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미래, 살아있는 시스템 본문
죽을 고비를 넘겨 본 사람, 신을 영접한 사람을 주위에서 본 적이 있습니까.
인생에 있어 어떤 결정적 순간은 삶과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자아의 틀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중요한 점은 다시 '그 순간'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원제) Presence: An exploration of profound change in people, organization and society
(부제) 분석에서 통찰로, 지식에서 지혜로
아예 기자생활 접고 미래학을 공부하러 훌훌 떠나신, 미래도둑님의 추천으로 점찍어 두었다가 읽게 된 책입니다.
줄여 말하면, 매우 읽기에 불편한 책입니다. 장황하고 촛점이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휘파람 부는 법에 대한 매뉴얼과 같습니다. 분명 나는 느끼고 실행도 가능한데, 말로 풀어 설명하면 할수록 이상해지고 더 헛갈립니다. 책 한권을 써도 읽도 따라해서 성공하기 힘들지요.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 이 책은 서양에서 인정하기 힘든 동양적 정서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자연과의 교감, 기(qi)와 도(tao) 등을 이용한 세상 보기에 대한 책입니다. 물론 촛점없는 번역도 한 몫은 합니다만.
책의 기본적인 인식은 선형적이고 단방향의 서구적 방법론의 한계에서 출발합니다. 사물을 즉자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대한 빠른 해법 (quick solution)을 찾는데서 피상적인 발전은 있으나 심오한 발전은 없다는 인식입니다. 이를 일컬어 반응적 학습(reactive learning)이라고 합니다.
저자들은 이를 타파하기 위한 U 이론 (theory U)를 주장합니다.
발견에서 행동으로 직선형 움직임이 아니라, 심화하고 실재(presence)하는 과정을 거친 U형 경로를 따라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는 근원적인 움직임으로 세상을 변환시킨다는 주장입니다. U자의 깊이가 깊을수록 그 심오함과 영향력이 더해집니다.
아마 제 짧은 설명 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겁니다. 책을 한권 다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니까요.
기본적으로 서구의 과학적 방법론은 action "on the world"입니다. 세상과 분리된 자아로서 나는 객관적이고 조작적으로 세상을 대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living "in the world"라는 겁니다. 세상과 내가 결코 둘이 아니고 따라서 세상을 변화시키면 나도 따라 변하고, 내가 변하면 세상도 변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겁니다. 뭐 물리학적에서는 이미 '불확정성의 원리'를 통해 관찰하는 행위 자체가 물리량을 변화시키므로 관찰과 실재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20세기 와서야 알아냈지요. 다시 U형 이론으로 돌아가면, 쉽게 말해 선승과 도사 정도 되어 자연과 합일하고 몰아(沒我)의 경지가 되면 또렷하고 깊은 U형을 이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미래학이 주장하듯, 이 책도 진정한 미래는 내가 세상과 어울려 바꿔나가는 것이고, 예측보다는 미래 창조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반면, 책의 한계 또한 명확합니다. U자형 실행을 위한 suspension-redirecting-letting go의 경로는 결국 돈오점수의 고통스러운 결과입니다. 만인이 성공하기가 어렵고, 미래 창조의 첫단계인 내 주변의 변화 역시 대부분 더디거나 실패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생일대의 개인적 소명을 이룰 때나 하나의 가능성있는 가이드일 뿐, 일반화 가능한 프레임웍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소 장황하게 말했지만, 동양과 서양에 대해 많이 공부해 온 저나, 우리나라 사람에게 책의 핵심 메시지는 직관적이고 경험적으로 닿는 내용입니다. 그리 어렵게 설명할 필요도 없지요. 오히려 간단히 할 말을 길게 말해 더 혼란스럽습니다. 매우 모호하고 자기완결적이지 못하며, 확신 부족으로 인해 이야기 흐름을 좇기가 어렵습니다.
하긴 동양 고전을 서구 지식인이 힘들게 이해하고 과학적 사고방식에 접목해 본 결과를 서구의 논증적인 프레임으로 포장하려니 본인들도 힘겨웠을듯 합니다.
번역은 좋게 봐주기 힘듭니다. 크게 오역은 없는데, 나눔작업의 탓인지 열정없이 밋밋합니다. 전에 손자를 선 쥬 장군으로 직역한 황당한 책에 이어, 노자를 라오 추(Lao Tzu)로 번역하는 섭섭함을 남기는 수준이네요.
총평하면, 대개의 사람에게 굳이 일독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년의 언저리 즈음, 그간 떠돌던 삶의 정리와 제2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일고의 가치가 있습니다. 동양의 득도와 경력 간의 조화를 생각하게 해보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몇 년안에 다시 읽게 될지도..
