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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만든 세상 본문
너무도 유명한 헨리 페트로스키는, 곧잘 '테크놀로지의 계관시인(the poet laureate of technology)'라 불리웁니다. 기술에 대한 정통한 지식과 안팎을 꿰뚫는 예리한 시각을 치밀하게 서술하기로 유명하지요. 그의 책을 언젠가 한번 봐야지하다가, 디자인에 대한 관심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Henry Petroski
(Title) Small things considered: Why there is no perfect design
책의 핵심 명제는 원제와 같습니다.
"완벽한 디자인은 없다."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모든 디자인은 의사결정의 구현이라는 점입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제한된 정보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둘째, 모든 디자인은 오직 상황속에서 기능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기술이 변하거나 사용자의 습관이 변한다든지 상황이 바뀌면 디자인의 장점이 단점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Design is life차라리 제가 배운건 '삶 자체가 디자인'이라는 점입니다.
C'mon Henry
그런데 곰곰 따져보면 디자인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완벽'하기는 쉽지 않지요. 그런데 인간의 다양한 주관과 심미에 판정을 맡기는 디자인에서의 완벽을 말하다니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이상을 놓고 페트로스키 씨, 한권 내내 열변 토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못해 우습습니다.
심지어 디자인은 고사하고 수치의 세계에서 머무는 공학(engineering)도 완벽과는 거리가 먼 학문입니다. 공학은 시간과 효율이라는 목적에 완벽성을 기꺼이 내어주고, 근사의 세계에서 실용을 추구합니다. 보다 엄정하다는 자연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디자인의 완벽성에 대해 한 권 내내 떠드는건 허수아비 세워 놓고 때리는 격입니다.
Onion peeling writing style
물론, 어떤 디자인도 더 나아질 구석이 있다는 점, 또 어느 디자인도 상황과 사용자의 습관을 거듭 살펴야 적절해진다는 점에서, 완벽성의 추구라는 방향성을 제시하자는 의도는 압니다.
하지만, 책 내용 읽다보면 저같이 성미 급한 사람은 그 지극한 미시감에 질려버립니다. 물체의 디테일을 파고 또 파고, 잘게 나눠 씹고 다시 곱씹습니다. 양파 껍질 까듯 한 없이 벗겨냅니다. 한 두 챕터는 그의 세심한 디테일에 경탄을 보냈지만, 중반 즈음 가서는 둔감한 지루함이 되었고, 막판되니 페트로스키 좀스러운 까칠함이 거추장스럽습니다.
물론 그의 사고 과정을 쫓아가면서 디자인적 요소를 사유하고 훈련하는데는 훌륭한 교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냥 디자인에 대한 그의 시각이 어떤지 감잡아 보려는 사람에겐 갑갑한 극미세입니다.
저는 두가지 결론을 냈습니다.
Design is solution
디자인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 그 해결책은 구현물의 형태를 넘어 총체적으로 현실화된다. 사물과 사상과 절차의 조합으로 나온다.
Design is resolution
디자인은 결정이다. 주어진 환경과 입력요소를 살펴서 매순간 결정을 해야한다. 결정되지 않은 디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매일의 일상과 성취가 모두 디자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데이트를 하는 것도 디자인입니다. 연인과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목표를 위해 어떤 옷을 차려 입을지, 어떤 음식을 먹을지, 어떤 동선과 경험을 순서지을지 디자인해야 합니다. 음식을 먹더라도 메뉴의 조합과 필요한 경비와 주머니 사정, 최근 메뉴 선택 이력, 날씨, 갈증도, 시간, 어둡고 밝음, 후속 일정, 주변 분위기 등을 고려해서 식사 장소와 테이블과 메뉴, 그리고 곁들이는 음료를 의사결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결정이 식사라는 디자인이되고 다음 일정의 제약요소나 촉진요소가 됩니다.
That's enough
책의 번역은 품질이 매우 낮습니다. 원서로 보는게 나을 정도로 초벌 번역의 혐의가 짙습니다. 번역의 완성도보다는 숙련도 이슈입니다. 그리고 질낮은 번역 탓을 무시하긴 힘들지만, 그와 별개로 헨리씨도 참 수다스럽습니다. 나름 간략하고 포인트 있는 이야기를 너무 장황하게 늘어놓습니다. 그의 책을 시리즈로 읽으려던 제 계획은 무한 연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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