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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굴기

Inuit 2008. 3. 30. 23:45
역사가 순수한 과거의 총합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아실겝니다.
역사는 지난 일을 보는 사고의 틀이며, 그래서 현재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를 점치는 길잡이가 되기도 합니다. 역사가 관통하는 현재와 미래는 다르지 않고 한 궤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정치적일 수 밖에 없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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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지아펑 외

大國崛起. 대국의 굴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역사상의 강대국들이 우뚝 선 과정을 뜻합니다.

스스로 대국이기를 표방하지만, 역사에 남을 진정한 세계의 대국이 되고자 하는 중국의 열망이 집약된 책입니다. 원본은 영상물인데 단행본으로 나왔습니다.
중국 CCTV에서 방영 후 열띤 반응을 얻었다고 전해지고, 우리나라에서도 EBS, 한경 CEO 강좌 등에서 다룬 바 있지요.

선정된 강국들은 실제로 쟁쟁합니다.
그리고 저자들이, 아니 중국이 주목하는 대목은 철저히 실용적입니다. 강성했던 역사의 스냅샷에 집중하고 해부합니다. 따라서 대국의 리스트가 중요한게 아니라, 확대경을 들이대는 시기도 눈여겨 봐야합니다.
대항해 시대의 포르투갈/에스파냐, 17세기 네덜란드, 산업혁명과 식민제국의 영국, 대혁명 이후 프랑스, 3제국의 독일, 메이지 유신시대의 일본, 혁명 이후의 러시아, 그리고 지금의 미국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역사책이지만 철저히 정치적입니다. 중국의 입장에서 역사를 해석합니다. 그러나, 가소로운 자기만족이나 견강부회, 아전인수는 없습니다. 꼼꼼히 사료를 놓고 고민한 결과를 적었습니다. 각 나라의 흥성에서 철저히 배우고자 합니다. 기존의 시각이나 서구적 잣대는 무시하고, 중화적 관점으로 마주합니다. 뻐기지 않으나 오연하고, 인정하나 비판합니다.

제가 행간에서 읽는 중국의 관점입니다.

포르투갈에스파냐가 그 작은 몸집으로 세계를 제패한 시기에 중국의 정화도 아프리카까지 도달했습니다. 기술이나 규모에서 중국이 앞섰지만 유럽이 이주였으면 중국은 소풍이었습니다. 중국의 진한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소국 네덜란드는 엄청난 벤처정신으로 잠깐이지만 경제 대국을 이뤘었습니다.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으나, 주식회사, 증권거래, 은행 등 자본주의 시스템의 장점을 곰곰히 뜯어봅니다. 창의성의 발현에 높은 점수를 줍니다.

영국은 산업의 발전 단계에 큰 관심을 보입니다.
정치안정 -> 면직물 산업 진흥 -> 생산성 향상을 위한 방적기 -> 실에 비해 느린 방직과정이라는 병목 해결을 위한 방직기 -> 기계산업을 위한 제철 산업 -> 제철을 위한 에너지 산업 -> 전 산업의 공장화 -> 잉여재화를 위한 자유무역 추진 -> 회사, 은행, 국제 금융의 발달 -> 운송을 위한 철도 -> 식민지 경영
이런 발전과정은 뒤에 나오는 나라들에서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는 모습을 봅니다.

프랑스에 보내는 시선은 묘합니다. 귀족정권에서 민중혁명으로 대 반전을 겪은 나라입니다. 그리고 알제리의 분리에 반대해 질곡을 겪기도 했지요. 중국의 상황과 닮아 있습니다. 최소한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반대편이라는 동지의식도 강합니다. 그러다보니 비판조의 러시아나 일본에 비해 나을 것도 없는데 꽤나 따뜻합니다. 최소한 존중합니다.

독일 편은 참 재미있습니다. 수백개로 갈라진 나라가 열강사이의 틈바구니에서 통합하는 과정을 반복재현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Bismark의 소독일 통합론과 Hitler의 대독일 통합론이 그것입니다. 차이는 오스트리아입니다. 독일어권으로 묶느냐 민족으로 묶느냐입니다. 영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던 역사를 어떤 책보다 흥미진진하게 다룹니다. 소수민족 정책을 비롯해 중국의 현안이 녹아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일본은 매우 냉랭하게 다룹니다. 뭐 이쁜 짓한게 없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 전까지 하나라도 쥐어짜서 배우려는 유럽에 비해 논조가 사뭇 다릅니다. 물론 잘한점은 철저히 발라냅니다만, '그래도 그렇게 해서는 안되지'라며 가르치려 듭니다. 사무라이 문화가 낳은 군국주의와 가소롭게 세계 제패니 대동아 공영을 논한 확장주의가 문제라는 투입니다. 제법 수긍가는 논리라서 읽는 저는 웃음이 슬몃 나왔지요. 무수히 많은 나라의 침략사를 이야기하지만, 중국의 침탈은 아주 아프고 참담하게 묘사하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덩달아 한국도 기막힌 피해자로 매겨주긴 하지만요.

러시아도 재미있습니다. 일본을 얄미운 우등생 보듯 했다면, 러시아는 로또 맞은 졸부 취급합니다. 아예 이렇게 못박습니다.
"갈수록 더 눈부신 발전, 갈수록 더 참담해지는 실패" 또는 "대국 콤플렉스"
매우 신랄하지요. 꼭 공산주의의 맹주를 가리자는 의도가 크진 않은듯 합니다. 미국 이외에 패권을 다툴 유일한 국가이자, 국경을 맞댄 껄끄러운 이웃이라고 보는게 정확할겁니다. 단순화하여 말하면 러시아는 아직도 '농노형 경제'라고 깔보고 있지요. 어쩌다 보니 잘된 '덜컥 대국'이라 치부합니다.

마지막 미국입니다.
굴기의 시기가 가장 현대이기도 하지만, 중국이 유일하게 의식하는 경쟁자라서 마지막입니다.
다른나라는 과거에서 배우고자 하는 의도라면, 미국은 벤치마킹의 의미가 큽니다. 현재진행형이기도 하고, 미국과의 경쟁전략은 따로 다뤄질 부분이기에 또렷한 교훈은 두루뭉수레한 감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정적 국가체제나 건강한 내정, 이민자 포용정책과 실용주의 등 현재의 성공요인을 객관적으로 꼽고 있습니다.

각 챕터의 저술은 나라별 중국인 전문가들의 안목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연합체가 아니라 정치적 조율이 이뤄진 작품이란 점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주제이기도 하고요.

다 아는 역사인데 관점하나만 바꿔도 새롭게 읽힌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저는 매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우리나라를 돌아보게 되더군요. 우리는 우리의 사관으로 세계를, 과거를 보는 노력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합니다. 물론 중국은 동북공정처럼 중앙 집중형 사학이 융성할 토양이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