 내지 말고 까딸루냐만 확실히 때려잡자고 결정했었지요.

 

아무튼, 신트라 가는 와중에 메모를 한건, 이런 역사를 상기해서 쓴게 아니고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적은겁니다. 풍경과 정서가 사뭇 달랐습니다. 지중해의 살랑이는 바람. 쨍하고 따끈한 햇살, 와글와글 웃음과 수다가 폭발하는 사람들 같은 스페인의 보들보들함과 차이가 컸습니다. 뭔가 풀먹인 옷감 같은 서늘한 느낌. 그러나 살에 닿으면 이내 따스해지는 느낌이 첫째 차이면, 펼쳐지는 풍광은 그냥 달랐습니다. 물론 까스띠야와 까딸루냐 지방만, 그것도 잠깐 정도로 온전한 비교는 아니지만, 단박에 말할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포르투갈은 포르투갈 자체로 읽어야 그나마 맛을 조금 느낄 있습니다. 여행 마친 지금은 대서양 정서와 지중해 정서의 차이로 이해합니다.


 


신트라역에서 버스를 타고 무어인의 (Castelo dos Mouros) 갔습니다. 무어인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지요. 지중해의 입을 다무는 지르롤터 해협 같은 경우 대륙간 거리가 10km 조금 넘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이베리아가 지척이지요. 로마와 맞짱 카르타고의 사례처럼, 중세 이전의 북아프리카는 문화적으로 군사적으로 매우 강했습니다. 심지어 사막화도 진행되기 전이라고 하니말입니다.

 

따라서 로마가 떠난 이베리아 반도는 쉽사리 아프리카 세력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그들을 바로 무어인이라 부르죠. 스페인이란 나라는 무어인을 쫓은 대찬 기독교 커플, 이사벨과 페르난도 이후에 역사가 비로소 시작되었지요. 포르투갈은 스페인보다 이백여년 일찍 무어인을 몰아냈습니다. 스페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고 변방이라 가능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무튼 무어인이라고 오랑캐처럼 부르는 사람들은 실은 학문이나 문화적으로 우월한 사람들이었고 오랜 지배를 받은 탓에 이베리아 전역은 영향이 물씬 배어 있습니다. 문화적으로 풍성하고 미학적으로도 탁월하고요. 스페인 쪽은 예전에 이야기 많이 했는데, 포르투갈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두 같은 음악이나 알가르베, 알파마 지명에 흔적이 많이 남아있고, 리스본의 모우라 언덕을 비롯해 지금 가는 무어인의 성도 그런 역사의 편린이지요.

 




신트라 역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무어인의 성은 신비롭습니다. 기상예보에도 날이 좋다고 나왔고 아래는 해가 쨍쨍한데, 성에 접어 들자마자 안개에 감싸이고 빗방울도 수시로 후두둑거립니다. (과학적으로보면 산에 구름이 걸려 비로 변하는 국지적 현상입니다만 낭만적이지 않으니 패스)

 

여기도 우리나라 성곽처럼 성벽을 따라 걸을 있습니다. 실제로 걷다보면 많은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골조가 남아있을 정도로 단단하단 , 가파른 경사의 정상에 있어 공략이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을거란 생각, 공성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을까, 생각하는 와중에 펼쳐지는 아래마을의 안온한 미감이란. 잠시 들르 객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하고. 전쟁에 장수의 목을 효수하듯 관광객을 위해 달아놓은 아랍어 국기의 처연함이 이슬비 아래서 그리 도드라지게 이쁜건지.

 


한참을 성에서 놀고 싶지만 신트라를 하루에 떼어야 하는 급한 마음에 다음 목적지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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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nibest 2018.02.01 12:47 신고

    빨리빨리!!
    담글!! 담글!! ^^

  2. BlogIcon Inuit 2018.02.03 10:50 신고

    엉.. 분발하고 있다 ^^

이번 제주도 일주 여행은 직전에 급히 계획을 잡게 되었습니다.

7년을 기다린 꿈이지만 7 전에 결심을 하니 이것저것 준비할게 많습니다.


비행기예약
자전거예약루트 설계그에 맞춘 숙박그리고 계속 이동중에 그래도 맛난 음식 먹을 계획까지 세우려니까 머리가 하얗더군요.


 

지난번 벨기에 여행 때부터 원노트를 사용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톡톡히 덕을 봤습니다.



STEP 0 체크리스트

여행 준비 중 은근히 정신 산란하게 (distracting) 만드는게 물품입니다. 계획 세우다 보면, 이거 챙겨야

하는데 저것도 가져가면 어떨까, 참 이거 빼먹을 뻔했는데.. 생각이 자꾸 나지요.

이럴때 체크리스트는 매우 유용합니다. 

원노트 체크박스를 사용해 물품을 정리해두면, 떠나기 직전에 가방에 넣고 체크체크하면 끝.
 

