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 째 답사지는 부석사다.

가보진 못했을 망정, 모르는 사람은 없는 국민 기둥,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예전에 교과서에서 봤을 때 배흘림이 뭔지, 주심포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외웠던 그런 곳.

다른 건축과 달리, 부석사는 지방에 있어 멀다.
쉽게 접근하지 못하니까 가기전에 공부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점.
우리나라에 부석사가 둘 있다. 
서산 부석사와 영주 부석사.
이중 영주 부석사가 흔히 유명한 그 부석사다.
서산 가서 배흘림 기둥 찾는 사람 꼭 있다.

영주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로 화엄종 본찰이다.
고려 이전의 목조건축이 우리나라에 다섯개 있는데 그중 하나다.
봉정사 나오기 전에는 최고 오랜 목조건축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면, 그깟 목조건축 오래된게 무슨 큰 일일까.
오래가는게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화재건 벼락이건 바람이건 지진이 되었든, 
세월되면 삭아내려 외부 충격에 무너질 여지가 있는게 건축이다.
석조도 그 운명을 벗기 힘들지만, 목조는 현저한 위험이다.
그래서 오랜 세월을 버텼다는 점에서 고목조건축은 중요하다. 
공학적인 탁월성에 대한 세월적 검증이기 때문이다.
서현의 해석에 의하면 건축의 최적화와 진화의 증거다.

날렵한 처마의 곡선, 화려한 기둥 위 공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세월을 견디기 위한 목수의 고안이란 점을 염두에 두면 건물 보는 재미가 다르다.

배흘림 역시 마찬가지다. 
아래가 갈수록 넓어지는 나무의 특성 상 민흘림을 쓰는게 싸고 편하다.
굳이 나무를 깎는다면, 아래 석대를 깎는 것보다 쌀 때 타당하다.
즉 미학보다 경제학이다.

마찬가지로, 기둥 위에만 공포가 올라간 주심포 이야기도 있지만, 
이건 이쯤 마치고, 아무튼 영주로 향했다.

서울서 자가용으로 가면 세시간 거리의 부석사다.
하지만, 답사여행은 대중교통이 제맛이다.
집에서 목적지를 차로 그으면 점대점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점과 점을 잇는 선까지 경험의 폭이 넓어진다.

또한, 대중교통은 이산 값(discrete value)에 해당한다.
지정된 시간에 차를 못타면 한시간 또는 두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시간의 사용이 매끄럽지 못한 불연속이지만, 반대로 쉼표가 숨을 불어 넣기도 한다.

아무튼, 우리나라에 아직도 이런 터미널이 있는지 살짝 놀랄 건물이다.

커피를 마시고 싶어 뱅뱅 돌아도, 카페는 없고 '다방'만 즐비하다.
그래도, 수백명의 사연이 교차하는 그곳은 사람냄새 진하고 보기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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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중교통을 이용하셨다는 부분이 놀라웠습니다. 차 끌고 가셨으면 한번에 가셨을텐데...
    그리고 생각해보니 이건 마치 패키지 투어와 배낭여행의 차이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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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꼽은 리스트에는 없지만, 파주까지 갔는데 헤이리를 두고 그냥 올 수는 없는 일.
귀뜸을 미리 받은 딸은, 헤이리에서 가보고 싶은 곳도 밤새 정리를 해 두었던 참.

파주출판도시는 철저한 계획도시다.
열화당 이기웅 대표의 발의로 정부 지원을 얻고,
건축가 승효상가 마스터 플랜을 잡아 
각 섹터별로 엄격한 통일감 아래 디자인이 스며든 미학적 도시다.

그래서 각 건물이 따로 놀지만 어우러지고,
기하(geometry)나 재료에서 상응하는 일관성이 압권이다.
발랄한 창의가 단정히 줄 맞춰 있는 엔트로피 공작 도시랄까.
아쉽다면 책 읽는 문화가 사라져 도시 전체가 쇠락하는 중이란 점.





그에 비하면 헤이리는 절제미가 확실히 떨어진다.
방임적이고 그래서 인간적이다.

