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주례는 아무나 보나 본문
최근 재미난 일이 있었습니다.
몇달 전 퇴사한 직원이 오랫만에 전화를 해와서,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심성 곱고 참해서 특별히 잘해준건 없어도 정이 가던 친구였는데, 결혼한다니 반가왔지요.
그런데, 주례를 서주면 안되겠냐고 어렵사리 부탁을 했습니다. 회사에 있을 때부터 저를 보아온 모습이나 전사 프리젠테이션 하던 인상이 좋게 남아 있었나 봅니다. 젊은 주례가 활기차게 진행하는 결혼식 컨셉을 원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이 친구가 독실한 신자라 주례를 못 구해서 부탁할 것은 아니란걸 압니다. 게다가 제 직속도 아니었는데 말꺼내기가 여간 쉽지 않았을 것도 상상이 갔고, 그만큼 바람이 크다는 점도 느껴졌습니다.
핵심은 이제 40대 초반인 제가 주례로 적합한가하는 문제지요.
그자리에서 판단할 일이 아닌지라, 며칠 고민도 하고 주위 사람과 이야기도 나누어 결론을 내렸습니다.
주례는 퍼포먼스가 아니다
사실 여러 결혼식 다니다 보면, 젊은 주례도 볼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판에 박힌 노장파보다 더 활기차고 의미있는 주례를 섭니다. 그런데, 저는 주례에 대해 생각이 있습니다. 그냥 결혼 세레모니의 진행자가 아니란 점이지요.
주례는 귀감이다
제가 결혼할 때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주례는 결혼식이 아니라 혼인의 아이콘이자 증거라고. 그래서 유명세보다는 결혼하는 두 사람의 삶에 지표가 되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지향이자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저 역시, 주례 선생님께 아이 낳거나 신상의 변동이 생기면 인사를 드렸기도 했구요.
어찌보면 행복한 결혼생활하고 아이들과도 의미로 시간을 채워나가며, 미약하나마 모범이 될만한 삶을 산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제 인생은 한참 남았고, 저 스스로도 계속 증명을 하며 살아야하는데, 어줍잖게 한 쌍의 귀감이라 나서기는 젊은 커플에 대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뭐, 혼자 너무 깊이 생각한 감은 있지만, 제 생각을 찬찬히 설명해주니 영특한 이 친구 잘 새겨 듣고, 고민해주어 고맙다고 밝게 웃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중히 생각해준 점이 참 고맙다고 말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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