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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둘째 날의 주요 일정은 단연 우피치 미술관입니다. 첫날인 월요일은 휴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둘째 날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문제는 예약이었습니다. 쾌적한 관람을 위해 당일 대기 인원의 경우, 입장객을 15분에 20명 정도씩 끊어서 보내기 때문에 줄이 매우 깁니다. 하지만 예약을 미리하면 지정된 시간에 바로 가서 관람할 수 있지요. 물론 예약료는 추가로 내야하지만 여행지에서는 그게 더 경제적입니다.

그런데, 방문 전날 예약하려 전화를 하니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휴관일이라 예약도 안 하나 봅니다. 갑자기 황당해졌습니다. 오늘은 피렌체를 떠나는 날이기 때문에 서너시간 줄서고 나면 호텔 체크아웃부터 로마 이동까지 모든 일이 좀 복잡해집니다. 사실 그래서 전날 밤까지도 아쉽지만 우피치는 일정에서 생략하기로 했었지요. 

하지만, 피렌체 담당관인 아들이 몹시 섭섭해 합니다. 원래부터 피렌체 일정의 핵심으로 우피치를 생각하고 있었고, 관람료를 예산에 꼭 넣어달라고까지 신신당부했던 터였습니다.

다음날, 시차증도 있어 6시에 잠이 깬지라 일정을 세우다가 깨달음이 왔습니다. 
'강행하자'
좀 고생하더라도 줄을 서보기로 했습니다.

우피치를 제낀 줄 알고 곤히 잠든 아내와 딸 방에 가서 잠을 깨우고, 아침을 거른채 호텔을 나섰습니다. 8시15분 개장인데, 30분 전에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줄이 길지 않습니다. 한국인의 근면성이 승리한듯 합니다.

드디어 개장. 줄은 짧지만 워낙 찔끔 찔끔 들어가니 한시간 정도를 기다려서 드디어 입장. 하마트면 지나쳤을 뻔한 우피치 미술관에서 르네상스의 명작들을 감상했습니다. 어쩌면 평생 궁금했을겁니다.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의 그림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그 기이한 느낌은 피렌체나 파리에서만 가능한 압도적 물량감이기도 합니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니 피곤은 하지만 기분이 산뜻합니다. 아침을 거른 것을 빼곤 일정이 여유롭습니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나와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긴 후 마지막 여정을 갑니다.

메디치의 본산입니다. 메디치 가문을 상징하는 저 여섯개의 둥근 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이 많지요. 메디치 쪽에서는 선조가 거인과 싸우다 방패에 생긴 철퇴 자국이라고 하지만, 세인들은 메디치(Medici)라는 이름이 뜻하듯 약종상이었고 여섯 개의 둥근 환약을 의미한다고도 읽습니다. 맨 위의 원은 프랑스 왕가에서 부여받은 부르봉 꽃 무늬가 들어 있습니다. 꽃의 도시 피렌체를 꽃피운 메디치 가문, 그 문장에는 프랑스의 꽃이 피어있음도 독특합니다.


두오모 광장 북쪽에 메디치의 본래 저택이 있고, 메디치의 가족 성당이 있습니다. 도시 전체에 메디치의 흔적이 있으며, 그 중 메디치-리카르디 저택은 그닥 볼게 없다는걸 알지만 피렌체까지 와서 메디치의 근원을 안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메디치라는 역사적 배경은 하나도 모를지라도, 로렌초 광장은 사람을 편안하게 감싸는 공간입니다. 아마 근처에 중앙시장과 가죽시장이 있어서 서민적인 느낌이 강한 탓일지도 모릅니다.


피렌체의 가죽시장은 유명해서 관광객의 발걸음이 잦습니다. 페라가모와 구찌가 피렌체의 공방에서 출발했다면 뭐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산 로렌초 성당과 중앙시장 사이에 늘어선 노점상은 꽤 즐거운 볼거리입니다. 품질이 최상은 아니지만 비싸지 않은 가격에 쓸만한 가죽제품과 여러 상품들이 눈길을 끕니다. 

중앙시장은 마드리드의 산 미구엘 시장을 똑 닮았습니다. 둘러 보는 자체로도 참 즐겁습니다.

즉석에서 계획을 바꾸어 노천 점심을 합니다. 우리 가족이 너무도 좋아하는 살라미를, 시장 정육점에서 슥삭슥삭 썰어내어, 생 올리브와 얇은 빵을 곁들여 광장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비용도 그리 많이 들지 않았지만, 싱싱하고 맛난 재료를 직접 골라 만들고, 광장에서 경치구경 사람구경하면서 계단에 앉아 먹는 풍취가 새로왔습니다. 이날 점심은 온 일정을 통틀어 인상깊고 맛있는 식사 중 하나였습니다.

