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US
해당 업계 수위업체인 미국의 A사에서 파트너십 체결 협의를 위해 회사를 방문했습니다. 저희는 이미 다른 업체와 협업 중이었지만, 관계변화를 모색하려 총괄사장(President), 사업부문장(General Manager)를 위시해 네명이 찾아와서 열정적인 프리젠테이션을 했지요. 하도 거물들이 떠서 평소 우리 회사와 협의를 담당하던 중국 매니저는 가방들고 다니는 신세가 되고, 그 동안 의사결정을 담당하던 Biz develop VP는 입도 벙긋 떼지 못했습니다. 우리 회사의 궁금증과 우려를 한발 앞서 풀어주고 자사의 강점과 경쟁력을 끊임없이 열성적으로 소개했습니다. 면전에서 말은 안했지만, 우린 꽤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Scene #2 Japan
세계 최고 브랜드 중 하나인 일본 업체 B사에서 파트너십 체결을 위해 회사를 방문했습니다. 물론 이 경우는 우리회사가 을이긴 합니다만, 전적으로 우리에게 제품 공급을 의지해야하는 상황입니다. 방문자는 총괄과장이 제일 거물입니다. 그건 괜찮은데, 모든 협의가 끝나면 부문장인 총괄부장에게 허락을 맡아야하고, 다시 부문 임원을 거친 후 본사의 검토와 승인을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처음 만난게 11월경인데, 계약은 3월부터야 이야기 가능하고 5월경 서명할 수 있을듯 하다고 합니다.

Scene #3 US
A사의 방문자 네명은 구성 면면이 재미납니다. 프레지던트는 강한 액센트의 영국인입니다. GM은 아르헨티나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미국인입니다. VP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캐나다 출신이고 현재 거주지는 싱가폴입니다. 어카운트 매니저는 중국인입니다. 하루 45만원짜리 스위트룸에 묵는 고위급들이지만, 1인 홈오피스를 적극 활용합니다. 사무실이 필요없는게, 어떤 이는 1년중 10개월을 해외출장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Scene #4 Japan
B사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합니다. 모두 아연실색했습니다. 일본어가 고스란히 적혀있는 슬라이드를 올려 놓고 태연히 일본어로 설명을 합니다. 필요하면 알아듣겠지 합니다. 물론 시작에 의례적인 인사는 했습니다. 일어 자료를 그냥 가져와서 미안하다고 합니다. 그리 미안해하지 않는게 그 뒤로 두번을 더 왔는데 모두 일어 자료 그대로 놓고 일어로 이야기합니다. 영어에는 다들 능통한 청중이었지만 일본어는 한 두명 밖에 못 알아 들으니 논의가 매우 더딥니다. 매우 간단한 이해조차도 '일어 - 통역 - 한국어 -통역 -일어'를 거치니 시간이 서너배는 듭니다. 무엇보다 말이 요점만 건너다니니 매우 건조하고 공식적이면서 모종의 긴장마저 흐릅니다.

꼭 영어가 중요한건 아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글로벌 지향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늘 느끼지만 일본은 저 속도로 어떻게 IT 산업을 쫓아갈지 안쓰럽습니다. 너무 빠르고 지름길 좋아하는 우리나라도 스스로 돌아볼 부분이 많지만, 공무원을 능가하는 절차서, 사양서 등 폭포같은 페이퍼웍이 겨누는 목적은 시장이 아니라 내부의 책임소재 규명이란 점이 한심하기까지 합니다.

최근 토요타 자동차가 천만대 리콜로 곤혹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유야 일견 자명하고 또 갖은 설명이 난무합니다만, 저는 세계화에 대처하는 일본식 비즈니스 자세가 중요한 원인을 제공한다고 봅니다. 영국에서 소니 영업사원의 오만한 자부심은 유명합니다. "Hey, I am a Sony salesman. What do you want me to sell?" 

토요타 방식으로 지상 최고의 프로세스라는 찬사를 받았던 일본 시스템, 이제 그 멘털리티의 한계를 일본이 과연 어떻게 극복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1. BlogIcon 띠용 2010.02.08 00:14

    헐.. 이 예화들을 보니까 일본이 비즈니스쪽에선 좀 답답하네요;

    • BlogIcon Inuit 2010.02.08 00:59

      산업시대의 베스트 프랙티스가 정보시대에서 그대로 통할지의 이슈입니다. ^^

  2. BlogIcon 사진우주 2010.02.08 00:14

    IT쪽.ㅡ.ㅡ은 아니지만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면서외국웹을 돌아다니다보면 일본이나 중국어로 번역된 웹사이트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일본이나 중국을 부러워하고 있었는데.. 꼭 그런것만은 아닌듯하네요..^^..

    • BlogIcon Inuit 2010.02.08 01:01

      말씀처럼 일본은 모든걸 '자국어 번역'이라는 가두리 시스템을 가져왔지요. 그게 예전엔 큰 경쟁력이자 장점인데, 번역속도를 능가하는 지역-언어-분야의 확장이 시스템에 충격을 가하고 있지요.

