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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ERI] 불안한 소비자,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Inuit 2004. 11. 22. 16:40
문권모 | 2004.11.19 | 주간경제 807호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는 소비자의 심리와 라이프스타일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최근의 소비자 트렌드 변화와 그에 따른 기업의 대응 방안에 대해 살펴보자.

요즘 소비자는 불안하다. 내외 경제 환경의 악화가 안팎으로 압박하기 때문이다. 안으로는 내수 불황의 고통이 점점 심해지고 있고, 대외적으로도 이라크전 발발 이후 계속된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이 끝날 기미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소비자의 심리와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놓는다. 소비자의 심리 변화는 필연적으로 구매성향과 제품 선호에 대한 변화를 가져온다. 이런 점에서 기업은 언제나 신속하게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다면 최근의 소비환경 악화는 소비자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기업은 이런 소비자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 글에서는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는 소비자의 트렌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그에 대해 기업은 어떤 대응방안을 세워야 할지 살펴보고자 한다.


가족 중심으로의 회귀

인간은 위기상황이 닥치면 가족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가족만이 확실한 결속과 안전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의 가장 좋은 예는 9.11 테러 이후의 미국이다. 미국의 인류통계학 학술지 ‘American Demographics’는 2002년 9월 호에서 “9.11 테러가 미국 사회를 가족 중심으로 바꿔놓았다”고 지적했다. 설문조사에서는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는 응답이 테러사건 이후 1년 사이에 74%에서 84%로 10% 포인트나 올라갔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족 지향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올해 초 제일기획이 발표한 ‘2003 전국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가족끼리 외식을 자주 한다는 비율은 1997년 17%에서 2003년 25%로 늘어났다. 또한 국내 패밀리 레스토랑의 숫자는 1999년 55개에서 2003년 173개로 크게 증가했다.

국내에서 가족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는 RV(Recreation Vehicle) 자동차 판매 증가다. 휘발유에 비해 경유 가격이 싼 탓도 있겠지만, RV 차는 기본적으로 가족과의 여가 선용을 위한 수단이다. RV차 판매는 최근 10년간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런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가족을 타깃으로 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이미 시장에서는 가족중심 트렌드에 대응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요즘 많이 팔리는 자동차용 AV 시스템을 살펴보자. 최근에는 운전자용 제품 이외에 뒷좌석에 앉은 가족을 타깃으로 하는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어차피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네비게이션 같은 정보 서비스 외에 영화감상 등 오락을 즐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TV용 AV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실제적 수요자인 가족을 타깃으로 삼게 됐다. 미국의 차량용 위성 TV업체 KVH (www.kvh.com)의 경우 아이를 태우고 다니는 어머니들을 최대 고객으로 설정하고 있다.

일본에서 2003년 ‘올해의 차’로 뽑힌 마즈다의 ‘RX-8’은 가족을 타깃으로 해 성공한 스포츠카이다. 스포츠카는 보통 2도어 2인승이기 때문에 자녀가 있는 경우 가족이 함께 타기에 어렵다. 하지만 ‘RX-8’은 4도어 4인승을 표방해 스포츠카를 사고 싶으면서도 망설이고 있던 가장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디지털 코쿠닝(Digital Cocooning)

코쿠닝(Cocooning)은 페이스 팝콘이 저서 ‘클릭! 미래 속으로’에서 소개한 개념이다. 사람들이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로부터 도피해 누에고치(Cocoon) 같이 편안한 안식처를 찾는다는 뜻이다. 이때의 안식처는 가정이 될 수도 있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될 수도 있다. 코쿠닝은 90년대 말 이후 여러 분야에서 화두가 되었다.

코쿠닝은 그러나 최근 들어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의 코쿠닝은 단순한 칩거에 가까운 방어적인 개념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과 결합해 이전과 다른 모습을 만들어 낸다.

필자는 이것을 ‘디지털 코쿠닝(Digital Cocooning)’이라 부르고 싶다. 디지털 코쿠닝의 주된 요인 역시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본능이다. 특히 고유가와 내수침체가 겹친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이런 현상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코쿠닝은 엔터테인먼트와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이전과 뚜렷하게 차별화 된다. 도피적이고 수동적이기만 한 것에 능동성과 오락에 대한 추구가 덧붙여졌다는 말이다. 최근의 소비자들은 ‘누에 고치’ 속에서 게임과 MP3 음악, DVD 등 디지털 기술을 즐긴다.

디지털 코쿠닝은 또한 실내 여가활동의 선호라는 새로운 트렌드와도 관련이 깊다. 이런 사실은 앞서 언급한 제일기획의 ‘2003 전국 소비자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조사에 의하면 ‘휴가 때 힘든 여행보다 집에서 쉬고 싶다’와 ‘활동적인 취미보다는 앉아서 하는 취미활동이 좋다’는 응답이 1997년 이후 계속 늘어나고 있다. 특히 19세~25세의 활동적인 젊은 층에서 비활동적인 취미생활에 대한 선호가 늘어난 것이 눈에 띈다.(그림 참조) 이런 결과는 주5일제 실시 등으로 야외 활동이 늘어날 것이라는 일반적 예상과 반대되는 것이다.

