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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ugal 2018: 3. Standing at the end of the world 본문
이어지는 여정은 호까 곶 (Cabo da Roca)입니다.
여긴 제가 무척 가보고 싶던 곳입니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품은 이스탄불도 봤지만, 징기스칸이 그토록 닿고자 했던 서쪽의 땅끝은 왠지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게 사실입니다. 바로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이란 점 하나로 유명한 호까 곶입니다.
원래 유럽에서 유명한 포인트는 땅끝이라는 이름 그대로 피니스테레(Finisterre)입니다. 포르투갈 북쪽 스페인 땅인 갈리시아에 있지요. 그 유명한 까미노길의 종점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성당에서 서쪽으로 더 걸으면 나옵니다. 중세와 현대의 순례자들이 들르기도 했고,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도 시차를 두고 주인공들의 상황 전환이 이뤄지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발견의 시대 전에는 피니스테레가 세상의 한계점이었지요. 거기서 바다로 더 나가 끝까지 가면 물밖으로 떨어지거나 괴물들이 나와 항해자를 죽게 만든다는 신화적 안전한계선.
하지만, 지리학이 발전되면서 포르투갈의 리스본 근처에 진짜 서쪽이 있다는게 알려지고는 지리상 땅끝은 이젠 확실히 호까곶입니다. 까몽이스를 빌리면,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도다'라는 감성.
헤갈레이라 별장에서 호까 곶을 가려면, 신트라 패스로 버스를 타고 다시 신트라역에 가서 호까 곶 가는 버스를 갈아 타야합니다. 시간이 세시가 넘어 버스를 두번 기다려 갈아타면 호까 곶에 가도 해가 떨어질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무어인의 성, 페나 성, 헤갈레이라 별장까지 모두 산을 헤집고 다닌 일정이라 첫날부터 체력도 상당히 소비한 터라, 우버를 불렀습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포르투갈의 우버는 환상입니다. 가격도 착하고 차도 깨끗하고 기사님은 더 훌륭하고 모든게 좋았습니다. 산 중턱의 헤갈레이라에서 호까 곶까지 16km 되는 길을, 심지어 행정구역도 바뀌는 거리를, 14유로 정도에 가니 이래도 되나 싶었습니다.
호까 곶 가며 이야기 나눈 기사님은 조지 클루니 같이 멋진 수염을 기른 분인데, 브라질에서 오래 살다가 왔다고 합니다. 기사님의 처가인 아마존 동네 그리고 슈하스까리아나 까이삐리냐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다 보니 순식간에 땅끝에 도착했지요. 재미난건 이 분 리스본에 돌아와 산지도 십수년인데, 이 양반 호까 곶을 오늘 처음 가본다고 합니다.
"잘 됐네요. 우리 내려주고 구경 좀 하다 가요."
말없이 웃기만 하던 기사님은 진짜 그럴 작정으로 콜을 잡았는지, 주차를 하고 담배 한대 멋지게 피워 물고 해변으로 갔습니다.
드디어 마주한 대서양. 기분 탓인지 감흥이 다릅니다. 베니스의 아드리아해, 아테네에서 보던 에게해, 바르셀로나의 지중해와는 원래 규모가 다르지만, 하와이에서 사방이 물이었던 태평양도, 끝없이 햇살이 부서지던 캘리포니아의 태평양, cape cod나 DC, 마이애미에서 보던 해오르는 대서양과 느낌이 또 다릅니다.
땅끝이란 상징성에 대항해시대의 영광이 스러진 후 파두(fado) 같은 문화에 남아 서려 있는 한, 몸이 날아갈듯 강한 바람 등이 묘하게 종말적 느낌마저 듭니다. 춥지만 않다면 점심 먹고 앉아서 해질때까지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 였습니다. 평생 노동하신 할아버지의 굳은살 배겼으되 닿으면 온기가 전해지는 손을 잡은 기분이었습니다.
의미를 접어두면 호까 곶 자체는 섬과 해안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많이 본 풍경입니다. 등대가 있고 깔끔하게 정돈된 투어 라인이 있는 그런 장소. 여행 내내 놀랄 정도로 한국인 관광객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특히 호까 곶은 방금 관광버스로 한국 손님들을 쏟아 놔서, 제주 섭지코지에 와 있는 느낌과 똑 같습니다. 딱 그정도의 외국인과 딱 그 정도의 한인들.
뒤집어 말하면 아직 중국인 단체 여행객에 오염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유럽 주요 관광지 아닐까 싶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호까 곶에서 일몰을 보려던게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름에도 한기를 느낀다는 이 곶의 바람이 너무 맵습니다. 우버를 타서 절약한 시간이 한시간 정도 되니, 원래 계획엔 있었으되 빠듯해서 포기했던 카스카이스에 가기로 했습니다.
여기는 대서양을 남면하고 있는 해안 마을입니다. 풍경이 아름다워 부자들의 별장 마을이라고도 하지요. 뭐 잠깐 봐서는 그런 사회경제적 의미는 잘 모르겠고, 그냥 아름다워요. 상점이 늘어선 골목에 들어서면 심장까지 훅 들어오는 깔사다(Calçada)의 매혹.
포르투갈의 거리 미술 세가지라고 하면 세가지를 꼽습니다. 구석구석 꼼꼼히도 벽들을 점령한 그래피티, 색과 형태가 일품인 도자기 타일 아줄레주(azulejo) 그리고 공공 시설 만들라하니 예술을 해버린 깔사다.
저희 가족이 깔사다를 처음 본건 마카오였습니다. 광장에서 성당까지 물결치는 파도같은 무늬의 신선한 생경함이란. 기분이 좋은걸 넘어 유럽에 온 듯한 기분을 흠뻑 느꼈지요. 식당에서 세트로 끼워준 맛좋은 포르투갈 와인과 그 깔사다 깔린 광장이 포르투갈 여행을 은밀히 추진해온 의식속의 음모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호텔 주변에서도 깔사다를 봤겠지만 급히 이동 중이라 큰 기억 없었는데, 여행객의 완보로 즈려 걷는다면 이야기는 완전 다릅니다. 단지 이름 모를 골목을, 광장을 걷는데 멋진 행사의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입니다. 조금 수다 떨며 기다리면 뭔가 근사한 일이라도 벌어질 정황입니다. 공간이 지어내는 정서는 디자인의 공공재적 역할을 넘어 인본적 존재의미까지 되새기게 합니다.
이 깔사다는 실제로 돈이 많이 든다고 합니다. 장인들이 전체 그림을 생각해서 그에 맞춰 색돌을 픽셀처럼 박아 넣고 모래를 뿌려 틈새를 메운 후, 나머지는 행인의 몫으로 둡니다. 그래서 유명한 광장은 사람들의 발굽에 닳고 닳아 매끈해집니다. 돌과 돌의 점묘가 아니라 거대한 얼음판처럼 면발광을 합니다. 그 모습은 저희같은 포르투갈 초짜는 매번 놀라는데, 흡사 방금 비온 느낌입니다. 점포에 있다 나오면 바닥에 사물이 비춰 비가 왔었나 흠칫하면 마른 땅. 무척 아름답고 기분 좋고 걷는게 행복한 포르투갈의 깔사다입니다. 마카오 가보신분들은 그 느낌 아실듯.
해변과 바닷가 마을의 골목, 광장을 정신없이 걷다가 리스본으로 열차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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