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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읽는 기술

Inuit 2006. 12. 9. 16:42
Cliche라 할만큼 흔히 들고 있는 사례 먼저.
소련의 붕괴와 911 테러를 예측한 사나이.
스필버그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2050년대 상황을 실감나게 그려낸 인물.
Michael Porter의 모니터 그룹 자회사인 GBN (Global Business Networks)의 회장.
피터 슈워츠, 그리고 그가 사용하던 시나리오 기법.
몇달전 시나리오 플래닝에 대한 관심으로 책을 하나 읽었으나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실망했던 바 있습니다. 실용적으로 잘 정리된 책을 찾자는 얄팍한 기대는 버리고, 시나리오 플래닝의 원조를 읽었습니다. 피터 슈워츠(Peter Schwartz)지요.

Peter Schwartz

Peter Schwartz

원제: The Art of the Long View


처음에는 1991년에 지어진 미래 예측서를 읽는 기분이 개운치 않았습니다만, 원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부한 함의와 영감은 역시 아류가 범접하기 힘든 orthodox를 보였습니다. 절실히 느끼고 많이 배웠던 시간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일반적으로 제가 알고 있던 시나리오 기법 (scenario thinking, scenario planning)과 다르게 새로 배운점 위주로 적어 보겠습니다. (그래서, 늘 그랬듯 이번도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_-)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미래 예측과 관련된 시나리오라 하면, 향후 생길 수 있는 상황을 실감나게 그려보는 점이 다른 예측 도구와 차이점입니다. 어찌보면 미래에 대한 "imaging tool"이지요. David Invar 같은 양반은 '미래에 대한 기억 (memories of the future)'라고까지 했답니다.
따라서, 누구나 고개 끄덕일만한 사건의 전개를 통해 깜짝 놀랄만한 미래상을 그려내는 것이 시나리오 기법의 목적이자 요체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분석적 툴과 창의성이 결합해야 하며, 시나리오의 정의상 훌륭한 스토리텔링이 이뤄져야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맥루한 식으로 말하면, 시나리오는 인간 예지능력의 도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나리오는 왜 중요한가?
그렇다면, 다양한 미래 예측기법이나 트렌드 뽑는 기술이 있는데 왜 시나리오 기법이 중요할까요. 바로 의사결정자의 심리를 정확히 겨냥한 sniping tool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슈워츠 아저씨의 큰 강점이자 원조의 깊이가 묻어나는 부분이었습니다. 따라서, 시나리오 기법은 단순한 통계자료의 나열이 아니라, 의미있고 마음을 때리는 시사점이 나와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의사결정자가 경악하고 반발하게 하여 가능한 미래상의 갈래를 절실히 공감한 후 행동하게 만드는 부분이 시나리오 경영의 핵심입니다. 시나리오 작업보다는 공연 부분이 더 중요합니다.

이 점이 세간에 알려진 시나리오의 허상과 진실 사이의 간극입니다.

한가지 더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꼽자면, 조직내 전략적 커뮤니케이션(strategic dialog)을 위한 훌륭한 툴이라는 점입니다. 딱딱하고 매력없는 문어가 아니라 실감나고 공감되는 구어로 서로간에 조직의 미래상을 그려보고 의견을 모으고 행동을 일으키는 좋은 도구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시나리오는 어떻게 예측하는가?
아무리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급 배우가 있더라도, 대본이 잘 나와야겠지요. 시나리오는 어떻게 작성해야 할까요.
슈워츠 아저씨의 방법을 간략히 추려내면 이렇습니다. (제가 임의로 해석한 부분이니 전통적 시나리오 기법과 다릅니다. 주의를 요합니다.)
모수*변동성=시나리오
모수란 것은 main driver를 말하며 인구통계나 거시경제 지표와 같은 부분입니다. 변동성은 앞서 나온 모수, 즉 장기적인 추동력이 어디로 튈 지 예측하는 부분입니다. 미묘한 변화의 전개양상과 그 결과를 나타내고, 이 변동성에 따라 시나리오가 가지를 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단, 시나리오의 총 갯수가 3개를 넘지 않도록 책에서는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의사결정자의 인지적 capacity를 고려한 부분입니다.


미래의 징후는 어떻게 잡아내는가?
슈워츠 선생은 미래의 근원적 변화를 읽자면, 주변부에서 그 징후가 보인다고 합니다. 따라서 주변부의 미묘한 변화에 촉각을 세우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TV는 그 자체로 정보공급원이 아니라 대중의 신념과 인식을 반영하고 형성해 나가는 매체로 규정합니다. 또한 음악도 감정의 변화를 측정하는 지표가 됩니다. 미래를 탐지하는 좋은 센서라는 뜻입니다. 예전 우리나라에서도 서태지의 등장과 X세대의 대두간에 상관관계가 있었고, 미국의 R'n'R을 포함하여 무수한 사례가 있지요.


시나리오는 정말 쓸만한가?
결론적으로, 시나리오 기법의 탁월성은 존재합니다. 특히 전통적 의사결정 기준인 ROI (return on investment)류의 결정론적 세계관이라는 관점을 보완하여 리스크에 대한 정성적 이해를 돕습니다. 단지 리스크를 압축한 r값으로 정량화 함에 있어 소실되는 여러 정보를 고스란히 간직하며 조직의 반응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결과가 분기하는 상황에서는 그 결과를 보며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낮은 가능성으로 무시했던 이벤트의 가능성이 시간에 따라 높아지는 경우에도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합니다. 실물 옵션 (real option)의 등장으로 이러한 dynamic environment에 대한 수학적 모델링과 평가 능력이 높아진 부분은 있지만, 시나리오 기법의 통합성과 포괄성은 그보다 한 수 높다고 저는 평가합니다.


반면, 아쉬운 점은 시나리오 기법을 적용함에 있어 시나리오 자체가 공상소설이 되지 않기 위한 예비책이 없다는 점입니다. 시나리오가 예측력이 떨어지면 위의 모든 논의가 수포로 돌아가며 더욱 안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지요. 어쩌면 이것은 시나리오의 특징이기도 하고 미래 예측 자체의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책에 자잘한 사례와 테크닉이 나열되어 있지만, 확신을 가지고 시나리오 기법을 사용하는 내공이 되기 전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는 아리송합니다. GBN 같은 전문 조직에서 도제식으로 배우든, 혼자 폭포 밑에서 수련을 쌓든 부채도사가 된 이후에나 유용한 기법입니다.

물론 시나리오 기법이 책 몇권으로 전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암묵지이며, 사용하는 사람의 지적, 영적 능력에 매우 좌우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슈워츠 아저씨의 권유처럼, 올해 예측을 해보고 내년에 다시 돌아보아 무엇을 놓쳤는지, 어떤 것이 징후였는지 복기하며 배우는 편이 미련해보여도 정석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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