인생에 있어 어떤 결정적 순간은 삶과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자아의 틀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중요한 점은 다시 '그 순간'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Peter Senge
(부제) 분석에서 통찰로, 지식에서 지혜로
아예 기자생활 접고 미래학을 공부하러 훌훌 떠나신, 미래도둑님의 추천으로 점찍어 두었다가 읽게 된 책입니다.
줄여 말하면, 매우 읽기에 불편한 책입니다. 장황하고 촛점이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휘파람 부는 법에 대한 매뉴얼과 같습니다. 분명 나는 느끼고 실행도 가능한데, 말로 풀어 설명하면 할수록 이상해지고 더 헛갈립니다. 책 한권을 써도 읽도 따라해서 성공하기 힘들지요.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 이 책은 서양에서 인정하기 힘든 동양적 정서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자연과의 교감, 기(qi)와 도(tao) 등을 이용한 세상 보기에 대한 책입니다. 물론 촛점없는 번역도 한 몫은 합니다만.
책의 기본적인 인식은 선형적이고 단방향의 서구적 방법론의 한계에서 출발합니다. 사물을 즉자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대한 빠른 해법 (quick solution)을 찾는데서 피상적인 발전은 있으나 심오한 발전은 없다는 인식입니다. 이를 일컬어 반응적 학습(reactive learning)이라고 합니다.
저자들은 이를 타파하기 위한 U 이론 (theory U)를 주장합니다.
발견에서 행동으로 직선형 움직임이 아니라, 심화하고 실재(presence)하는 과정을 거친 U형 경로를 따라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는 근원적인 움직임으로 세상을 변환시킨다는 주장입니다. U자의 깊이가 깊을수록 그 심오함과 영향력이 더해집니다.
아마 제 짧은 설명 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겁니다. 책을 한권 다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니까요.
기본적으로 서구의 과학적 방법론은 action "on the world"입니다. 세상과 분리된 자아로서 나는 객관적이고 조작적으로 세상을 대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living "in the world"라는 겁니다. 세상과 내가 결코 둘이 아니고 따라서 세상을 변화시키면 나도 따라 변하고, 내가 변하면 세상도 변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겁니다. 뭐 물리학적에서는 이미 '불확정성의 원리'를 통해 관찰하는 행위 자체가 물리량을 변화시키므로 관찰과 실재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20세기 와서야 알아냈지요. 다시 U형 이론으로 돌아가면, 쉽게 말해 선승과 도사 정도 되어 자연과 합일하고 몰아(沒我)의 경지가 되면 또렷하고 깊은 U형을 이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미래학이 주장하듯, 이 책도 진정한 미래는 내가 세상과 어울려 바꿔나가는 것이고, 예측보다는 미래 창조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반면, 책의 한계 또한 명확합니다. U자형 실행을 위한 suspension-redirecting-letting go의 경로는 결국 돈오점수의 고통스러운 결과입니다. 만인이 성공하기가 어렵고, 미래 창조의 첫단계인 내 주변의 변화 역시 대부분 더디거나 실패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생일대의 개인적 소명을 이룰 때나 하나의 가능성있는 가이드일 뿐, 일반화 가능한 프레임웍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소 장황하게 말했지만, 동양과 서양에 대해 많이 공부해 온 저나, 우리나라 사람에게 책의 핵심 메시지는 직관적이고 경험적으로 닿는 내용입니다. 그리 어렵게 설명할 필요도 없지요. 오히려 간단히 할 말을 길게 말해 더 혼란스럽습니다. 매우 모호하고 자기완결적이지 못하며, 확신 부족으로 인해 이야기 흐름을 좇기가 어렵습니다.
하긴 동양 고전을 서구 지식인이 힘들게 이해하고 과학적 사고방식에 접목해 본 결과를 서구의 논증적인 프레임으로 포장하려니 본인들도 힘겨웠을듯 합니다.
번역은 좋게 봐주기 힘듭니다. 크게 오역은 없는데, 나눔작업의 탓인지 열정없이 밋밋합니다. 전에 손자를 선 쥬 장군으로 직역한 황당한 책에 이어, 노자를 라오 추(Lao Tzu)로 번역하는 섭섭함을 남기는 수준이네요.
총평하면, 대개의 사람에게 굳이 일독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년의 언저리 즈음, 그간 떠돌던 삶의 정리와 제2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일고의 가치가 있습니다. 동양의 득도와 경력 간의 조화를 생각하게 해보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몇 년안에 다시 읽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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