잔디에 발자국으로 길내듯 자연스러운 인간성보다는,
공기좋은 산에 간판매다는 상업적 인공성이 강하다.
그나마, 주민이 거주하는 자연스러움이 중심을 잡아주는 정도.
아무튼, 헤이리 유명한 그대로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았고 바지런히 돌며 구경을 했다.

파주 출판도시에서의 흥이 지나쳐, 오후임에도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를 간과했다.
건물들 편히 본다고 입구에 차세우고 걸었더니 무척 추웠다.
중간에 몸도 녹일 겸 실내에 들어가 열량을 흡입.


아침부터 실외에 돌아다니며 꽁꽁 얼었던지라, 
이후 일정은 남아있는 체크 포인트 위주로 동선을 짜서 신속히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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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번째 답사지는 파주출판도시다.

건축을 꿈으로 정하기 이전부터 딸이 한번 와보고 싶어했던 곳이다.
차타고 지나가다 본 풍경이 참 좋았나보다.
또 그런 시각적 진동이 농축되어 꿈의 씨앗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하 15도로 수도권 한파가 심한 날 딸과 아빠는 길을 나섰다.
이젠 딸이 알아서 어디어디 갈지 미리 조사를 해 놓는다.
밤늦게까지 검색한 흔적이 길었다.

파주출판도시는 내 책의 기획단계에서 출판사 미팅을 하려 들른 적이 있다.
그땐 건물 안 돌아가는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엔 순수히 외양만을 탐닉하는 날이다.
그러다보니, 당시엔 그냥 멋지군하던 건물의 실루엣이 전혀 다르게 와 닿았다.

정말 건물 하나하나가 예술이고.
여기에 조경 더해 모아 놓으니 문화다.











여러가지 심상이 떠올랐다.
한적하고 여유롭게 건물 앞에 차 대어 놓는 우리 독일 법인 풍경도 생각나고,
널찍널찍 공간이 시원한 미국 소도시도 생각이 났다.
그 세련된 우미함은 놀이공원같기도 하고,
생활과의 정합은 리조트 단지를 떠올리게도 한다.

딸과 아빠는 눈가는 모든 건물을 가까이, 또 멀리 들여다보고,
문열리고 계단 안 막히면 들어가 보고
게걸스럽게 단지를 탐닉했다.
영하의 추위는 끝나고서야 느껴졌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파주출판도시가 통째로 쇠락해가고 있다는 점.

"아빠 왜 이렇게 공실이 많아요?"
"책 장사가 안되어서 그렇지.."
"왜 사람들이 요즘 책을 안 읽어요?"
"너를 돌아보렴. 책 말고 볼게 많잖아.."
"아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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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제의에 따라, 아들, 다시 한달간 원서 읽기에 돌입.

그리고 새 학년 올라가기 전 마지막 날인 3월 3일, 아들은 2회독을 완성했다.
자그마치 4100 페이지.



사실, 한글 책일지라도, 두달 동안 한가지 주제만 읽는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부단한 자기자신과의 싸움이다.
천재의 조건이 흔히 머리라고 생각하지만, 인내심이 기본 바탕이다.
아빠의 다소 황당한 가이드를 믿고 따라준 아이가 고맙고 기특하다.

결과는?

아이 말에 따르면, 첫번째 볼 때 놓쳤던 많은 부분이 더 보였다고 한다.
아마 그럴 것이다.
처음엔 단어가 그렇고, 다음엔 시제가 그렇고 또 더 읽으면 미묘한 뉘앙스나 어법이 눈에 보일 것이다.
그 모든 걸 한술밥에 배부를 수 없다.
한국어 배울 때도 모든 엄마가 옆에 붙어 하나하나 교정하고 반복하여 익힌 것이지 그냥 타고난건 아니잖은가.

아참, 퀘스트가 끝나면 득템을 해야지.
이번 퀘스트 보상은.

전 가족 참치식사.

2회독을 축하하는, 행운의 2달러.

그리고 아빠와의 14게임.

하지만, 가장 큰 보상과 선물은 아마도 자신감일 것이다.
스스로와 싸움에서 또 한번 이겼다는 자부심과 이젠 영어가 두렵지 않은 당당함. 

