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사는 한 세상. 어떻게 살 것인가?

인류 최대의 의문이지요. 이로 인해 종교와 학문이 생겼고, 철학과 윤리학의 전제가 되었습니다. 하다 못해 요가와 명상으로 산업화까지 진전한 명제이기도 합니다.
미하이씨는 그 답을 몰입 (flow)에서 찾습니다. 몰입보다는 "flow"라는 원어가 더 정확한 개념을 내포합니다. 몰입은 삶이 고조되는 순간, 주의가 물흐르듯 온전히 투입되는 순간을 말합니다. 흔히 무아경이니 물아일체니 하는 상황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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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haly csikszentmihalyi

(원제) Finding flow


Jack Welch의 '위대한 승리' 처럼 여러 책에서 인용하기에 관심을 갖게 된 책입니다. flow로 표현되는 몰입의 상태가 어떤지 읽지 않아도 짐작가기에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인용이 아니라 열정적인 참조를 하는 책이 많기에 잡서는 아닌가보다 생각했습니다.

일단 몰입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 개운치가 않고 얼떨떨한 느낌입니다.
책을 덮고 왜 그런가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귀납적 수도파
가장 큰 이유는 본말의 순서입니다. 저는 목표와 이상을 위해 현재를 갈고 닦자는 연역적 수도파입니다. 세상을 이롭게 할 뜻을 세우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역할을 정하고, 그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갈고 닦습니다. 따라서 매 순간 순간이 아까운 찰나이며, 세상을 구하는 작은 행위입니다.


굳이 가르자면, 미하이 교수는 행복 자체를 위해 몰입하자는 귀납적 수도파입니다.
책 의 논증 첫머리도 행복이 과연 무엇인가에서 시작합니다. ESM (Experience Sampling Method)으로 심리를 연구하는 학자답게 행복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다고 못박습니다. 다시 말해, 말하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 행복하다고 표명될 뿐이지 절대적 행복을 알 방법도 알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그러다보니 측정가능한 심리상태를 지표로 삼습니다. 심리상태입니다. 마음의 혼란도를 '심리적 엔트로피'라고 표현할 때, 이 심리적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일견 맞습니다.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어떤 성취도 이루기 쉽지 않지요.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뒤틀림이 가능합니다. 미하이 교수가 중요시 여기는 지표는 긍정적 심리상태입니다. 이러한 긍정적 심리상태는 몰입에서 얻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생산/유지활동/여가 세 부분에서 최대한 몰입가능하게 삶의 패턴을 재조직하면 하루 내내 평안해지고, 인생이 평안해지므로 행복이든 성공이든 세속적 성취를 이룬다고 주장합니다.
이 부분에서 제가 굳이 '귀납적 수도파'라고 명명하였습니다.

하지만, 배움도 짧고 경험도 짧은 제가 감히 말하건대, 삶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먼저, 마음의 안정상태가 최고선은 아닙니다. 마음의 엔트로피가 높아지면 생산성도 떨어지고 혼란이 가중되지만, 어떤 경우 그 자체를 즐기기도 하니 말입니다. 과제의 도전성이 크면 혼란이 커지는게 당연하고 그에 따른 해결능력을 부단히 높이는게 중요합니다. 물론 몰입을 위해 과제의 복잡성과 해결능력을 고도화할 것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목적 의식 없이 몰입 자체를 위한 몰입환경의 구축은 필연적으로 삶과 목표와 유리된 결과를 내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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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lickr.com/photos/97039613@N00/351519531/)


몰입의 상태를 설명하는 차트인데, 제가 보기엔 tricky 합니다. 일반적인 프레임웍이라면 9분면이 정상입니다. 가운데 구분선이 모이는 점이 문제가 있습니다. 즉 중급의 도전성과 중급의 스킬상태에서를 설명하지 않았는데, 이 때도 몰입이 가능합니다. 컴퓨터 게임이나 웹서핑, TV 시청 시에 일어나는 몰입감이 그 예입니다.

귀납적 수도파에서 몰입 자체를 절대선이라고 놓는다면, 왜 굳이 힘든 몰입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동기부여가 어렵습니다. 책에도 이 부분에 대한 대답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왜?'라는 근원적 물음에는 '운명애'같은 모호한 가치로 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세키몬을 닮다
또 하나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기조가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의 '세키몬 신가쿠(石門心學)'를 교묘히 닮은 점입니다. 이시다는 '제업즉수행(諸業卽修行)'이라는 기치로 일본 자본주의의 근간을 마련했습니다. '네가 열심히 일하고 공들여 작업하면 그것이 바로 도를 닦는 일이다'라는 뜻입니다. 결과로, 사회적으로 억압된 노동계급의 에너지를 미시세계로 돌려 사회 안정화와 경제적 성취를 이뤘습니다. 일본스러움, 예컨대 워크맨이니 분재니 다도니 일본스러운 디테일에의 천착이 산업화되기도 했습니다. 또 그 여가적 천착의 한 갈래가 요즘 이야기되는 오타쿠입니다.

미하이 교수는 한번도 일본의 사례를 들지 않지만, 책을 읽는 내내 세키몬을 떠올릴 정도로 사상이 닮았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그 자체로 만족아니냐라고 주장합니다. 십분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열성의 목적이 에너지의 통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바이간이 사회적 안정성을 목적했듯, 미하이 교수는 개인의 심리 안정화에 촛점을 맞춥니다. 외부세계와의 관련성을 끊고 일 자체의 몰입을 즐기도록 권유합니다.

제가 가진 두가지 이견의 문제점은, 귀납의 촛점없음과 같은 방식으로 발현됩니다.
어느 순간 '내가 왜 살지? 내가 뭐하고 있지?'라는 근원적 질문을 받았을 때 북극성 같은 지향점이 없는 사람은 표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점에서 거시적 목표와 정렬되지 않은, 단지 미시적 에너지 관리를 위한 몰입은 근원처방이 아닌 대증처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만의 가치을 찾아서
분명히 말하지만, 저는 책의 전반적 내용에 공감합니다.

여가의 생산적 활용, 목표기반의 몰입된 일, 자기목적성(autotelic)이 있는 삶, 사회와 어우러지는 목표 등 대부분의 주장은 제 삶과도 일치합니다.  

하지만 저는 책을 읽고 설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가치를 먼저 찾아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 길을 공자가 가이드하든, 예수를 따르든, 하다 못해 코비 선생의 플래너를 사용하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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