STEP 1 항공권

항공권 예약이야 인터파크 같은 예약 사이트에서 하면 됩니다. 중요한건 메일로 오는 예약증이나 전자 항공권을 'onenote 인쇄하기'하면 항공권을 별도 페이지에 담을 있습니다. 이제 종이한장 없이 공항가서 스마트폰을 꺼내면 예약번호를 바로 원노트에서 있습니다.

 

STEP 2 숙소

숙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약증을 원노트에 넣어두면, 이후로는 잊어버려도 됩니다. 우리나라는 예약자 성명으로 기록을 금 찾지만, 해외는 예약번호가 필수입니다.

 


STEP 3 동선 계획

전체 지도에서 대략 3분할을 하여 거리를 계산 합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첫날 중문, 둘째날 성산 쯤이 적당한 거리라고 결정했습니다.

 

STEP 4 바이크 렌털

마찬가지로 바이크 렌털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는대로 클리핑을 하고, 몇가지 대안 하나를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예약한 샵에서 주는 혜택들을 긁어 붙여 놓으면 당일 체크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자전거 빌리러 가보니 사람마다 조건이 달라 자전거 내주시는 분이 헛갈려 하던데, 제가 정리해 놓은 보여드렸더니 무척 편해 하셨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팁은, 원노트에 계산 기능이 있습니다. 예컨대 38*4  다음에 = 넣는 순간 자동으로 계산값을 표시해 줍니다. 예산 세울 때도 편히 사용 가능합니다.

 


STEP 5 매일 일정

원노트가 에버노트보다 파워풀한 점은 노트 공간을 자유롭게 있다는 점입니다. 멀티 컬럼도 쉽게 사용 가능하지요. 원노트 내장의 표기능을 이용해 대략적인 일정과 소요 시간을 적습니다.


이를 놓고 라이딩 시간을 매핑해보면 대략 어디쯤에서 점심을 먹고 숙박을 할지 모양이 보입니다. 사실 부분 추측이 힘들어 계획 세우기가 어려웠는데, 이렇게 펼쳐놓고 보니 단번에 답이 보였습니다.

 

STEP 6 세부 일정 튜닝

이제 대략의 계획은 완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식사 장소나 plan B 생각할 때입니다.

구글맵이 동원됩니다. 네이버 맵은 즐겨찾기를 놓아도 지도에 보이지 않아 젬병입니다.

구글맵을 놓고 주요 포인트를 보면서 계획에 무리가 없는지, 일정에 무리가 갔을 때, 생각만치 갔을 점심이나 숙소가 어디쯤으로 바뀔지 예측해 봅니다.

그리고 맛집 정보를 찾을 때마다 지도에 위치를 대략 찍어 라이딩 동선에서 많이 벗어나는지 등등을 체크합니다.

 

이렇게 정보를 찾는대로 시각화하면서 정리하고 정리한 결과는 항상 스마트 폰에서 바로 사용가능하게 되니 여행의 준비가 매우 편했습니다. 효율적이기도 했고요.

 

에버노트의 충성고객이었지만 이제는 원노트 매니아가 되었습니다.

Albert Podell

(title) Around the world in 50 years

 

Fascinating

많이 매력적인 책이다. '80일간의 세계일주' 확장판 정도의 느낌으로 책을 잡았다. 런던 신사보다  많이, 오래 세계를 돌았겠지 여겼다. 추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저자는 " 세계" 도는게 목표였기 때문이다.

 


THE WORLD

모든 나라를 가본다는 말의 함의를 다시 생각했다. 글쓴이도 그랬다. 일단 ' 세계' 정의부터 다시해야 한다. 미국이 비자를 발급하는 '나라' 251개다. 자체 통화가 있는 나라로 정의하면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동티모르, 파나마 등은 나라가 아니다. UN 회원국이 그나마 가장 공정한 기준이지만 타이완과 바티칸 시티는 빠지게 된다. 심지어 50년에 걸쳐 전세계를 방문하다보면 나라가 새로 생기거나 없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저자가 방문했던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독립해 다시 방문하기도 한다.

 


Black Africa

나름 세상 많이 다녔고 스페인어와 라틴 문화를 좋아하니까 세계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다. 그건 착각이었다특히 넓이 숫자에서 상당부분 지구의 지분을 갖고 있는 아프리카는 내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책읽다 나라이름 나오면 생소한 나라도 많고 지정학적 위치는 죄다 몰랐다. 나이제르와 나이지리아, 콩고 공화국과 콩고 민주 공화국의 차이도 몰랐고, 자이레란 나라가 개명한것도 몰랐다. 관심이 없었으니까.




Virtual Travel

책을 읽는데 평소의 열배 이상 걸렸다. 자세하고 생생한 묘사 덕에 아예 구글 지도를 켜놓고 대조하며 읽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저자의 상황을 이해하고파서 그랬는데 그렇게 읽다보니 나도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내내 그리 읽었다. 읽는 속도가 더뎌봤자 50년에 걸쳐 여행한 저자의 시간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지니. 그래서 책을 완독했을 왠지 모르게 뿌듯함과 피곤함도 느꼈다.