그래서..
난, 매 방학 때마다 해리포터를 1회독 하자고 제안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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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nuit님처럼 자녀교육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럽습니다.
  2. 아드님이 정말 대단하네요.
    자녀분 이야기 좀 많이 올려주세요.
  3. 그저 부러울따름입니다!^^
    부모의 그릇이 크지 못하여.... 웅!!
secret

아들의 영어실력을 단숨에 늘리기 위해 해리포터 원서읽기를 결정한 부자.
단어 몰라도 머뭇거리지 마.
그냥 쭉 가는 거야.
정 이해 안 가는 단어는 따로 적어놓고 챕터 끝날때 쯤 확인하는걸로 하자.
오케이?
영어는 싫어 해도, 해리포터는 좋아하니 아이도 생각 이상으로 열심히 읽었다.
한 다섯권 쯤 읽었을 때인가.

밥 먹다가 재미삼아 영어로 물었다. 
지금 읽는 내용이 어떤지.
그런데 깜짝 놀랐다.
정말 기대도 안 했는데, 아이가 영어를 줄줄 말한다.
물론, 방금 읽던 내용이긴 하지만, 아이가 문법같은 부차적 고민을 안하고 말을 쉽게 술술 한다.
잠자코 듣던 나와 딸은 경악을 했다.

됐다.

생각 이상으로 효과가 좋았다.
아이의 두뇌를 영어에 담가 놓았더니(immersion) 영어식으로 말하는게 편해진듯 하다.
단어에 시제, 수일치까지 이것저것 복잡해서 말을 한마디도 못하던 아이가, 이젠 틀릴지라도 하고픈 말을 쉽게 한다.
또, 한국어로 먼저 떠오르는 복잡한 표현에 에둘리지 않고, 그냥 쉽게 쉽게 평이한 영어식 표현으로 이야기하는 점도 좋다.
아빠로서 제일 기분 좋은 건, 영어에 겁이 없어졌다는 점.
내가 해외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들였던 그 수 많은 노력이 이제와서 상당히 해결되었다.


그렇게 7권까지 1회독을 하고 나서 아이는 많은 칭찬과 선물을 받았다.
그 중 가장 큰 선물은, 아들이 지정하는 7가지 종목을 아빠와 게임하기.
동전 축구, 동전 농구, 손뼉치기 등 아들이 물릴 때까지 놀아주었다.

그리고, 영화관에서 다 봤음에도 다시 전편을 영화로 보고 싶다고 하여 그 소원도 들어주었다.

대신, 한글 자막 켜지 않고 보기. 

영어 듣기 훈련도 겸해서..


일단 추세는 돌려놓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다시 원상복귀하기 쉽다. 
그래서 다시 아들에게 제안을 했다.

아들아.. 새학기 되기 전에, 2회독을 했으면 좋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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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헤리포터는 중급 수준인데 아드님의 집중력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2. 독서의 양과 질이 정말 대단하다고 늘 느꼈는데 이젠 영어까지...
    대단합니다.
    한단계 훌쩍 성장하는 모습이 너무 흐믓하시겠어요
    • 네. 바라긴 하지만 강한 기대하지 못할 부분인데 아이가 제 예상을 훌쩍 넘었네요. 기특합니다 아빠로서도. ^^
  3. 와 대단하시네요 한국교육에서 10년넘게 영어를 배우고 한마디도 못하는게 부끄럽기만한데...
    책으로 영어에 담그고 이후에는 영화 드라마도 영어로 그냥 볼 수 있겠군요!
  4. 저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좋은 사례를 본것 같네요.
    저도 한번 비슷한 방법으로 도입을 해 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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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딸 건축가 만들기' 시리즈가 지인 및 구독자분들로부터 잔잔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듯하다.
그러다보니 종종, 아들은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는가 하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학교 성적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집안 분위기를 고려하면, 아들은 착실히 전인교육을 밟아가는 중이다.
특히, 운동과 독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교육방침에 따라, 건강히 잘 놀고 책 많이 읽고 생각 많이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특히 어려서부터 내가 읽는 어른 책을 같이 읽게 하여 왠만한 직장인 부럽지 않은 독서량은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리라고 믿고 있다.

