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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중개자들

Inuit 2023. 8. 26. 07:42

1️⃣ 한줄 

꾼들이 왔어요. 이 영화 같은 일들이 세상 모르게 진행했다니, 당신들이 이겼네

 

Inuit Points ★★★★☆

근대사 중 노예무역상 이야기는 충격적이죠. 무엇을 상상하든 초월합니다. 비도덕성, 지구적 규모 확장, 만물지식의 융합, 죽거나 귀족이 되거나.. 하지만, 현대사에도 같은 부류의 상인이 있습니다. 바로 원자재 중개상입니다. 겉보기엔 남루한 모습이지만, 세상의 돈을 쓸어 담고, 정권을 바꾸고, 전쟁을 일으키거나 중앙은행 역할까지 하는 사람들, 은밀한 이야기를 꼼꼼히 적었습니다. 게다가 문장이 매우 수려해서 읽으며 지루할 틈도 없습니다. 땀내 나는 취재가 명문장을 만날 이런 명작이 나오는구나 싶습니다. 주었습니다.

 

🧑‍❤️‍👩  To whom it matters

-역사에 관심 많은 사람. 현대사에서 덜 알려진 고리를 깨닫게 됩니다

-돈버는 이치에 관심 많은 사람. 기회와 위험추구(Opportunity-Risk taking)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 빨리 벌자고 무리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궁금한 사람: 절제하여 갑부가 사람, 돈번후 도망자가 된사람 등 별별 샘플이 나옵니다

 

🎢 Stories Related 

-저자인 하비에르 블라스, 파시는 파이낸셜 타임즈를 거쳐 블룸버그 뉴스에서 원자재를 담당했습니다

-그 덕에 수십년에 걸친 업계 이야기와 당시 은퇴후 구술 증언을 풍부히 갖고 글을 적었어요

-원자재 과점업체인 필립브라더스가 나갈 살로몬브라더스를 인수했고,

-경질된 피인수사 경영자인 블룸버그가 퇴직금으로 만든게 블룸버그 단말기란 사실은 우화적입니다

-왜냐면, 블룸버그는 원자재 중개상의 비밀 레시피인 정보를 헐값에 유통시킨 셈이라

-장시간에 걸쳐 정보비대칭을 줄여 원자재 업계를 고사시킨 막후 요인이 되었고,

-급기야 블룸버그 기자들이 그들의 실체를 까발리는 이 책을 쓰게 됩니다

-워낙 세월에 걸친 일이니, 당연히 블룸버그 복수 시나리오는 아니고 그냥 인연의 되갚음이 재미납니다

The world for sale: Money, power and traders who bartered earth's resources

Javier Blas, Jack Farcy, 2021

 

🗨️ 좀 더 자세한 이야기

책은 소설과 탐사보도의 장점을 두루 취합니다. 영화 장면처럼 서사적으로 기술하여 호기심으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런 식이에요.

비행기가 급선회하면서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자연히 지상 풍경도 바뀌었다. 잔잔한 지중해가 끝나자 북아프리카의 황량한 사막이 드넓게 펼쳐졌다. 멀리 지평선 위로 연기 기둥이 점점이 피어올랐다. 비행기는 멀미를 부를 만큼 하강하면서 나선형으로 연거푸 선회했다. 탑승객 중에는 석유 중개 업계의 큰손 이안 테일러(Ian Taylor)도 있었다.

이어 데이터, 인터뷰, 공공 기록 등을 꺼내며 이면의 실정을 말해줍니다. 부피가  되는 책인데 이처럼 경쾌하게 읽은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굳이 책을 해부하면 가지와 이파리로 대별됩니다.

가지는 현존하는 4인, Glencore, Cargill, Trafigura, Vitol 형성된 과정을 계통수처럼 그려냅니다. 반세기를 지나며 이합집산하지만 놀랍게도 이들의 뿌리가 같거나 최소한 함께 자랐다는 거죠.

반면 이파리는 주요 분기점이 되는 사건들입니다. 독립적인 이야기로 재미나게 서술해서 가지에 매달아 둡니다. 사례 중심으로 읽어도 충분히 재미난 모험담이죠.

 

틀로는 네 가지 모멘트 말합니다.