 

Inuit Points  ★★★★★
개인적
감동 더해 별다섯 만점을 줬다. 앞으로 세상 구경 더할 작정이지만 책에 나온 나라에 대한 경험은 여기서 끝일 나라가 대부분이다. 간접경험과 배움만으로도 책이 너무 고맙다. 아울러, 세상 모든 나라를 들러보겠다는 청춘의 꿈을 50년에 걸쳐 이룬 포델씨의 집념과 투지도 울림이 컸다. 복잡한 삶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시간 내어 읽어보면 좋다. 삶과 관계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더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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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에러다.


책을 덮으며 든 느낌이 딱 이랬다.
잘 알려진 스페인 여행서의 아류작스러운 이 책은, 제목만 경망스럽다. 그러나, 내용은 만족스럽다.

내가 책을 읽으면 하는 몇 가지 일이 있다. 책 DB에 status를 다 읽음으로 바꾸고 별점을 입력한다. 그리고 간단한 인상 평을 적고, 주말에 좀 긴 리뷰를 적는다. 이 별점 시스템에서 5점 만점을 받는 책은 1년에 한 두권이니 대개 실제적 만점은 별 네개가 최고다. 그냥 괜찮은 책은 별 셋.
이 책은 주저없이 별 넷이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 책의 미덕을 모두 갖췄다.

제일 중요한 것은 당연히 현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다. 하지만, 일반 가이드북이 반복하는 테마와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냥 낙제점이다. 그럴 바에는 건조한 가이드북이 낫다. 이런 면에서, 현지에 솥단지 걸고 살아본 사람의 말을 난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가급적이면 뼈 묻을 각오하고 간 사람(그가 한국인이든 제3국인이든)이 낫다. 인도네시아처럼, 현지에 정통하면서 동시에 글까지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경우에는, 그나마 오래 살아본 사람을 높이 본다. 이 책의 저자는 직접 현지인과 소통하며 문화에 대한 눈을 떠가고 그 과정을 잘 적어 놓은 점이 일단 합격점이다.

그 좋은 척도는 현지어다. 현지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다면, 그로 인해 현지 정서를 정확히 읽을 수 있다면 그로서 만족이다. 같은 관점에서 러시아 책은 사진말고는 다시 볼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별점 두개를 받았다. 

다음으로 평가하는 부분은 저자만의 독특한 관점이다. 이 부분은 숨겨진 경관, 맛집 등으로 귀결되지만, 그보다 현지에서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정서나 기류를 가이드 해주는게 큰 공헌이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솥단지와 현지어를 이야기한 까닭이기도 하다. 여행자가 가이드에 의지해서는 절대 읽을 수 없는 현지의 중요한 정서나 문화가 있다는 점을 난 잘 안다. 이 부분을 단 하나라도 짚어준다면 그 책은 책값 이상의 가치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점이 뛰어나다. 일본 이전에 중국 등에서 살아본 다문화 경험이 있어 더 미묘한 차이를 잘 맡아낸다.

마지막 하나를 추가한다면 책으로서의 가치다. 난 좋은 책은 단연 잘 읽히는 책이라고 믿는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독자를 질리게 만드는 책은 결격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여행 책은 재미읽게 읽혀야 한다. 일반화하기 힘든 개인적 스토리가 들어가든, 문체가 경쾌하든, 시각이 섬세하든 매력이 있어야 잘 읽히고 좋은 여행 책이다. 저자 김동운 씨는 일본인 부인과 함께 살기 위해 도쿄로 건너갔고, 처와 처가가 있는  그곳에서 도쿄를 대하기에, 시선이 따뜻할 뿐더러 현지 밀착적이다.

이런 미덕으로 잘 씌여진 여행책은 이미 현지에 가기 전에 그 곳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 낯선 두려움의 여정을, 설레이는 인연과 조우의 시간으로 벼려낸다. 이번 일본 출장은 혼자 갔었다. 그 전에는 일본인 파트너건, 한국인 주재원이든 가이드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먹고, 자고, 이동하는 과정이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말은 고민도 없고 느낌도 없는 대한민국 일본남도 도쿄시 정도의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혼자였고, 일어를 말하지 못하는 내 혼자의 어드벤처였다. 물론 하루 일과가 딱 짜여 있어, 혼자 점심 사먹고, 저녁 약속 찾아가는 정도의 모험이지만, 그 과정이 즐거웠다. 지루하고 고독할 수 있는 며칠이 새로운 발견과 배움이 곁들여지는 즐거운 시간이 되기도 했다. 만족스러운 책이고, 도쿄를 겉핧기식이 아니고 깊이 즐겨보고 싶은 사람에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참, 나의 멘치카츠 순례기도 이 책의 영향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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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열매맺는나무 2013.03.18 08:07 신고

    읽을 책 목록에 오늘 또 한 권을 추가했습니다. ^^

    • BlogIcon Inuit 2013.03.19 18:41 신고

      즐겁게 읽으시고, 도쿄가서 참맛도 느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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