    • 존6 2010.02.09 12:22

      그래도 번역된 문서가 많다는 것은 분명 좋은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나 어린 학생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요.

    • BlogIcon Inuit 2010.02.09 23:24

      번역이 세상의 속도를 따라간다는 전제에서 그렇겠지요. ^^

  3. BlogIcon 권영해 Twitter : aaalm 2010.02.08 00:16

    말씀을 들어보면 흡사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떠올라서
    흠칫 합니다.

    저도 미국계 회사에서 10여년 근무하고 한국회사(은행)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의사결정이 너무 느리고 프로세스가 주먹 구구식이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소위 대기업이라고 하는 회사들이 이런 느린 의사결정
    있다는 것이 화가날 정도입니다.

    내부 프로세스가 이렇게 황당한 데도 회사가 돌아가는게 신기할 지경입니다

    • BlogIcon Inuit 2010.02.08 01:02

      음.. 은행은 좀 많이 70년대 풍이지요... -_-;;;

  4. BlogIcon 궁시렁 2010.02.08 00:20

    교과서 여러 권이 폐기처분되고 또 새로 여러 권이 써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ㅎㅎㅎ

    • BlogIcon Inuit 2010.02.08 01:02

      특히 토요타 관련한 책들만 백권은 넘을텐데요.. ;;

  5. BlogIcon 애드민 2010.02.08 01:30

    일본이 외국에 문호를 개방할 때 번역국을 설치하여 다수의 문화, 지식을 흡수하기는 했지만 읽기와 쓰기 지향의 외국어 교육으로 '벙어리 영어'를 양산했다는 내용이 떠오르네요.

    • BlogIcon Inuit 2010.02.09 00:04

      네. 모든걸 번역해서 공급하는 정책이 부러울 정도로 멋졌지만 모든걸 자기중심으로 해석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6. BlogIcon mu 2010.02.08 05:40

    이번 토요타 사태를 보며 참 혼란스럽습니다. 이게 단지 일본식 멘탈리티의 문제인지, 토요타 고유의 문제인지, 다테마에는 신뢰지만, 혼네는 영 딴판이었는지. 그렇다면, 그동안 천재급 학자들이 늘어놓았던 토요타에 대한 찬사는 다 무엇이었는지.

    • BlogIcon Inuit 2010.02.09 00:07

      속단은 어렵지만, 일본기업의 묘한 색깔은 확실히 있고 요즘 시대에 뒤쳐진다는건 제가 현장에서 많이 느낍니다. ^^
      예컨대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개념조차 글로벌 상황에서 상호 이해에는 장애물임이 확실하지요.

      다만, 토요타는 좋은 회사이므로 스스로 길을 찾으리라고 생각합니다.

  7. BlogIcon 토댁 2010.02.08 08:25

    어느 분야에서든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지향적인 사고와 실천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난 한 주 저희지역 노인들이 트위터 배우느라 밤 깊어지는 줄 모르고 열심이었습니다. 첫날, 둘째날은 감이 오지 않아 힘들어 하시더니 막바지에선 쉬는시간 쉬지도 않고 신비로운 세상에 흠뻑 빠져 모두즐거워하셨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런가 봅니다.
    처음은 헤메고 힘들어도 길이 접어 들며 그지 없이 재미있고 즐거운 작업...^^

    이제 트위터랑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농촌의 실시간 모습을 곧 보실 수 있으시겠습니다..ㅎㅎ

    즐거운 한 주 시작하세욤~~
    참, 건강은 늘 좋으신거죠?^^

    • BlogIcon Inuit 2010.02.09 00:08

      토댁님이 농촌 정보화의 기수가 되고 계시는군요.
      글로벌 영농을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성원할게요! ^^

      ps. 건강은 좋습니다. 덕분에.

  8. BlogIcon (구)언더독 2010.02.08 10:01

    도요타 사태에 대해서는 전 좀 지켜보자는 식입니다. 뭐... 도요타 자동차를 구입한 것도 아니니 상관없다는 식이죠.

    일본의 오래된 메이저급 회사는 다 그런 멘탈리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도 다 그렇게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어떻게든 먹고살게 해 주거든요. 그리고 어떻게든 망하지 않거덩요.

    • BlogIcon Inuit 2010.02.09 00:09

      네. 일본에서 공부하셨으니 잘 아시겠네요..
      어떻게든 살아가겠지요 정말. ^^

      다만, 토요타는 좀 아쉬운게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좋게 보는 회사라서요.

  9. BlogIcon NUL 2010.02.08 11:22

    일본인들이야 굳이 영어를 쓸 핑요가 없죠.
    저로선 부러운 현실이고요.
    그게 약점이 된다면 스스로 방법을 찾을 겁니다...

