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고비를 넘겨 본 사람, 신을 영접한 사람을 주위에서 본 적이 있습니까.
인생에 있어 어떤 결정적 순간은 삶과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자아의 틀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중요한 점은 다시 '그 순간'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eter Senge

(원제) Presence: An exploration of profound change in people, organization and society

(부제) 분석에서 통찰로, 지식에서 지혜로

아예 기자생활 접고 미래학을 공부하러 훌훌 떠나신, 미래도둑님추천으로 점찍어 두었다가 읽게 된 책입니다.

줄여 말하면, 매우 읽기에 불편한 책입니다. 장황하고 촛점이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휘파람 부는 법에 대한 매뉴얼과 같습니다. 분명 나는 느끼고 실행도 가능한데, 말로 풀어 설명하면 할수록 이상해지고 더 헛갈립니다. 책 한권을 써도 읽도 따라해서 성공하기 힘들지요.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 이 책은 서양에서 인정하기 힘든 동양적 정서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자연과의 교감, 기(qi)와 도(tao) 등을 이용한 세상 보기에 대한 책입니다. 물론 촛점없는 번역도 한 몫은 합니다만.

책의 기본적인 인식은 선형적이고 단방향의 서구적 방법론의 한계에서 출발합니다. 사물을 즉자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대한 빠른 해법 (quick solution)을 찾는데서 피상적인 발전은 있으나 심오한 발전은 없다는 인식입니다. 이를 일컬어 반응적 학습(reactive learning)이라고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자들은 이를 타
파하기 위한 U 이론 (theory U)를 주장합니다.
발견에서 행동으로 직선형 움직임이 아니라, 심화하고 실재(presence)하는 과정을 거친 U형 경로를 따라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는 근원적인 움직임으로 세상을 변환시킨다는 주장입니다. U자의 깊이가 깊을수록 그 심오함과 영향력이 더해집니다.

아마 제 짧은 설명 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겁니다. 책을 한권 다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니까요.
기본적으로 서구의 과학적 방법론은 action "on the world"입니다. 세상과 분리된 자아로서 나는 객관적이고 조작적으로 세상을 대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living "in the world"라는 겁니다. 세상과 내가 결코 둘이 아니고 따라서 세상을 변화시키면 나도 따라 변하고, 내가 변하면 세상도 변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겁니다. 뭐 물리학적에서는 이미 '불확정성의 원리'를 통해 관찰하는 행위 자체가 물리량을 변화시키므로 관찰과 실재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20세기 와서야 알아냈지요. 다시 U형 이론으로 돌아가면, 쉽게 말해 선승과 도사 정도 되어 자연과 합일하고 몰아(沒我)의 경지가 되면 또렷하고 깊은 U형을 이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미래학이 주장하듯, 이 책도 진정한 미래는 내가 세상과 어울려 바꿔나가는 것이고, 예측보다는 미래 창조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반면, 책의 한계 또한 명확합니다. U자형 실행을 위한 suspension-redirecting-letting go의 경로는 결국 돈오점수의 고통스러운 결과입니다. 만인이 성공하기가 어렵고, 미래 창조의 첫단계인 내 주변의 변화 역시 대부분 더디거나 실패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생일대의 개인적 소명을 이룰 때나 하나의 가능성있는 가이드일 뿐, 일반화 가능한 프레임웍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소 장황하게 말했지만, 동양과 서양에 대해 많이 공부해 온 저나, 우리나라 사람에게 책의 핵심 메시지는 직관적이고 경험적으로 닿는 내용입니다. 그리 어렵게 설명할 필요도 없지요. 오히려 간단히 할 말을 길게 말해 더 혼란스럽습니다. 매우 모호하고 자기완결적이지 못하며, 확신 부족으로 인해 이야기 흐름을 좇기가 어렵습니다.
하긴 동양 고전을 서구 지식인이 힘들게 이해하고 과학적 사고방식에 접목해 본 결과를 서구의 논증적인 프레임으로 포장하려니 본인들도 힘겨웠을듯 합니다.

