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입니다.

매우 세계관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착점이 어그러졌습니다. 잘못될 확률이 5% 안될 일이어서 다들 놀랐습니다.

 

막상 제가 놀란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어차피 포석 중이고 앞으로 수십 수를 둘거니 수의 문제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다만 이기고 싶다면, 수를 놓은 과정을 복기하며 다음 수를 더 잘두는 저한텐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잘못을 보는 관점이, 우리 쪽의 느린 의사결정, 관례적 절차, 딱딱한 문화 등에서 비롯된 부분이 많은데, 이를 쉽게 상대방의 옹졸함과 욕심, 모자람으로 쉽게 귀인하고 결과를 정리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대형 조직에서 재무적으론 사소한 일이지만, 원인에 대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데는 실망감이 깊었습니다.

 

이유는 뻔합니다. 흔히 설거지 많이 하면 그릇을 깬다 지점이지요. 이미 안정적이라 능력과 노력보다는 조직의 관성과 산업구조가 돈을 벌어오는 곳에선 굳이 뭔가를 더하려는게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성공해도 수고했어 이외엔 직간접적 보상이 적습니다. 언젠가 승진이라면  안먹고  안만드는게 훨씬 빠릅니다. 왜냐면 실패시 책임만은 오롯이 담당자에게 가니까요. 경쟁적인 조직에선 회복이 어려울 정도죠. 그럴땐 개인의 전략은 이렇게 나옵니다.

  • 시키는 일이나 '티나게' 잘하자.
  • 새로운 , 불확실성이 있는 일은 손대지말자.
  • 주변에서 뭐라고 할지 생각하자. 본질보다 평판이다.
  • 잘되면 전체가 좋은거고, 안되면 혼자 망하는거다.

다양한 규모의 조직에서 일하고 협업해봐서 조직의 생리를 아는 편이지만 항상 입맛이 씁니다. 그리고 책은 이런 이야기를 다룹니다.

대규모 조직에서 어떻게 혁신을 유지하는가.

 

Loonshots: how to nurture the crazy ideas that win wars, cure dieases, and transform industries

사피 바칼은 이런 구조를 상분리(phase separation) 동적평형(dynamic equilibrium)으로 정리합니다.

 

혁신을 이루는 작고 기민하며 열정 넘치는 조직과, 혁신을 스폰서하고 일상을 구성하는 조직을 분리해서 운영해야 한다는게 첫째입니다. (phase) 개념으로 보, 얼음이 순식간에 물이 되는 전환점이 있지만 그 일이 생기기전엔 얼음과 물을 구분해야 한다는겁니다.

이때 단순히 분리만 해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상전이(phase transition) 일어나도록 얼음과 물이 서로 에너지를 교환하는 동적 평형을 유지하는게 핵심이라고 설명합니다.

조직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그냥 대기업에서 몇 지정해서 '혁신 좀 해봐'하고 격려해주고 떠나면 사분면 중 좌하귀입니다. 어느덧 혁신은 시들었고 조직은 정체됩니다.

별도의 조직을 만들되 기존 조직과 시너지를 못내면 우하귀의 '함정'에 빠집니다. 혁신 일변도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면 예술만하다 비즈니스가 위험에 빠집니다. '모세의 함정'이라고 표현합니다. 반대로 별개의 조직이 만든 혁신을 본체가 인정하지 않으면 'PARC 함정'이 생깁니다. 제록스 PARC에서 마우스, GUI 요즘 세상의 수많은 혁신을 만들고도 정작 제록스는 덕을 하나도 본게 없지요. 혁신의 헛심을 쓴 유명한 사례입니다.

 

책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건 상분리된 상태에서 서로 동적평형을 이루는 부시-베일(Bush-Vail) 균형입니다. 2차대전 당시, 기술 후진국(!) 미국에 국가주도의 R&D 도입해, 독일 우세의 전황을 반전시키고 지금까지도 선도적인 혁신의 에너지와 철학을 만든 사람이 부시-베일입니다.

 

결론입니다. 책은 재미난 사례가 빼곡합니다. 스토리를 읽는 맛으로도 이미 훌륭합니다. 다만 부시-베일 균형을 몰라서 조직이 혁신을 못하냐 그건 아닌듯 합니다. 알면서도 못하는 이유가 있으니까요. 책은 부분을 공들여 서술합니다만 실천적이라기보다는 선언적입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마다 와닿거나 결심하게 되는 부분도 달라집니다.

 

다르게 비유하자면, 건강하기 위해서 " 잘씻고, 야식먹지 말고, 운동 꾸준히하라" 맞는 말이고, 생생한 성공/실패담을 들으면 자극도 됩니다만, 처음 듣는 이론은 아닙니다. 알고 있던 이야기를 재미나고 구조적으로 풀었을 뿐입니다.

 

결국 책을 읽는 방법은 두가지입니다.

  • 문제를 책에 비추어 가며 읽은 몇가지 실마리를 찾거나
  • 아예 책에서 어떤 이론을 배운다는 생각을 접고, 재미난 경영 역사 이야기를 듣는다는 편한 마음.

자체에 기대를 걸고, 결과로 비판적인 시각만 들이대며 읽으면, 그래서 뭐지?라는 허무주의적 결론밖에 없을겁니다.

 

Inuit Points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은 뜬금없게도, 베스트셀러란 무엇인가입니다.

미국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읽힌 책입니다. 실제로 책값 아깝지 않게 재미납니다. 하지만 뭔가 프레임웍을 배우려고 생각하면 지극히 밋밋합니다. 결국 베스트셀러는 많은 대중을 상대로, 강한 공감을 가져야하고 책은 그부분이 성공 같습니다. 지금은 시들었지만 전략캔버스를 토대로 블루오션 이야기를 했던 위찬킴 같은 학습 관점의 임팩트조차 없으니까요.

 

, 그리고 뭔가 있어보이는 "있어빌리티"를 빼놓을 수 없네요. 상분리, 상전이, 동적 평형은 뭔가 이과스러운 판타지를 자극하는 재미난 용어 같습니다. 마치 "존재의 절대적 우연성은 오직 수학을 통해 사유될수 있다" 멜리수의 담론이 이과출신에겐 이해 안가지만 뭔가 멋진 모습인것 처럼요별점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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