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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ugal 2018: 0. All of suddens

Inuit 2018. 1. 31. 15:20

모든게 급작스러웠습니다.

 

둘째의 입시 일정이 안풀리는데서 모든게 시작됐습니다. 매년 가족여행을 가는데 수험집안으로 2년간 가족여행을 못했습니다. 딸은 방학되자 여행 가고싶다 노래를 부르는데, 엄마는 마음 편해지기 전엔 아무데도 안간다 못을 박았습니다. 중간에 끼인 저는 이래저래 멋적게 치어 있었고요.

 

안되겠다싶어, 연말 즈음 저랑 , 둘이만이라도 일단 가자 했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휴가가 없었기에 쉼표가 필요했지만, 딸아이 성화를 마냥 눌러두기도 힘들었지요.

 

"둘만이라도 갈래?"

 

아내와 딸은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흔쾌히 답을 했습니다.

 

어디로 갈까..

 

생각하니 막상 갈데가 없습니다. 왠만한데는 거의 가본지라 번거롭고 지루한 여행 계획 과정의 필수요소인 "피끓는" 정열이 타오르는 여행지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출발해 호주와 미주를 왔다갔다하다가 제가 던진말.

 

"포르투갈 갈까?"

 

실은 포르투갈은 꼭꼭 숨겨둔 인생의 목적지입니다. 어릴 파두(fado) 들으며 자라난 환상은 대항해시대의 글과 게임을 접하며 무르익었지요. 아이들 크면 아내와 둘이 호젓하게 가려던 곳인데, 궁해지니 어렵사리 내어놓았습니다.

 

"그래!"

 

이런건 말이 길어지면 수포가 된다는걸 아는 딸은, 1 생각안해본 여행지지만 덜컥 받습니다. 아내는 남의 일처럼,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추임새를 넣어줍니다.

 

막상 저는 말해놓고도 황당합니다. 소중한 여행지는 그에 맞춰 소중히 다루고 싶었습니다. 다른 유럽은 제가 출장으로 먼저 접해보고 가족을 데려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저도 처음입니다. 처음 가는 곳은 여행지건 출장지건 미리 현지 문화에 대해 공부하고, 현지 가서 최대한 많이 느끼고 오는 '저렴한' 습관을 가진터라 포르투갈로 결정해 놓고도 짧은 여유에 눈앞이 아득합니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진 . 이스탄불 파묵의 자전적 글이, 이탈리아 때는 오페라 책이 급속히 현지화를 도와줬듯, 이번 여행에 도움될 책들을 최대한 찾았습니다. 포르투갈 관련한 책은 거의 없더군요. 그래도 최대한 검색하여 책을 다섯권 골라 구매했습니다. 문화 역사서 세권과 페소아의 그리고 소설 하나.

 

많은 미팅과 강의, 심사 요청을 여행 기간 앞뒤로 정리하다보니 여행 전주가 특히 바빴는데, 와중에도 책까지 급히 읽느라 시간이 많이 들었습니다. 바쁜 와중에 포르투갈은 신용카드 받는 곳이 유럽보다 많다고 하니 집에 남은 유로로는 택도 없어 은행가서 환전까지.

 

그리 금방 시간이 가고 어느덧 여행 전날이 되었습니다. 아내와 짧은 헤어짐을 아쉬워 하며 와인 한잔을 했습니다. 이런저런 재미난 이야기를 하다가,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계획은 되어 있고, 비행기만 끊으면 되는데.."

 

갑자기 집안 여론이 엄마도 가자고 급물살을 타고, 아내는 아들도 간다면 가는걸로. 아들은 고심끝에(?) 예스. 갑자기 부녀만의 여행은 가족 여행이 되었습니다. 비행기타기 15시간 전인데 말이죠.

 

그때부터 집안이 난리통이 되었습니다. 워룸(war room) 열렸고요.

  • 최고 이슈인 부녀조와 같은 모자의 비행편 확보. 다행히 자리가 있었음.

  • 같은 일정, 같은 숙소 추가 확보. 이건 상대적으로 쉬움. 다만 요금 혜택따윈 없음

  • 포르투갈 기차 이동편 같은 객실로 확보. 딸램이 순식간에 잡아옴.

  • 그와 병행하여 아내는 부랴부랴 자기 짐싸기 시작

  • 아들은 제가 읽은 책들 던져주고 읽기 시작.

  • 다음날 아침에도 아들은 머리깎고

  • 저는 은행 열자마자 추가로 환전하고..

  • 군사작전하듯 긴밀히 각자 움직인 공항행 리무진에 모두 무사히 탑승완료.

 이렇게 급작스레 가족은 포르투갈로 떠나게 됩니다. 얼떨떨했지만, 당시 읽던 책의 포프 말이 힘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