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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rid 2010] 2. Far away Spain

Inuit 2010. 11. 17. 22:00
마드리드까지는 정말 머나먼 길입니다.

이번 여행은 도하 경유입니다. 인천에서 도하까지 10시간, 세시간 경유 후 다시 약 여덟시간을 비행합니다. 그나마 아이들이 커서 걱정은 덜 합니다. 그리고 중동노선 덕도 많이 봤습니다. 두바이나 도하 등 중동 노선은 자정 근처에 출발지요. 그래서, 출발 전에 좀 피곤하긴 하지만, 비행기 타면 숙면을 취하기 쉽습니다. 저도 비행기에서 잠을 잘 못자는 편인데, 한주의 끝인 금요일이라 피로도도 심했고, 시간대도 적당하여 다섯시간이나 푹 잘 수 있었습니다. 

항공사를 택한 이유도 그랬지만, 카타르 항공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럽습니다. 기내 시설도 좋고 음식도 훌륭합니다. 돈많은 카타르답습니다. 오히려, 기내 개인용 AV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아이들이 영화보고 게임한다고 잠을 덜 자는게 문제였지요. 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여행해서 시작부터 깔끔했습니다.

아무리 편해도 집에서 나와 만 24시간 이상 걸린 여정입니다.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하니 꽤 지칩니다. 호날두나 무리뇨 감독같은 레알 마드리드 선수의 입국 장면에 많이 나오는 그 바하라스(Bajaras) 공항인데, 그냥 어서 짐 찾고 숙소로 가고 싶은 마음만 굴뚝입니다.

호텔에 짐을 풀고, 간단히 샤워를 하면서 피로를 씻어냈습니다. 이제부터가 요주의 시간입니다. 오랜 출장 경험 상, 도착 직후가 가장 위험한 시간대임을 잘 알고 있지요. 대개 너무 피곤해서 눈조차 뜨기 힘들고 식욕도 없습니다. 잠깐 눈만 붙이고 싶지요. 하지만 지금 눈 붙이면 시차적응은 힘들어집니다. 유럽 현지시간으로 새벽 1~2시에 잠 깨서는, 뜬 눈으로 밤새고, 다시 낮에 해롱대다가 이내 초저녁에 고꾸러지기를 반복하지요. 시차적응이 안되면 낮에 뭘 봐도 덜 재미나고 쉬이 지칩니다.

그래서, 아이들 오느라 수고했다 격려해주고 밖으로 데리고 나갑니다. 여행 전 스페인 공부할 때 낯익은 마요르 광장에 갑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마드리드는 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비가 그리 많지 않을거라는 가정이었는데 비는 여행의 걸림돌입니다. 행동반경도 줄어들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줄어듭니다. 무엇보다 풍경도 칙칙하고, 기분도 축축하고, 사진도 침침합니다.

다행히 해질 무렵 마요르 광장은 조명이 켜지면서 물빛이 찬란해지니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가 와서 볼 수 있는 촉촉함이 좋았지요. 다만, 예상 외로 기온이 낮아 식구들 건강이 염려스럽습니다. 긴 비행으로 피곤이 극에 달해 면역력이 낮아진 상태입니다. 감기라도 걸리면 나머지 여행이 모두가 괴롭지요.

마요르 광장 뒷편의 산 미구엘 시장(Mercado San Miguel)에 갔습니다.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재래시장과 달리 유리건물 안에 말끔이 위치한 시장은, 정말 보는 자체로도 즐겁습니다. 그만큼 관광객이 많기도 하지요.

이제 슬슬 첫날을 마무리 지을 시점입니다. 시장 근처에 있는 보틴(Botin)에 갔습니다. 헤밍웨이가 단골이었다는 점도 있지만 1725년 시작해 기네스북에 오른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이라서 유명합니다. 
스페인 현지인의 식사 시간은 저녁 아홉시가 넘어야 슬슬 시작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관광객이 많은 도시는 그보다 빨리 하지요. 보틴은 여덟시에 문을 엽니다. 지도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가까운 탓에 이동시간을 잘못 계산해서, 예정보다 훨씬 빠른 7시 45분쯤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그 덕에 일착으로 얼결에 줄을 서게 되어 예약없이 자리를 바로 받아서 오히려 도움이 되었습니다. 
15분의 힘이 그리 클 줄 몰랐습니다. 우리 밥먹기를 밖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 보며 행운이 함께하는 여행을 생각했습니다.
우선 아내와 저는 가장 고대했던 스페인 와인을 한잔 마십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스페인 와인은 저렴하고 질 좋습니다. 맥주 매니아인 저이지만, 스페인에서라면 단연 와인을 마셔야 합니다. 특산이니까요.
다른 요리도 먹었지만, 보틴에서 유명한건 코치니요(Cochinillo)입니다. 생후 3주된 새끼돼지 통구이입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육즙가득 부드러운 음식입니다. 실제로 원산지는 마드리드 인근 도시인 세고비아입니다. 여기가서 먹으면 정말 맛나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부드러운지, 세고비아에선 접시로 고기를 자른다고 하지요.

보틴의 코치니요는 관광객 용이라서 다소 망측한 머리부분은 떼어내고 나옵니다. 그건 좋은데, 맛도 그리 좋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쁘지 않은건 확실한데, 최상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마요르에서 가까운 위치와 브랜드상 관광객이 몰려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마드리드 가는 분께는 추천하고 싶지 않네요.
그래도, 아이들은 책에서 보며 갖던 코치니요에 대한 로망을 실현했고, 무척 맛나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식사 후반 급격한 체력 저하로 급기야 식당에서 졸기에 이릅니다.

이만하면 성공한 첫날입니다. 택시타고 바로 숙소로 복귀하여 단잠을 재웠습니다. 그대로 잠든 아이들은 다음날 아침까지 푹잔 후, 바로 시차적응하는 기적적인 적응력을 보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