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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 삼략 본문
지금은 재무와 조직에 좀 더 무게중심이 있지만, 제가 초년 시절부터 깊이, 오래 공부한 분야는 전략입니다.
자연히, 경영 전략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드러커나 포터 같은 명사부터 시작해서 신간과 베스트셀러를 번갈아 읽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덕질로 바뀌면 동서양의 전쟁사를 읽다, 동양 고전까지 손 대고, 필연적으로 손자까지 닿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전 그 언저리에서 멈춘듯 합니다. 볼 책이 더 없어서라기보다 그만하면 족하니까요. 싸우지 않고 이기는 손자 전쟁론의 스케일도 크지만, 동양 사상의 뿌리가 유사해 세부를 제외하면 비슷비슷하기도 하고요.
뜬금없이, 전략한다는 사람이 육도-삼략도 안 읽어서야 되겠나 싶어 집어 든 책입니다.
먼저 밝힐 점이 있습니다. 육도 삼략은 위작으로 간주됩니다. 유명세가 있음에도 육도 삼략을 인용한 요즘 글이 잘 안보이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육도와 삼략은 강태공 태공망의 저서로 알려져 있고, 합쳐서 도략이라고도 불립니다. 하지만 청대 고증학 연구로는 대략 위진남북조 정도 시대의 글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태공망이 직접 쓴 건 아닐듯 합니다.
그럼에도 육도 삼략이 유명한 건 내용 자체의 탁월함 때문입니다. 문-무-용-호-표-견 6가지 전략(韜)인 육도와 상-중-하 세가지 책략이란 뜻의 3략은 별개의 책입니다. 둘 다 태공망이란 브랜드에 기대어 육도-삼략이란 타이틀로 묶은 것 뿐입니다.
따라서 두 책의 스타일과 지향점, 결이 많이 다릅니다. 오히려 삼략은 장량이 사사 받은 황석공이 저자란 통설이 맞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의 진위 여부를 잠시 제치고 생각하면, 내용은 볼만합니다. 어떤건 밋밋하고 교과서적이지만 매우 자세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오히려 주장의 익숙함은 동양사상의 정수와 조화로우며, 이 책이 영향을 미친 타작들에서 느껴지는 향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읽으며 몇가지 눈에 들어왔던 문구들을 인용해 둡니다.
• "초목이 두 잎일 적에 제거하지 않으면, 장차 도끼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 사람을 테스트할때
○ 질문하여 자세함을 관찰
○ 기밀을 주어 성실함을 관찰
○ 재물을 주어 청렴함을 관찰
○ 술에 취하게 하여 태도를 관찰
• 위임에 관하여
○ 완전한 위임을 한 후에는, 가로막는 적이 없고 통제하는 군주가 없게 됩니다.
• 상벌에 관하여
"한사람을 죽여 삼군이 분발하면 그 사람을 죽이고
한사람을 상주어 만인이 기뻐하면 상을 주니,
죽임은 높은 사람이 효과적이고
상은 낮은 사람에 내리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
• 채용에 관하여
○ 장수가 선비 구하기를 목마른 이가 물 찾듯 해야 훌륭한 계책이 나올 수 있다.
○ 예절이 높으면 지혜로운 선비가 찾아오고, 녹봉이 많으면 의로운 선비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로 접대하고 의로 장려하라.
• 입사지원에 관하여
○ 지혜로운 자는 어두운 군주를 위해 도모하지 않는다. 높이 나는 새가 죽으면 좋은 활이 감춰지고, 적국이 멸망하면 도모하는 신하가 망하노니.
• 대인 관계
○ 몸을 남에게 낮추면 처음을 도모하고, 마음을 남에게 낮추면 끝을 보전하니 몸 낮춤은 예로 하고 마음 낮춤은 樂으로 한다.
• 승진
한명의 선한 사람을 버리면 여러 선한 사람이 동시에 쇠하고, 한명의 악한 사람에게 상을 주면 여러 악한 사람이 몰리니.
• 어진 신하가 안에 잇으면 간사한 신하가 밖으로 물러나고 간사한 신하가 안에 있으면 어진 신하가 죽을곳으로 밀려나니 관직의 마땅함을 잃으면 화와 난이 대를 잇게 된다
Inuit Points ★★★☆☆
오래 전 글이란걸 감안하고 읽어보면, 꽤 좋습니다. 위작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태공망이라는 브랜드에 기대어 간 것을 제외하면 천 오백년은 훌쩍 넘도록 사랑받은 고전 중에 고전인걸요. 마치 '전략 없는 전술'이란 손자의 명언이 손자병법에 없는 것과도 유사합니다.
전술의 세세함도 특기할만 합니다. 예컨대 전차와 기마병 쓰는 방법을 읽다 보면 장기의 車와 馬 그리고 兵이나 卒의 말길과 쓰임새가 그대로 묘사되어 있는 점이 재미납니다.
한편으로, 제가 몸담고 있는 스타트업 씬을 상상하며 읽었더니 다른 재미가 있더군요. 좁은 궁궐에서 왕놀이 하는 거 유치한 짓 말고, 작은 나라가 제한된 자원으로 살아남고 경쟁하고 협력하고 성장함을 목표합니다. 나라(國)에서 출발해 천하를 도모하는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일구는 건 조직과 사람이지요. 수십만년된 호모 사피엔스에겐 고작 천여년 전의 작동방식이 지금과 다를리도 없으니, 아직도 유효할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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