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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의 뇌

Inuit 2020. 9. 26. 07:09

예술은 본능일까요?

 

일견 쉬워 보이는 명제지만, 조금 깊이 과학적으로 규명하자고 달려들면 막상 쉽지는 않은 이야기입니다. 영유아 때부터 인간은 미술이든 음악에 반응함을 보기 때문입니다. '끼' 보이거나 즐기는게 느껴지죠. 만일 이게 본능이라치면, 인류는 이런 능력을 진화적으로 보유하고 있을까요. 생존에 도움이 될까요, 아님 다른 능력의 부산물일까요. 이게 딱부러지게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인간에게 진짜 예술 본능이 있는지, 있다면 그게 생존과 번영을 위해 왜 필요했을지 진화심리학적으로 규명해보자는게 신경미학(neuroesthetis)입니다. 책도 하나입니다.

 

The aesthetic brain:  How we evolved to desire beauty and enjoy art

 

쉬운 예부터 가 봅니다.

단맛은 단맛일까요. 허망한 질문에도 진화는 작용합니다. 단맛 자체는 미각 수용기와 결합하는 어떤 화학물질일 뿐입니다. 기표죠. 하지만 우리 조상은 맛을 매우 좋게 느꼈고 다른 원시 인류는 맛을 좋아하지 않거나 혐오했을것입니다. 탄수화물이 풍부한 당분은 매우 유용한 에너지의 원천이라 맛을 좋아하는 인류가 많이 살아남고 단맛을 사랑스러운 맛으로 여기는 우연에서 시작되었지만 유전적으로 각인되어 특별한 의미가 부여됩니다. 기의일테지요.

 

마찬가지로, 경치도 그러합니다. 탁트인 바다나 졸졸 물이 흐르는 우거진 산이나 호수는 경탄을 자아내게 아름답습니다. 역시 이런 생존에 유리한 지형과 물자, 그리고 수자원이 있는 장소를 아름답게 여긴 조상들은 살아남았고 가혹하거나 척박한 환경을 좋게 여겼던 다른 원시인류는 진화적으로 패퇴해 사라졌을테니 지금의 경치 탐닉도 유전이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어떠한가요. 문화적 맥락을 거세하기 위해 다양한 인종을 연구하고, 또 문화에 물들기 전의 영유아의 시선을 관찰해 엄밀히 추려보면, 아름다운 얼굴은 의외로 일관된 컨센서스를 형성한다고 합니다.

공통점은 이렇습니다. 우선 평균입니다. 평균에 가까울수록 아름답게 여깁니다.

그리고 대칭입니다. 심지어 쌍둥이조차 조금 대칭인 쪽을 매력적으로 여깁니다.

두가지가 예쁜 사람을 골라내는 기제라면 압도적으로 예쁜 사람을 고르는 요소는 성적이형(sexual dimorphism)입니다. 성별의 특성을 강조하는 생김새 요소입니다. 여성의 경우 큰눈과 섬세한 등입니다. 젊음 신호로 여겨집니다. 여성적이고 어려보이는 특성을 아름답게 여깁니다.

남성은 재미나게도 지향하는 관계에 따라 아름다움이 다르다고 합니다. 얼굴, 네모난 마른턱, 두꺼운 이마 같은 테스테스테론에 흠뻑젖은 특징은, 지배요소를 내포합니다. 그래서 장기적 관계(결혼 같은)에서는 선호하지 않고 단기적 관계 (일시적 연애) 때는 매력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건 뭘까요. 단순히 말하면 뇌의 보상시스템입니다. 어떤 것을 좋게 여기고 가까이하면 보상이 나옵니다. 실은 보상시스템 때문에 즐겁다고 여기는게 정확한 표현이지만요.

 

인간의 보상시스템은 , 섹스 같은 구체적 생존요소 아니라, 같은 추상적 개념에도 작동합니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구상미술 아니라 추상적, 개념 미술에도 뇌가 작동하는 구조적 근거를 찾기 위해서 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예술과 그에 대한 유전적 적합성인 즐거움 및 선호를, 현대 과학에서 가용한 지식 내에서 연관성을 추적하는게 책의 내용입니다. 지루한 논리전개를 건너 뛰고 저자의 답만 스포일하면 이렇습니다.

"예술은 본능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정확히는 우리 뇌에 미술과 음악을 담당하는 모듈은 따로 없다는 뜻입니다. 시각을 처리하고 청각과 동작을 처리하는 뇌의 수많은 부분이 예술에 반응하여 발화할 따름입니다. 사뭇 예술이 본능처럼 보이지만 예술만을 위한 뉴런시스템을 가질 생존적 목적은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예술이 발생한 1만년여의 시간동안 생물학적 뇌가 그것에 상응하는 어떤 신경세포를 발달시킬 겨를조차 없는 찰나란 뜻입니다.

 

그렇다고 일견 느껴지는 예술본능을 폄하하거나 무시하는건 아닙니다. 예술은 진화의 도도한 흐름속에 영롱히 피어난 아름다움입니다. 진화적 사치일수 있고 부차적이며 장식적일지는 몰라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독특한 거동이기도 하지요.

 

Inuit Points 

주제의 규모는 방대한데 저자의 글솜씨는 짧아 읽히는 책입니다. 예술이라는 주관적 영역을 진화심리학과 뇌과학이라는 과학의 눈으로 재단해야 하니 벅찬 주제이기도 합니다. 도전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논문체의 딱딱한 글투, 학자 특유의 방어적으로 공손하고 유보적인 태도 역시 책으로의 읽기에는 까끌까끌합니다. 과학과 글쓰기를 동시에 잘하기 어렵지만 주제의 어려움탓으로 미뤄두자니 '크레이지 호르몬' 같은 명작도 있으니 읽으며 자꾸 비교가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 설명서를 읽는듯한 깨알 재미는 많습니다. 몰라도 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공자님 예수님도 알려주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 사람이 이렇게 지어졌는지에 대한 답은 진화심리학에 있게 마련이니까요.

 

BTS 같은 큐트 보이 그룹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도 보이고, 원나이트의 심리학도 짐작이 갑니다. 틱톡의 필수요소도 이해가 가고요. 그런면에서 끝까지 읽기에는 인내가 좀 필요하지만 억지로 보상시스템을 가동시켜가며 완독을 하면 시간이 아깝지는 않은 책입니다.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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