이렇게 서정적 만족과 아쉬움이 교차하고 나니, 로렌초에서 피렌체와 이별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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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오..살라미 맛있겠어요. 먹고 싶습니다. ㅜ_ㅠ
    스위스의 쿱에서 사먹은 마늘맛 살라미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노점상에서 사먹는 맛은 어떤 맛일까요. 으아아!!
    • 현지인 가는 시장이라, 가격대비 질이 좋습니다. 근데 살라미 못먹는 사람 많은데 엘윙님은 저희랑 비슷하네요. ^^
    • 살라미를 못먹는 사람이 있나요? 전 한번에 이건 꼬기닷! 이러면서 호텔에서 주는 여러 종류의 살라미를 미친듯이 퍼담아 먹었다는..(주변의 조식을 같이하는 외국인중 그렇게 퍼담은 인간이 없다는 ㅜㅜ )
    • 모드님, 살라미 냄새가 꼬릿하다고 못 먹는 사람 많아요. 선물 줬다가 별로 환영받지 못한 일들도 있었지요.
      mode님이나 엘윙님은 입맛이 개방되셨거나 미식을 즐기시는듯 합니다. 물론 살라미는 공짜라면 무한정 먹어주는게 맞습니다. ㅋ
  2. 피렌체에선 일명 고현정 크림이라는 한국에서 16만원에 팔리는 5만원 정도의 화장품을 사셨어야 하는데.. 우피치보다~ ㅎㅎㅎ 사실 전 보티첼리에 홀딱 빠졌네요. 그저.. 그의 작품은 예쁘더이다. 거기다 덤으로 카라바조의 작품에 쓰러졌네요. 사진을 보니 다시 가고 싶다능~~~ 꺄악~
    • 고현정 크림이라니 생전 듣도보도 못했습니다 저는. -_-
      알았으면 찾아볼걸 그랬어요.
      미리 tip을 좀 알았으면 좋았을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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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뇨리아 광장까진 계획대로 멋졌는데, 그 다음은 여행객의 법칙이 슬슬 작용합니다. 계획대로 되는 일이란 없다는 여행객의 법칙 말입니다.

시뇨리아 광장 근처에 값싸고 구미 당기는 음식점을 몇개 봐 두었는데 죄다 휴장입니다. 아마 피렌체 최대의 관중 동원력을 지닌 우피치 미술관의 휴관일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배는 고프지, 당장 갈데는 없지, 식구들은 피로한데다 실망감이 가득하지, 참 답답하더군요. 일단 진경으로 허기를 달래려 베키오 다리로 향합니다.

아르노 강을 가로지르는 베키오 다리는 명불허전입니다.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와 유사하게 다리 위에 건물이 들어선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다리를 한참 보다가, 고픈 배보다도 결국 화장실이 급해져 드디어 식사를 합니다. 주린 만큼 맛도 깊습니다.

이어져 피티 저택을 갑니다. 예전 메디치가와 대결하던 피티 가문의 집입니다. 메디치에 명백히 반대를 표명하는 입장이어서 언덕위의 피티 일당을 언덕당, 아르노 건너편 두오모 근처의 메디치를 평지당이라 했으니 명칭도 재미 있습니다. 게다가 피티는 돈으로 메디치를 이기려 이 큰 저택을 지었지요. 아이러니컬하게도 메디치는 화려한 디자인을 제출한 브루넬레스코를 떨어뜨리고 수수한 미켈로초의 설계를 승인합니다. 브루넬레스코는 피티의 대저택을 설계하게 됩니다.

결국 의도된 겸손으로 몸을 낮춘 메디치가 승리하고, 결국 후손 대에는 메디치 가문에서 피티 저택을 매입하니 아이러니입니다.

하지만, 메디치가 피티 저택을 매입할 당시는 코시모의 유지도 다 잊어버린 나약한 후손의 시대입니다. 겸손을 망각하고 오만으로 무장하지요. 이미 독재자의 위치에서 베키오 궁전을 차지한 메디치는 강건너 언덕위의 피티 저택까지 서민들 사이로 다니기도 귀찮다고 강을 건너 건물을 연결합니다.

