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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거꾸로 가는 법안

Inuit 2005. 4. 9. 14:45

어제인가 도서 정가제에 관한 법률을 보았습니다.


참 어이없고 황당하더군요.


'전자상거래 촉진과 시장경쟁원리에 우선순위를 두고' 제정되었기 때문에 유통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폐단이 있어 할인을 금지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시장주의가 아닌가요? 공정거래법의 기본 원칙은 시장의 경쟁을 저해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는 것인데 국가가 가격을 결정해준다..? 전자상거래만 해도 우리나라가 IT입국을 정책으로 해서 90년대말 이후 성장을 해오고 있는데 과연 전자상거래 촉진 자체가 그렇게 문제일까요?


물론, 그쪽 이야기는 문화로서의 출판산업진흥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도서 정가제를 하면 출판산업이 저절로 진흥이 될까요? 하다못해 도서 정가제를 하면 당연히 매출과 판매 마진이 늘어날수도 있는 YES24와 인터파크에서 왜 그리 결사반대를 외칠까요?



경제학의 기본에서 다루는 것입니다만, 빨간선 녹색선이 만나는 곳이 균형가격입니다. 현재 할인할 수 있는 최저가격이 대충 비슷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면 가격은 P1에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Q2-Q1 만큼이 생산잉여가 되겠지요. 가뜩이나 비디오 매체, 하다못해 인터넷과도 싸우느라고 침체된 도서산업인데 가격이 올랐으면 수요가 떨어지지 현재로서는 그 어떤 진흥책도 가격을 올리는 동시에 수요도 진작시킬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균형은 빨간 공급곡선이 왼편으로 이동해서 (Q1, P1) 즉 줄어든 생산량에 도서정가로 움직여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는 자명합니다. 문화산업으로서의 도서산업을 진흥시킨다는 원래의 취지와 정확히 반대로 사람들은 비싼 가격의 도서 소비를 줄이고 다른 대체 수요로 문화생활을 즐깁니다. 수요기반이 줄어든 도서업계는 몇몇 업체가 망해서 공급이 줄어야 끝이 나는 게임인 것입니다.


어떻게 정책의 뜻과 반대로 갈 수가 있냐구요? 그런 경우는 많습니다. 예를 들어 위와 똑같은 경제학의 사례가 최저임금제입니다. 최저임금에 의해 근로자의 최소 생활이 보장된다는 취지로 실행을 하면, 그 최저임금이 균형임금보다 큰 경우 잉여 인력이 생겨 실업이 생기게 됩니다. 이 실업은 차별적으로 비숙련 노동자에게만 적용되게 됩니다. 즉 균형가격인 실제 받을 수 있는 임금이 법정 최저 임금보다 작은 경우 기업은 그사람을 채용해서 더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임금에 합당한 숙련 노동자를 채용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 최저임금을 10%올리면 10대 고용이 1~3%라는 엄청난 비율로 떨어진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0대 인력이 거의 없으므로 20대 청년 백수가 직격탄을 맞겠지요.


입법자들은 이러한 경제학을 모를까요? (모른다는 쪽에 한표 던지고 싶지만..-_-)
모를리는 없겠고 무시한다고 봐야지요. 당장 로비와 압력이 들어오는 영세서점만 (정확히는 그 표만) 바라보는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손해, 출판사나 유통점은 그들대로 손해. 자본의 논리로 작은 규모의 서점은 무조건 죽는 것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억지로 subside해서 살릴 수 있는 산업이나 유통채널은 손을 꼽을 수 있을만큼 작다는 역사적  맥락을 이해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어느 때인데, 가격을 국가가 setting 해준다는 것입니까? 그것도 높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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