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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부른 √2의 비밀

Inuit 2004. 9. 1. 22:47
[ 제 179 호 ] 2004-09-01

“직각삼각형에서 빗변의 제곱은 다른 두 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중학교 수학시간에 증명과 함께 다들 배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한편 피타고라스 정리와 거의 같은 것이 고대 중국에서도 알려져 있었으니 이른바 구고산법, 혹은 구고현의 정리가 그것이다.    
‘구’나 ‘고’는 직각삼각형의 밑변, 높이 등을 의미하는데 고대 중국의 기술관리들을 위한 수학책 ‘주비산경(周婢算經)’에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동일한 내용이 그림과 함께 실려 있다. 그러나 중국 등 동양사회에서는 그것을 실용적으로 이용하기만 했을 뿐 기하학적으로 엄밀하게 증명하려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기하학을 비롯한 과학의 출발은 고대 그리스로 여겨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피타고라스(Pythagoras, BC582?~BC497?)는 에게해의 사모스 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그리스 식민지 크로톤에서 신비주의적인 성격의 비밀교단을 창설하였는데, 피타고라스 및 그의 제자들은 엄격한 계율을 따르면서 수학의 연구와 전파에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여러 성인들도 그렇듯이 사실 피타고라스 자신은 저서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포함한 업적들이 피타고라스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제자들의 업적인지 분명하지 않으며 그의 증명법도 오늘날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가 수학교과서에서 배워 온 피타고라스 정리의 증명은 그보다 후대의 그리스 수학자이자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 라는 금언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유클리드(Euclid)의 증명법에서 유래한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아버지가 아폴로 신의 아들이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피타고라스는 제자들에 의해서 거의 신적인 인물로 추앙 되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일찍부터 ‘만물은 수로 되어 있다’고 얘기해온 만큼 모든 물질의 근원을 수로 파악하고 삼각수, 사각수 등 기하학적인 표현을 하려고 애썼다. 음악에 있어서도 음정이 수와 비례를 이루는 현상을 발견하고 음악을 수학의 한 분야로 여겼을 정도이다. 피타고라스 학파가 언급한 수란 모두 1, 2, 3... 과 같은 자연수를 의미하며, 여러 수에 여성과 남성, 선과 악, 정의, 결혼과 같은 가치적인 의미까지 부여하기에 이르렀고 모든 수는 자연수의 비율로써 표현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발견을 기념하여 황소를 신의 제단에 바친 것으로까지 알려진 바로 그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인하여 이러한 믿음에는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52 = 32 + 42의 관계에서 잘 알 수 있듯이, (3, 4, 5), (5, 12, 13)과 같이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만족하는 자연수 쌍들도 많으며, 이들은 피타고라스의 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빗변을 제외한 길이가 모두 1인 직각이등변 삼각형의 경우 빗변의 길이는 √2로서, 이를 표현할 수 있는 자연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유리수가 아닌 무리수가 최초로 발견되었던 셈이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이 사실을 알고서 큰 충격을 받았으나, 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세상에 알리지 않기로 다들 굳게 맹세하였다. 자연수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자신들의 신념이 깨지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던 것이다. 그들은 끝까지 √2를 자연수의 분수 형태로 나타내려고 애썼고, √2와 같은 것은 수가 아니라고 강변하였다.
그러나 그들 중 한 사람인 ‘히파수스(Hippasus)’가 이 사실을 외부인에게 누설시켰고, 히파수스는 분노한 피타고라스 학파 동료들에 의해 바다로 던져져 죽었다고 전해진다. 잘못된 신념으로 인하여 새롭게 밝혀진 과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히파수스는 바다에 빠져 사망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가장하고 비석 등을 만들었다고도 하나, 아무튼 그는 무리수의 존재를 입증하여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로 인하여 피타고라스 학파로부터 쫓겨났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과학사를 살펴 보면, 이와 비슷한 일들은 비단 피타고라스 학파에 그치지 않았다. 중세 이후 유럽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갖은 박해를 받고 화형을 당하는 일도 있었고, 심지어 과학기술의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까지도 여러 정치적, 종교적 신념이나 이데올로기 등에 의하여 과학이론들이 제멋대로 재단되거나 폄하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글 : 최성우-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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