1] 원유를 과점한 세븐 시스터즈의 퇴장과 OPEC 출범으로 새로운 시장이 열림 (70년대)

2] 금융이 붙으면서 담보능력 기반의 유동성을 확보하고, 규모를 급히 키우며 게임의 양상이 바뀜 (80년대)

3]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가 원유와 원자재 수출 시작하며 업계 판도가 변함 (90년대)

4] 중국이 부상하며 세상 원자재를 빨아 들이며 다시 재정렬 (00년대)

 

네 가지 격변에 따라 적응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잡은 업체는 중력을 뚫고 솟구쳐 오릅니다. 대표적으로 마크리치(MR+C) 그렇죠. 시장 개척의 3대장이며 트레이더 문화를 만든 필립브라더스의 원유 담당이었던 마크 리치는 당시 본사도 감당하길 겁내던, 원유라는 리스크를 등에 지고 불속으로 들어갑니다. 다른 자원엔 대담무쌍했지만 원유 관련한 식견은 모자랐던 본사는 결국 그를 내쫓습니다. 자기 이름을 딴 마크리치앤코(MR+C)라는 세기말의 괴물업체가 탄생하죠. 근데 이게 무모한 게 아니라, 당시 원유의 의미를 이해했냐의 문제였습니다. 회사는 듣보잡이고 언제 기회가 닫힐지 모르는 일시적 현상으로 봤고, 리치는 중동 현장에서 기회를 알아챘기 떄문에 영구히 달라지는 분기점으로 본거죠.

 

이후 세상을 호령하던 MR+C 미국이 금수조치를 내린 '위험한' 곳에서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장사를 하다 결국 사법당국에 쫒깁니다. (도화선은 이란) 리치는 스위스로 도망쳤다가 결국 여신이 막히고, 사내에서 신임까지 잃으며 회사가 궁지에 몰리죠. 그의 돌격대장 4인방들이 집단사표를 내는 우여곡절 끝에 스트로토테가 자신의 '12사도' 회사를 인수해 글렌코어로 사명을 바꾼 업계 1위로 내달립니다. 4인방 하나인 도팽은 나가서 트라피구라를 창업해 4 하나를 생으로 일구죠. 트레이더 사관학교장이란 명성을 날리면서요. 무슨 무협지 같은 스토리지만 마피아같은 문화의 원자재 업체 특성상 가능한 일입니다. 이(利)로 뭉쳐 충성하다 못견디면 쿠데타를 날리는.

 

카길은 원조 개척자 3인방중 하나인 맥밀란 가문이 지금도 그대로 경영권을 유지해 빅4 위치에 있습니다. 한편 비톨은 후발주자지만 석유 중개의 허브인 로테르담에 있었던 덕에 빠르게 기회를 보고 시장에 뛰어들어 4 되었습니다. 나갈 국가 대상으로 사업하며 미수금 1조정도는 가볍게 깔고 가면서요.

 

보통 사람에게, 누가 누구의 후손인지 따위는  관심은 아닐겁니다. 하지만 제겐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글렌코어 상장 대표는 단번에 세계 100대부자가 되고 직원 중 억만장자만 7, 백만장자는 수십명을 양산했습니다. 상장 후 돈버는건 스타트업도 그렇지만, 여긴 정황이 다릅니다. 커미션 구조인 산업 특성상, 고위직 이익 배당을 회사가 감당 못한 셈이라, 비상장이라도 저들의 성공보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이죠.

 

원자재 중개상들은 이런 원리로 움직입니다.

초기엔 정보의 편재를 활용합니다. 이후엔 금수 조치 규제 환경을 창의적으로 악용하죠. 후에 정보가 공개화되고 규제가 자유로워질 이미 대마가 되어 있고, 이젠 금융을 빈번거래 바뀝니다. 그러다보니 적정 수익을 내려면 규모를 더 키워야 합니다. 하도 커지니 3세계 정도는 정부와 거래 하게 됩니다. 반군을 돕거나 독재자와 결탁하여 자원을 장기 확보하는 식이죠.

 

그런 생각을 해요. 나쁜 짓해서 돈번 노예무역상은 악당의 포지션입니다만 현대의 자원중개상은 그보단 미묘하단 점이죠. 해악은 지구적인데, 순수한 악은 또 아닙니다. 각 나라에 필요한 물동의 재배치와 안전재고의 확보라는 면에서 순기능이 없진 않습니다. 예컨대 글렌코어는 코로나 발발 수주전에 정보를 알고 유가하락에 베팅했습니다. 저장용량을 있는대로 끌어모았죠. 결국 마이너스 선물가격 나올때 저가로 매집했다 후에 이득을 취했습니다. 비도덕적인 일만 아니라 이런 정보력과 모험심 덕에 어떤 공장들은 살아 남고 어떤 석유는 버려지고 태워지지 않았을겁니다. 그 결과로 돈을 버는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방귀가 잦으면..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니 적정선이란게 쉽진 않지만요.

 

앞서 말했듯 정보비대칭은 많이 개선되고, 다양한 주체가 중개적 역할을 담당하지 이젠 이상 이런 거상 중개인이 나타나긴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최근의 신흥 중개상은 눈여겨 볼만합니다. 바로 중국의 트레이더죠. 미국이 달러 패권으로 빅4 포함한 중개상을 때려 잡았는데, 중국 레이더는 안전지대에 있습니다. 미국에 자산도 없고 달러 결제도 안하니 예전에 서구의 원자재상들이 간 길을 그대로 밟아 가면서 힘을 키우고 있다고 해요. 이 점 살짝 소름이 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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