이게 바로 베키오 다리 2층이지요. 베키오 다리는 메디치 전용 고공 도강 통로였던 것입니다. 늘 몸을 낮춘 국부 코시모 메디치는 말도 높아 안 타고, 불가피할 때는 망아지를 타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후손 메디치는 시민들이 향유하던 미술 작품까지 베키오 이층에 갖다두고 독점했지요. 피렌체의 진짜 명품 미술품들이 프라이빗 피트니스 센터의 장식물로 전락했습니다.  
이탈리아 여행 이전부터 피렌체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석양에 물든 도시입니다. 한번 본 사람들은 모두가 찬미하는 풍경입니다. 미켈란젤로 광장에 서둘러 올라가면 딱 맞도록 여정을 짜서 움직였는데, 그만 여의치 않게 되어 광장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택시잡고 부지런 떨면 가능은 한데, 지친 가족들이 내켜하지 않습니다. ㅠㅜ 여행에서 에너지 관리는 시간관리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결국, 가까운 아르노 강으로 갔습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난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 좋은 자리를 잡습니다. 해는 땅끝으로 꺼져가고, 도시는 금빛으로 물듭니다. 아무 말도 필요없습니다. 그저 노을에, 실루엣에, 살랑이는 바람에 육신을 맡기고 무념의 상태 자체를 즐깁니다.


어느 위치에서 보든, 피렌체의 석양은 매혹적임에 틀림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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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 다리를 보니까 영화 향수가 생각나네요. 귀족들은 땅에 절대로 내려오지 않으려고 그러고 서민들이 다녀야 하는 바닥은 더러운 흙으로 더럽혀져 있어서 질병이 우글우글한것이 아주 대조적이었거든요^^;
    • 맞습니다. 향수에서 저도 저런 타입의 다리를 보고 참 신기하다 했어요. 실제로 보니 당시 다리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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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의 종탑
은, 경치가 좋을 뿐 아니라 높아서 시원했습니다. 오래 있으니 쌀쌀하다 느낄 정도로 바람이 셌지요. 충분히 보고, 충분히 쉰 후 시뇨리아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피렌체 공화국의 심장이자 상징인 광장입니다. 길드의 대표들이 시뇨리아라는 의회를 구성했고, 의장의 선출과 중대한 발표가 다 이곳에서 이뤄졌습니다. 침략군도 이곳으로 진주했고, 옥에 갇혔던 메디치도 이 공간을 통해 추방당하고 도주했지요. 메디치 가를 사지로 몰고, 신비주의로 피렌체를 물들였던 요승 사보나롤라도 여기에서 화형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다비드. 그 유명한 다비드도 이 광장에서 시민들과 세월을 함께 했습니다. 흠집하나 없이 균질하게 하얀 거대한 돌덩이를 얻은 피렌체 정부에서 이 멋진 대리석을 어찌 쓸지 몰라 오랜 세월을 흘렸던건, 오로지 천재 미켈란젤로를 기다렸음일 것입니다. 정질, 끌질 한번 잘못하면 조각도 망치고 도시의 보물인 대리석 돌덩이도 망치는 긴장된 작업. 미켈란젤로는 떡주무르듯 훈남 하나를 뽑아내 버렸지요.

게다가 미켈란젤로는 철저히 감상자의 시점을 고려했습니다. 당시 피렌체에서 발원한 원근법을 조각에 적용했습니다. 다비드를 멀리서 보면 머리 크고 다리 짧은 어색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밑에서 보면 잘 생기고 다리 길어 미끈한 청년이 되지요.


이런 인류의 보물 다비드는 백여년전 성깔 나쁜 사람의 습격을 받아 부상을 당했고, 지금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고이 모셔져 있습니다. 지금의 시뇨리아 광장에는 모조품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분신 다비드는 그의 창조자 이름을 딴 미켈란젤로 광장에 청동색을 띄고 서 있습니다.

중세의 갑갑한 문화속에서 시민정신을 함양한 피렌체 시민들. 그들의 터전인 시뇨리아 광장은 아직도 많은 이들을 넉넉히 품는 포용력이 돋보입니다. 진정한 공화제를 이끌었고 그 시뇨리아 정신으로 르네상스의 새로운 문화를 꽃 피운 피렌체, 아이러니컬 하게도 르네상스의 최대 후원자인 메디치 가문의 후손대에 독재정으로 넘어가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로마의 공화정신을 중세에 다시 살린 피렌체 공화국의 그 찬란한 시민 정신을 새삼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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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증도 가시지 않은 채 그림 같은 베네치아를 하루 종일 보고, 다시 뭍의 메스트레에서 아침을 맞으니 마치 꿈을 꾼 듯 합니다. 다음 도시는 아들의 도시인 피렌체입니다.