아들이 읽은 어른책
다만, 어려서부터 영어를 좋아하지 않아 영어가 약한 것이 아들의  취약지구다.
그전에는 그냥 두었는데,중학생이 되고 나니 이 부분에 대한 심대한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지난 겨울 방학을 전환점으로 삼기로 했다. 

내 영어교육 방침은, '말 못하는 영어는 소용 없다'는 것이다.
문법과 시험문제는 약간의 노력을 하면 어느정도 성과가 있지만, 말이 안되는 경우는 단시간에 대응하기가 어렵다.
말은 말로서 툭 튀어나와야지, 매번 문법과 단어가지고 조립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번 겨울방학 목표는 영어에 푹빠지기(Immersion to English)'로 정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 끝에 아이가 가장 좋아할 방법을 찾았다.
바로 해리포터 원서를 읽는 것이다.
다행히도, 아이가 해리포터를 매우 좋아해서, 한글 책을 최소 3회는 읽었을 정도로 내용을 숙지하고 있다.
따라서 내용은 아는 상태에서 원서의 텍스트를 빠르게 쫓아가면 되니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봤다.

그래서 방학동안 원서를 읽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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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아이가훌륭한사람이되기를기대하겠습니다^^ ㅎㅎ독서가최고지요~ ㅎ영어도독서를통해! ㅎㅎ아주좋은생각이십니다. 단어는처음50페이지정도까지는절대찾지말고보게하세요~ 그담에는자주나오는단어만찾아보고요~^^저도부족하지만..영어교육과관련된거는입이근질거립니다ㅎㅎ
    • 맞습니다.
      저도 중간에 멈추지 말라고 알려줬습니다.
      다음편에 그 이야기가 나올겁니다. ^^

      영어교육 관련한 이야기는 기회되면 꼭 들려주세요. ^^
    • 그렇게 하면 되는건가여?
      저희 중2둘째가 영어책으로 공부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하는데 아직 책을 못 정하고 있거든요..
      주신 방법을 아들에게 전해줘야겠어오!**
  2. 다음 편이 기대되네요! 다음 편 있는 거 맞죠? ^^
  3. 따님, 아드님 교육 관련해서 올려주시는 글을 늘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습니다.

    저도 7살 아들, 2살 딸을 키우면서, 이녀석들을 위해서 내가 뭘 해 줘야할까 늘 고민하는데,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 갑니다.

    다음편도 기대합니다. ^^
    • 네. 아이들따라 일률적인 방법은 없겠지만 '함께 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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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답사 여정은 국립현대미술관이다.


건축가 김태수의 작품으로, 두가지 포인트가 관심이었다.
첫째,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를 중시한 건축가의 이념.
둘째, 당시 위세 등등한 스폰서였던 군부의 위세에도 눌리지 않은 당당함.

둘째 관련해서 전해지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김태수 건축가가 선정되어 설계안이 나왔을 때, 정부관계자가 주장했다.
"국립미술관인데, 좀 더 한국적인 색채가 들어가야 하지 않겠소? 팔각정을 얹는게 어떻겠소?"
"지금 저게 한국적인 디자인입니다. 그리고 팔각정이 조선적인 요소지 어째 한국적이란 말입니까?"

그래 그거다. 한국적이라하면 왜 고전미만 생각하는지.
그 당당함이 좋았다.
재미건축가였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현대미술관은 건물 자체도 좋았지만, 내부에 빼곡한 미술품들의 창의가 즐거웠다.
백남준의 다다익선도 생각 외로 좋았지만, 기획전시의 내용이 만족스러웠다.
예술이 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잘 보여줬다.
사물에 대한 관점 비틀기, 재료의 새로운 해석, 관람자의 심상에 의해 완성되는 개방성 등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전시물을 구경했다.
1년에 몇번은 고정적으로 올만하단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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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 나선형 계단(?)은 바티칸 출구 쪽 계단을 연상시키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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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본부로 차를 몰았다.

다행히 당직 서는 분이 한 분 계셨다.
문 두드리고 사정을 말씀 드렸다.

