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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의 고마움과 무서움

Inuit 2004. 10. 29. 01:58

위 그림을 보면 정신이 어지럽고 도저히 초점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그냥 눈네개 입두개인 기이한 모습으로 보여야 하는데 눈이 뱅글거리고 어지럽기까지 하지요.

그 이유는 인지적 습관 때문입니다.
사람은 cognitive miser로서 정보처리를 쉽게 하기 위해 외부환경을 패턴으로 인식하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사람 얼굴은 안전, 교감 등 생존의 필수요소이기 때문에 사람 얼굴 패턴에 대한 무수한 데이터베이스가
축적되어 있지요. 그래서 위와 같은 특별한 사진을 보면 패턴을 잡아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마치 디지털 압축을 해야하는데 CRC 에러가 자꾸 나듯 말이지요.

이와 별개로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남의 휴대전화 소리를 들으면 짜증나는 이유에 대한 미국 대학의 연구 결과도
재미있습니다. 흔히 생각하듯 소음에 대한 신경적 반응이 아니라 반쪽짜리 대화 (한사람의 이야기만 들리는)를
무의식적으로 완성시키려는 두뇌의 노력이 들어가고, 그러다보니 자꾸 상대방의 통화내용을 생각 한켠에서
유추하는 작용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라는 가설입니다.
실제로 실험에서는 소음의 크기와는 신경쓰임이 무관하였고 반쪽짜리 대화와 완전한 대화간에는 유의할 만한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습관, 특히 인지적 정보처리 과정은 삶을 단순하게 해주는 것이 맞고 그 덕에 우리는 편하게 살 수 있지만
때로는 이러한 유형화 과정이 정보처리를 좀 더 어렵게 하기도 합니다.
인지의 영역에서는 그나마 진화를 거쳐오며 최적화를 해왔기에 위의 사례는 예외적이고 드문 편이고
패터닝은 잘 작동한다고 봐야겠지요.

그러나 요즘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 이러한 cognitive miser가 단순한 자연인의 메커니즘을 넘어서는 느낌마저 듭니다.
A당에서 어떤 말을 하면, B당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말만 쏙쏙 골라서 기계적으로 반박을 하고
그 반박에 다시 또 야유를 하고.
어찌보면 그들은 직업을 수행하기는 편하겠지만,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불편합니다.

며칠전 도올의 헌재 판결에 대한 반박 기고문을 보며 (내용에 대한 제 찬반은 차치하고) 논리성이 있기에
명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유사한 수준의 재반박문이 나오길 기대해보기도 했습니다.
언제쯤 우리는 멋진 토론에 의한 정치를 볼 수 있을까요?

-by 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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