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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왕의 마음을 훔치다

Inuit 2020. 1. 27. 07:50
"지금까지 창덕궁을 많이 가봤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는게 아니란걸 깨달았어요. "
"역사에 관심은 많았지만 이렇게 흥미진진한지 몰랐네요."

"이런 자리 또 만들어주면 안될까요. "

제가 참여하는 모임에서 북콘서트를 주최했었습니다. 신간 '창덕궁, 왕의 마음을 훔치다' 저자와 인연이 파도처럼 닿아 생겼던 자리입니다. 그리고 끝나고 오신 분들의 반응이 꽤나 후끈 했었습니다.

저자 신희권 교수는 근년에 대학교수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공직에 오래 있었습니다. 문화재청의 고고학자로 다양한 업적을 남겼지요. 풍납토성이 위례성이란 점을 밝혔다던가, 일본 총독부의 영향으로 축이 비뚤어진 광화문의 복원사업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창덕궁 관리소장으로도 년을 재직했었지요.

 

그러니 책은 단연 정통파 창덕궁 책일 밖에 없습니다. 매우 정확하면서도 역사와 서사의 스토리가 풍부하여 읽힙니다.

 

책을 가장 재미나게 읽는 방법은 창덕궁에 직접 가서 읽는겁니다. 건물과 건물의 상관관계 그리고 없는 건물의 여백, 해가 들어오는 각도, 유일한 청기와가 올려진 전각 또는 유일한 초가의 시간에 따른 변화, 단청 없이 소박한 양반식 건물의 기품을 글과 현장을 대조해 읽으면 더더욱 흥미롭겠지요.

 

아쉬운대로 전 지도를 펼쳐놓고 예전 기억을 더듬어가며 책을 읽었음에도 매우 흥미진진했습니다. 돈화문에서 시작해 관청의 분소격인 궐내각사를 지나 로열 하우스인 인정전과 선정전, 대조전, 동궁전까지 꼼꼼히 봅니다. 이후에 비원으로 가서 동양 3 정원의 아름다움을 함께 돌아봅니다. 부용지, 애련지를 지나 관람지와 옥류천까지 글로 도는 한바퀴가 충만한 마음의 산보 같았습니다.

 

이렇게만 놓으면 그냥 궁궐 가이드북 같기도 하고, 해설사 분들 하는 말씀과 뭐가 다를까 싶을수도 있습니다. 차별점이라면 우선은 해설사 분들의 텍스트가 책입니다. 그리고 서두의 반응처럼 좀 더 포괄적으로 조선의 역사와 우리 궁궐에 대해 풍성하고 다양한 맥락을 보게 됩니다.

예비(backup) 궁인 창덕궁이고 그냥 오래 왕들이 머물렀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왕들이 사랑해서 창덕궁을 메인 궁전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랄지, 인정전 근처의 일본풍 문양이 실은 조선의 상징인 오얏이고 오얏이 자두란 점이나, 비원이란 말은 일본에서 만든 말이라서 후원이라고 해야하는건 낭설이라든지 오해도 많이 풀렸습니다.

창덕궁을 너무 사랑해서 경복궁 잔해를 뜯어다 창덕궁부터 보수했다든지 침전이자 편전인 희정당 지하에 비상용 비밀 통로가 있다거나 금천교 다리가 일제시대를 거치며 비딱하게 돌아앉은 것들은 평소에 알길도 없었던 내용이었습니다.

 

조선 역사의 추동력인 왕들의 이야기도 쏠쏠한 재미입니다. 왕들이 살았던 거주공간이자 집무의 공간이라 다른 각도의 이야기가 많을 밖에 없습니다. 효명세자가 어머니를 생각해 양반집 양식으로 지은 연경당이나 현종이 사랑했던 여인 경빈을 위해 지은 낙선재 같은 스토리는 타지마할과 규모만 다를 로맨틱합니다.

또한 혁명을 꿈꿨던 왕인 정조의 이야기는 신하들과 밤새며 이상을 논하던 규장각과 신하들의 무예를 독촉하던 활터에 고스란히 녹아 있지요. 만천명월이라는 휘호로 애민사상을 기록해두기도 했고요.

 

문화재 관련한 공무원 출신에 교수인 저자의 글이 전혀 딱딱하지 않은건 역사와 사람을 사랑하는 저자의 품성이 배어 있어서일겁니다.

 

Inuit Points ★

창덕궁 정문부터 카메라를 패닝하듯 공간축으로 서서히 움직이며, 수백년의 스토리를 스폿마다 쌓아올린 책의 공력은 상당합니다. 그리고 읽기 좋게 담아낸 글 맵시도 훌륭합니다.

어찌보면 몰라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가 어떤 경로를 밟아 왔는지, 안전제일의 조심스러움과 세상을 움직이는 추동력이 교차하는 왕실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통해 쾌속으로 훑는 재미는 쉽지 않은 지적 즐거움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창덕궁은 그저 물리적 공간에 지나지 않을겁니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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