번역은 좋게 봐주기 힘듭니다. 크게 오역은 없는데, 나눔작업의 탓인지 열정없이 밋밋합니다. 전에 손자를 선 쥬 장군으로 직역한 황당한 책에 이어, 노자를 라오 추(Lao Tzu)로 번역하는 섭섭함을 남기는 수준이네요.

총평하면, 대개의 사람에게 굳이 일독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년의 언저리 즈음, 그간 떠돌던 삶의 정리와 제2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일고의 가치가 있습니다. 동양의 득도와 경력 간의 조화를 생각하게 해보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몇 년안에 다시 읽게 될지도..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위스 은행가가 가르쳐주는 돈의 원리  (12) 2007.10.27
다보스 리포트, 힘의 이동  (8) 2007.10.21
미래, 살아있는 시스템  (8) 2007.10.14
불의 화법  (12) 2007.10.07
한국의 임원들  (8) 2007.10.03
블랙잭 한달 사용기  (51) 2007.10.02
  1. BlogIcon susanna 2007.10.15 01:04

    크헉~ 무쟈게 복잡하고 어려운 책일 것같아 볼 생각이 전혀 나질 않았는데 마지막 대목에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간 떠돌던 삶의 정리와 제2인새의 터닝 포인트를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일고의 가치를 해볼만 하다는 말씀땜시 ^^; 책을 볼까 아니면 그냥 몇년 뒤 inuit님이 다시 정리해주실 리뷰를 기다릴까 고민중임다. ㅎㅎㅎ

    • BlogIcon inuit 2007.10.17 22:01

      흑흑 susanna님 죄송합니다.
      소중하고 귀한 댓글이 스팸통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제가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또 이런 실수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ㅠ.ㅜ

      책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귀한 시간 내어 읽지는 마시고 저나 미래도둑님한테 핵심만 토해내도록 하시는게 효율적이라고 생각됩니다. ^^;;;

    • BlogIcon susanna 2007.10.17 23:51

      전 제가 댓글쓴 뒤 '완료'버튼 같은 걸 안누르고 나왔나보다 하고 있었는데~~ 블로그에 스팸통이 있단 말씀? 것두 스팸 댓글을 보내버릴 수있는? 오~ 그거 쉬운 거면 저도 알려주세요!!!

    • BlogIcon inuit 2007.10.17 23:59

      기본적으로 플러그인중 EAS (이올린 안티스팸 서비스)를 켜 놓으시면 됩니다.
      그러면 댓글/트랙백 메뉴에서 휴지통에 스팸이 자동으로 쌓입니다.
      문제는 가끔 수산나님 처럼 선량한 IP 주소가 스팸으로 잘못 등록되어 휴지통으로 직행하지요.
      생각날 때 휴지통을 뒤져보면 이웃님의 글이 한두개 발견될 때도 있습니다. (분기에 하나정도. -_-)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스팸이 창궐하네요. =.=

  2. BlogIcon 풍림화산 2007.10.15 14:16

    참 대단하십니다. 이 책을 읽고 이렇게 얘기하실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합니다. 저는 이 책 읽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지 이해가 안 갔었거든요. 너무 초점 없는 산만한 글에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일전에 읽었을 때 정말 이렇게 재미없고 지루했던 독서를 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라 다시 읽어볼 자신은 없네요. 핵심만 잘 짚어주시는 inuit님의 이 리뷰 정도만 꼽씹어서 이해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해야할 듯 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 BlogIcon inuit 2007.10.15 22:50

      책이 좀 산만하지요.
      저도 읽는 동안 무척 지루했습니다. ^^

  3. BlogIcon 쉐아르 2007.10.15 14:46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우연히 들어왔는데 좋은 글들이 너무나 많네요. 자주 들르겠습니다.

    서양 사고 방식에서 동양의 관념들은 아직도 '새롭고 다른' 것을 접하는 수준인듯 합니다. 우선 자신의 사고 프레임에 대해 부족하다 인식을 안하기에 더 그러한듯 합니다.

    • BlogIcon inuit 2007.10.15 22:53

      저자들도 그러한 관념과 싸우느라 지루한 설명과 사례로 허비하고 있습니다.

      찾아 주셔서 감사하고, 쉐아르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