'이러 저러해서 우리 딸에게 건축조경전문대학원을 보여주고 싶은데 못 찾겠습니다.'
'네.. 우리 대학원에는 전문대학원은 세가지가 있고 블라블라.. 
하지만 건축조경전문대학원이란 없습니다.'
'네 저도 그런 것 같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약 5년전 부터 검색에서 사라졌습니다.'
'흠.. 그런가요?'

나와 딸의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 기록을 보여 드렸다.
순간 반짝..

'그렇다면 잠깐 기다리세요. 예전부터 계시던 선생님께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영하 십도가 넘는 추위에, 얼고 딱딱해진 몸을 따뜻한 방 의자에 앉아 좀 녹일 무렵,
행정실 직원분이 다시 오셨다.

'다른 선생님이 4년전에 그런 건물을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공대 옆 도서관으로 되어 있는 이곳인데요.
그런데, 출입이 가능한지는 저도 여기에서는 체크가 안됩니다.'
'고맙습니다. 일단 어디 있는지만 알아도 좋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딸과 다시 공대로 갔다.
아까 여기 갔을 때 못 본 이유는 건물과 부속건물이 하나의 흰색으로 칠해져 깜박 속은 것이다.
건축조경전문대학원은 임시로 설립되었다가 정식과정으로 편제되어 일반 대학원이 되어 사라졌고 이곳은 빈 건물만 있는 것이다.

됐다.

내용은 없어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는 것만으로도 공부고,
결국 답을 찾아내는 성공스토리도 성과다. 
지금은 사라진 대학원이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건물 밖에서라도 구경하고 가자.

다시 찾은 옛 건축조경전문대학원 자리. 
감개가 무량했다.
문이 닫혀 있겠거니 했는데 문이 열린다.
밀고 들어갔는데 이런..

너무 아름답다.





이제는 건물의 용도가 바뀌어, 학생들 작업공간이나 창고처럼 사용 중인듯 하다.
그래도 딸이 보고자 했던 골격은 그대로 있다.
층간을 가로지르는 계단과 골조가 드러나는 구조물.
중간에 탁 트인 수직공간과 밝은 채광.
건축과 상관없는 나임에도,  창의가 샘솟는듯 했다.
딸은 오죽했으랴.

더 좋았던건, 계단을 오르내리며 안을 구경했는데 학생들의 작업물들이 많이 있었고
이 모습을 보며 아이가 많이 배웠다는 점이다.
개념속 추상적 건축공부가 아니라, 실제로 보드지 가지고 노는 건축공부라는 단편을
생생히 봤다. 
아이가 손재주도 있지만 이런 공작을 좋아하기 때문에 건축공부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잠시 둘러본다고 들어간 부녀는 그 공간이 너무 좋았다.
식사도 잊은 채 한참을 못 빠져 나오고 계단을 오르 내리고 이야기하고 깔깔거리며 머물렀다.

이 공간에서라면, 건축이 아니라 어떤 창의를 공부하고 창조해도 신나게 매달릴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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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꽁꽁 숨겨져 있었군요.
    창의가 샘솟는 공간이라니 무뎌진 감성을 충전하고 싶습니다.
    다음엔 젊어지는 공간을 보여 주세요.ㅎㅎㅎ
  2. 아침바라기 2013.03.05 11:07 신고
    제가 다니던 학교에 이런건물이 있었군요.ㅎㅎ 몰랐네요 :-)
  3. 따님의 구체적 비전을 위해 수고하시는 inuit님의 모습이 너무 멋집니다. 저도 아이들에게 그렇게 꿈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겠습니다.
    • 쉐아르님이야 수많은 사람을 먹여살릴 꿈을 갖고 계시고, 또 직접 보여주고 계시잖습니까. ^^
secret

가장 기억에 남았던 답사다. 

서울대 병원이 미스테리 퍼즐을 풀어 나가는 인디아나 존스형이라면, 
이번 답사는 징글징글 몸 고생이 심한 007 카지노 로열 스타일이다.

딸이 가고 싶어한 곳의 이름은 정확히 '경희대 건축조경 전문대학원'이다.
서현의 책에서 찜해둔 곳이다.

