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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고 괜찮을 나의 K리그

Inuit 2020. 11. 21. 07:29

"아, 마음이 힘들어 읽겠다."

 

책을 마치는 자그마치 석달 반이 걸렸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축구, 게다가 K리그의 이야기일 뿐더러, 나의 성남FC 찐팬이 책인데도 말이지요.

 

비유를 하자면, 파산 위기에 놓인 중년이 우연히 발견한 중학생 때의 일기를 보는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성남FC 초반에 잘했고 중반에 아슬아슬했다가 종반에 아깝게 되었고 결국 팀이 고장나 버렸습니다. 강등이 거의 확정이다라고 생각하다가 시즌 종료 25분전 극적인 잔류에 성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졸깃했지만, 성남팬은 이와 똑같은 시즌을 2016년에 이미 한번 치렀던 바 있습니다. 당시도 시즌 중반까지 우승을 다투다 한끝 차로 하위스플릿에 가더니 2부리그로 강등되었거든요.

 

책은 성남FC 팬이자 작가인 저자가 직관기를 써서 엮은 글입니다. 하필이면 글로 적기 시작한 시즌에 강등을 당했고 2부리그에서 죽을 쑤다가 다시 승격을 해버렸던 롤러코스터 3년간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잊었던 당시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질 뿐더러, 유사하게 되풀이되는 현실과 겹쳐보여 읽기 힘들었던 거죠.

 

우아하고 호쾌한.. 이라고?

 

실은, 개인적 소회를 빼면 글은 매우 재미납니다. 팀의 팬으로 사랑을 글로 정리만 해도 하나의 세계를 담아냅니다. 구단들 얽히고 섥힌 역사, 경기장의 생생한 분위기, K리그, 한국 축구, 세계 축구, 그리고 스포츠의 속성과 조직의 생리까지. 축구라는, 표현의 자유도가 높은 종목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서 다양한 층위의 우리 삶을 달리 비춰 있습니다. 렌즈는 스포츠 분석가나 연구자의 차가운 현미경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애인의 카메라 같고요.

 

문장의 힘이 단단하고, 삶을 보는 경륜이 알찬 글쟁이가 하나의 주제를 몇년간 애정으로 직조한 글입니다. 한땀 한땀 아름다우면서도 줌아웃해 본 전체 모양은 감동적입니다. 어려울 있는 주제를 시종일관 일정한 호흡으로 온전히 풀어낸 능력은 경이롭고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냥 축구팬, 성남팬에게 재미있을듯 하지만 오히려 반대입니다. 축구를 전혀 모르거나 K리그를 모르는 독자가 주된 청중으로 상정되었고, 한권 읽으면서 팬덤의 애정과 거대한 K리그 세계관, 그리고 직관의 매력을 단박에 느낄 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시즌이 끝나면 '경기 보느라 수고했습니다."라는 인사가 적절한 종목입니다. 엄청난 감정의 몰입이고, 거대한 에너지의 순환입니다. K리그의 입문 아니라 스포츠에 대한 눈을 뜨기에 매우 적절한 입문서라고 생각합니다.

 

Inuit Points 

제가 근년에 발견한 최고의 글쟁이 김혼비 작가 몇번 소개한 있습니다. '아무튼, ', 술친구랑 결혼하고 남편과 술친구가 재미난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남편이 박태하 작가입니다. 책에도 혼비님이 까메오처럼 순간순간 지나갑니다. 혼비님의 팬에겐 이게 또 다른 재미입니다. 절절해서 읽기 힘들지만,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영롱한 , 다섯 채웁니다. 팬심 없이, 단호하게 별다섯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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