호텔의 발코니에 서면 빼곡한 건물 사이로 웅크린 거인 같은 두오모가 보입니다. 과연 피렌체의 랜드마크답습니다. 마법에 홀리듯 짐풀고 바로 두오모로 향합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피렌체의 명사들이 총집합한 곳이지요. 내부에는 최초로 원근법을 시도한 마사초의 '삼위일체'가 있습니다. 성당의 겉모양은 기하학적 정렬에서 미학을 추구한 르네상스의 선구자 알베르티의 손길이 닿아 있지요. 재료의 질감이나, 부피의 굴곡이 아닌 거대한 제도판에 그린 패턴으로 자아내는 미감은 색다른 즐거움을 줍니다.

성당 안에 들어가 구경을 하고도 싶었지만, 서둘러 두오모를 보고 싶은 마음에 광장으로 향합니다. 두오모 바로 앞에, 기베르티가 20년 걸려 만든 청동 문을 한참 감상합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나오는 문짝입니다. 그냥 문이 아니라 청동 조각의 종합 모듬 세트입니다. 장식마저 완결된 작품들입니다. 다만, 산술적으로 계산해서 저게 20년씩이나 걸릴까 궁금은 했습니다.

그리고 두오모. 


올라가 봐야지요. 하지만, 피렌체도 베네치아처럼 관광객으로 넘쳐 납니다. 낮에 도착하니 이미 쿠폴라 오르는 엘리베이터 줄은 너무 깁니다. 뙤약볕에 두세 시간은 족히 기다리게 생겼습니다. 체력도 아깝지만, 시간이 더욱 아깝지요.

그래서 두오모 곁, 조토의 종탑으로 갔습니다. 종탑은 쿠폴라 높이까지 자력으로 걸어올라가야 하는 대신, 줄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쿠폴라 고도의 피렌체 전망은 물론이고, 쿠폴라 풍경까지 덤으로 볼 수 있으니 탁월한 선택이었지요. 



사실, 피렌체 가기 전까지만해도, 두오모 가서 멋지다고 경망떠는 평범한 관광객은 되지 않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피렌체를 풍경 중심이 아니라 의미 중심, 스토리 중심으로 읽으려 많은 공부를 했지요.


예를 들어 메디치가와 두오모는 각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피렌체 대성당에서 위대한 로렌초와 그의 동생 줄리아노에 대한 파치 가문의 습격이 있었지요. 이 습격이 성공했다면 메디치는 초기에 대가 끊기며 멸족했을 겁니다. 하지만 위대한 로렌초가 살아남으면서 반대파는 피의 숙청을 당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의 아들은 클레멘스 7세, 죽은 줄리아노의 아들은 레오 10세가 됩니다. 두명의 교황을 배출하면서 메디치 가문은 위세를 더하며 흥하게 되지요.

그런데, 의미고 역사고 다 떠나서 두오모는 그냥 대단했습니다. 압도적인 위력이었습니다. 의지는 가볍고, 감탄은 둔중했습니다. 
흰색, 붉은색, 초록색의 대리석을 따로 깎아 짜 맞춘 거대한 부피, 산을 깎아 만든 대리석으로 다시 산을 만든 인간의 의지, 완공을 하고도 그 무게를 못 이겨 쿠폴라 없이 오래 지낸 세월, 홀연 나타난 천재 부르넬레스코가 날렵히 얹은 그 쿠폴라 지붕. 4백만장 벽돌을 겹으로 쌓아 공학적으로도 안정감 있지만, 공학 따위 관심도 없는 동서, 남녀, 노소 누구나 보면 가슴 저리게 우미한 그 쿠폴라.
 
그냥 닥치고 감상하고, 한참 더 보고, 질리도록 보고, 질리기도 전에 배가 먼저 고파 내려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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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와-! 두오모는..그저 대단한것 같습니다.. 다음 여행지를 어디로 정할까 갈팡질팡 하고 있는 중, 2년 전 이탈리아 여행때 아쉽게도 피렌체를 못가본 이후 지금 마음의 소리가 피렌체로 향하고 있습니다. INUIT 님께서 포스팅한 책들 하나씩 읽어가보고자 합니다..
    • 저도 처음엔 피렌체를 스킵할까 까지도 생각했었어요.
      두오모 빼고 뭐 대단한게 있겠냐 싶었지요.
      하지만, 르네상스라는 서양문명사의 터닝포인트가 잉태된 곳이란 점 하나때문이라도 피렌체는 사뭇 사랑스럽습니다.
      도시는 작지만 그 의미는 충만해서 말이지요.
      Ji1님 여행기가 참 재미있었는데 언젠가 ji1님의 피렌체 이야기를 들으면 흥미로울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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