앞서 지적한 것과 같이 바깥 세상이 주는 스트레스에 상처를 입은 소비자는 가족과 내면으로 관심을 돌린다. 안전한 누에고치 속으로 들어온 소비자는 이제 디지털 기술이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에 몰입한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코쿠닝이다.

이런 디지털 코쿠닝 트렌드는 Insperience(Indoor + Experience)란 키워드와 깊은 연관이 있다. Insperience는 영국의 트렌드 전문 사이트 Trendwatching.com이 최근 소개한 개념으로 ‘밖에서 가능하던 활동을 집 안에서 즐기려는 트렌드’를 의미한다.

Trendwatching.com은 그 예로 집안에 최첨단의 홈시어터나 체육관 시설을 갖추는 것과 가정용 고급 커피 제조기, 패션샵의 출장 서비스 등을 들었다.

디지털 코쿠닝과 Insperience는 실내 엔터테인먼트의 유행과 고급화 추세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무궁무진한 놀 거리가 생겨남과 동시에 주머니가 넉넉한 성인층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고급화가 가속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대응책으로는 ‘어른을 위한 장난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게임이다. 이제 게임은 단순히 어린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의 경우 높은 가격과 빼어난 그래픽으로 오히려 성인 사용자가 더 많다.

미국에서는 신기한 첨단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체인점 Sharper Image가 ‘최첨단 장난감 가게’를 모토로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Early Adopter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


정신적 가치의 재발견

최근 소비자 변화 중 많은 부분은 ‘정신적 가치의 재발견’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정신적 가치의 추구는 혼란한 세상에서 자기의 중심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올해 초부터 국내에서 화두가 되었던 웰빙(Wellbeing) 역시 정신적 가치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육체적인 것과 동시에 정신적인 건강을 추구하는 것이 웰빙의 본질이다.

일반적으로는 후기 산업사회로 진입할수록 정신적인 것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 웰빙과 로하스(LOHAS), 다운쉬프트(Downshift), 자연주의 등의 트렌드는 모두 선진국에서 시작된 것이다. 매슬로우에 따르면 인간은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가 충족되면 최종적으로 자존과 자아실현을 추구하게 된다. 즉, 생존을 위한 조건이 충족되면 그 다음부터는 ‘삶의 질’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침체 상태에 있기는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 역시 일정한 경제적 풍요에 도달해 있다. 기본적인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되어 있는 상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신적 가치에 대한 욕구다. 그러므로 최근의 웰빙 열풍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정신적 가치의 추구는 경제 수준이 수십년 전의 수준으로 급속히 퇴보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 품질 이외에 제품이 제공하는 정신적, 정서적 가치가 가장 확실한 차별화 요소가 될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상품을 개발할 때 소비자가 제품의 품질 이외에도 감성적, 정신적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 이런 부문에서 가장 앞서 있는 분야는 향수 업계라고 할 수 있다. 향수 원료의 원가는 실제 제품 가격의 아주 일부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향수는 고객에게 감성적, 정신적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낸다. 겐조(Kenzo) 향수의 뒷면에는 ‘순수, 활기, 자유, 젊음, 영원한 평온, 그것은 물입니다. 색깔과 진실, 행복과 아름다움, 부드러움과 균형, 자유와 매력. 그것이 겐조의 세계입니다.’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향수의 브랜딩에서도 이런 측면이 강조된다. 영원, 탈출, 에너지 같은 말들이 제품의 브랜드 이름으로 쓰여 소비자에게 정신적인 가치와 만족을 선사한다.


소비자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라

앞서 지적한 모든 트렌드의 근본적인 원인은 ‘소비자의 위기감’으로 요약된다. 따라서 기업은 무엇보다 먼저 소비자에게 ‘정신적 안식처’ 혹은 안정감을 제공해야 한다. 다시 말해 기업은 소비자에게 행복을 팔 수 있어야 한다.

안식처 제공과 관련해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가족애’를 이용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가족애를 이용하면 손쉽게 소비자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실제 국내에서도 외환위기 이후 가족애를 강조한 광고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스타벅스는 매장의 분위기를 통해 정신적 안정감을 제공한 사례이다. 스타벅스는 커피 자체가 아니라, 편안하고 세련된 환경에서 커피를 즐기는 ‘포근한 분위기의 안식처’를 제공해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매장의 쾌적함과 같은 요소도 소비자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차별화 요인이 될 수 있다.

제품 측면에서는 복고풍이 정신적인 안정감을 제공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사람들은 예전에 자신이 좋아하고,익숙했던 것에서 향수와 함께 심리적 안정을 느낀다. 급격한 변화에 지친 사람들 역시 익숙한 것을 선호한다.

금융권의 원금보장형 투자상품과 같이 불확실성을 최대한 없애는 것도 소비자의 안정감을 높이는 방법이다. 확고한 제품 브랜드 역시 소비자들의 갈등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제품 선택 상황에서 고민을 덜 하게 해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것이다.

서비스 측면에서는 보다 개인화된 서비스를 통해 고객에게 신뢰와 심리적 안정감을 심어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최근의 혼란한 상황으로 인한 소비자 변화와 그에 대한 기업의 대응책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마케팅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점이다. 마케팅 관점에서 기업이 소비자에게 파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가치’이다. 기업이 보다 다양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행복이라는 가치를 제공한다면 거친 세파에 지치고 힘든 소비자에게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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