    이공계 대학생들이 전공보단 영어 공부에 혈안인 우리나라를 보자면 (사실 요즘의 문제가 아니라 10년전에도 그랬습니다.)
    그래도 일본이 낫다고 봅니다.

    일본이야 스스로 느낀다면 고압적 자세를 버리겠죠.
    그게 어렵다고나 오래 걸린다고 보진 않아요.

    • BlogIcon Inuit 2010.02.09 00:09

      스스로 느끼는 그 시기가 언제일지 궁금하면서 스스로 찾아낼 답이 기대도 됩니다. ^^

  10. BlogIcon 박재욱.VC. 2010.02.08 11:27

    우리나라 IT 기업들에게도 큰 implication을 주는 포스팅이네요. 요새 특히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진정한 Globalization을 이루기 위해서는 세계인들과 소통하려는 자세와 노력이 항상 동반되어야 할 것 같네요. 좋은 글 정말 감사드립니다. :)

    • BlogIcon Inuit 2010.02.09 00:10

      영어 자체보다, 문화와 관습에 열린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말을 못하면 낙담.. -_-;;

  11. BlogIcon mode_ 2010.02.09 01:11

    전 다음번도 궁금합니다. 각 나라의 경험으로 프로세스가 조금 변형되고 사회적으론 물결의 방향이 바뀌면 세부적으론 부적절했던것이 적절한 형태로 변하기도해서.. 흠.. 그보다, 생각해보니 시대가 변할때까지란것 자체가 엉성한 생각이네요. 그저..이기는편 우리편이란 생각으로~ 장점을 받아들이는게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BlogIcon Inuit 2010.02.09 23:16

      구구절절 맞습니다. '적절'은 분명 상황적으로만 충족되는 개념이라는데 동의합니다.

      특히 이기는편 우리편은 진리! ^^;;

  12. Ethan 2010.02.09 02:0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첫번째 줄..
    "해당 업계 수위인 업체인 미국의 A사에서"
    는 오타이신 거죠? 미국의 A사가 해당업체 수위라는 말씀이신 거죠? 그리고, "관계변화를 모색하려" 고 하는 주체는 A사인 거구요..

    읽다보니 명확하게 의미가 와닿지 않아서... 댓글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 BlogIcon Inuit 2010.02.09 23:17

      오타 맞아요. ^^

      근데 아이디가 좀 낯이 익는...? ^^

  13. BlogIcon 블랙스완 2010.02.09 03:35

    매번 글 잘 읽고, 잘 배우고 있습니다.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역시 사람이나 기업이나 남들이 추켜세워줄 때, 또 자신이 최고라는 환상에 빠질때, 그래서 배움이 더뎌질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잠시 해 보았습니다.

    • BlogIcon Inuit 2010.02.09 23:18

      맞습니다.
      가장 잘나갈때가 가장 위험할 때란걸 자꾸 느끼고 또 까먹습니다...

  14. BlogIcon 고어핀드 2010.02.09 08:55

    저야 말단 개발자였습니다만, 일본 측과 함께 일을 할 때 비슷한 경험이 좀 있지요. 지나치게 소심하달까,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별로 문제가 안 될 것 같은 것도 담당자가 몸을 사려서 못 하더군요. 메신저로 한두 마디 하면 될 것을 꼭 이메일로 정식 문서를 보내야 직성이 풀리고요.

    꼼꼼하고 체계적인 업무 처리는 좋았는데, 좀 꽉 막힌 듯한, 그런 게 좀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어째 그 회사 문제만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 BlogIcon Inuit 2010.02.09 23:21

      네. 바로 그점이지요.
      지나친 신중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꼼꼼함은 좋은데, 쇳덩어리같이 둔할때는 난감하단 생각이 들어요. ^^

  15. BlogIcon 토댁 2010.02.09 21:56

    비가 옵니다.
    똑똑똑...
    항아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슬프다며 항아리를 옮겨달라는 아이의 말에 가슴이 핑크빛이 되었습니다.

    똑똑똑...

    편안한 오늘 되시기 바랍니다.^^

    • BlogIcon Inuit 2010.02.09 23:22

      아!

      울림이 있는 댓글입니다.

  16. BlogIcon 도도빙 2010.02.10 22:08

    일본에 대한 제가 갖는 이미지 상에서 생각해보건데 일본은 현재 상황을 극복함에 있어서 대충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BlogIcon Inuit 2010.02.11 00:49

      조직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 예전처럼 기업레벨에서 각개 약진할지는 두고봐야하겠습니다. ^^

  17. BlogIcon 디젤 2010.02.21 19:04

    확실히 그런게 있군요;

    약간의 거만함이나 배려심이 없다던가..
    조직내에 속한 일본인의 심리에 대해서 읽었었는데 비슷한거 같기도 해요~_~

    • BlogIcon Inuit 2010.02.25 23:24

      네.. 미묘하지만 뚜렷한 그 무엇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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