당연히 휘경동으로 가려 했지만, 다행히 딸이 미리 알려줬다. 
"아빠, 서울 아니고 수원캠퍼스에 있대요."

날을 잡아 용인으로 향했다.
출발한지 30분도 안되어 금방 경희대 국제캠퍼스에 도착한 것 까지는 좋았다.

어디지?

사실 문제의 조짐은 출발 때 느껴졌다. 
차량에 붙은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 내비에서 모두 목적지인 건축조경전문대학원 이름이 안 떴었다.
가끔, 정확한 이름이 아니면 안 뜨는 경우가 있어 그렇거니 하고 가장 비슷한 예술디자인대학원을 목적지로 찍고 갔다.

그런데 건물 생김이 다르다.

안에 들어가보면 건축과, 조경과 교수실도 있고 분명 맞는것 같은데, 딸이 보고자 하는 건물이 아니다.

일단 철수.

날이 영하 십도가 넘는 추위라 차에 들어가 부녀는 열혈 검색 모드.
이어진 아빠의 한탄.

"망했다."

느낌이 이상했다.
날짜를 주목하니 2009년 이후로 건축조경전문대학원에 대한 결과가 안나온다.
인터넷 시대의 뉴 도그마.

"검색되어지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모든게 불확실하다. 
여기가 맞는지, 전제가 틀렸는지, 존재는 있는지..
조그마한 휴대전화로 더 이상 검색하는게 어려워서 집에 SOS를 쳤다.
PC 전문 검색요원 엄마가 붙었다.

그 동안 부녀는 차로 인근 건물을 뒤졌다.
다행히 유튜브 자료 하나를 확보하여 여기 어딘가에 있겠다는 믿음으로 전진.
동영상의 창문 밖 풍경을 기억에 두고 주변 건물을 하나하나 훓었다.

결과 없이 가솔린만 태우던 차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예전 공대 체육관을 개조한 건물이라는 중요 단서.

'공대로 가자.'

처음 와본 경희대 국제캠퍼스지만, 몇분간 하도 지도를 뚫어지게 봐서 이젠 지리를 외웠다.
공대는 정문 옆의 건물이다. 
차로 즉각 이동.

공대 건물을 차로 뱅글 돌고, 다시 건물 안에 들어가 찾았는데 역시 건축조경대학원은 없다.
낭패..

중간에 크기나 모양 상 비슷한 도예과 건물까지 가 봤지만 헛수고.

와서 한시간 넘게 헤멘 시간도 아깝지만, 우리 딸 첫번째 공부 프로젝트가 이렇게 이유도 모른채 좌절할 순 없었다.

따라 와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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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음 편에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쳤는지 궁금하네요. 추운 날씨에도 일부러 찾아갔다면 눈에 띄는 건물이 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니 어떤 반전이 있을지 다음 편이 기다려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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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장소는 김옥길 기념관.
연대와 이대 사이에 있다.

이화여대 교정을 가로질러 후문으로 갔는데,
새삼 이대의 리노베이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이 캠퍼스가 좁고 답답한 느낌이었는데,

이젠 탁 트인 공간에 잘 쌓여진 유틸리티 공간.

김옥길 기념관은 몹시 실망스러웠다.

건물 자체는 미감이 있으나, 카페로 사용중이라서 그런지 관리가 엉망이다.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비단 옷 입고 부엌일 하는 가난한 손녀의 모습.

스스로 택한 것도 아닐테고 삶에 부식되었으니 
남루하다 말하기도 어렵다.

안에 들어가려던 계획을 접었다.

차 한잔 마시며 콘크리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감상하려던 것인데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건물의 명칭을 준 인물에 대한 매력도 못느끼던 바다.

건축이 그런게 재미나단 생각을 했다.
기능과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이라 그 균형이 관건이다.

기능이 너무 강조되면 건물이 권태를 더하고,
예술이 너무 강하면 삶이 질식하여 불편할지니.

건물 주위에서 사진만 좀 찍고 연대 앞으로 해서 신촌까지 걸었다.
예전에 아빠 젊을 때 객기 부리며 친구들과 놀던 뒷이야기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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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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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 아름다운 부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건강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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