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행복의 정복 본문
행복의 품사는 뭘까요? 명사인가요, 형용사인가요, 아니면 동사인가요?
여러분, 지금 행복하신가요. 행복이야기 많이 하는데, 과연 행복이 뭘까요.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걸까요?
(Title) Conquest of happiness
인류 최대의 의문인 행복에 대해 명쾌한 정리를 한 러셀입니다. 이 책에 대한 많은 언급을 듣고도 흘려듣다가, 문득 생각나 집어 들고 읽었습니다.
Boredom
Secrets of happiness
그럼 행복은 불행만 피하면 될까요. 그보다는 더 있지요.
Bertrand Russell
인류 최대의 의문인 행복에 대해 명쾌한 정리를 한 러셀입니다. 이 책에 대한 많은 언급을 듣고도 흘려듣다가, 문득 생각나 집어 들고 읽었습니다.
Sources of unhappiness
책의 전반은 사람들이 왜 행복하지 않은지에 대해 논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상황적 분석이 있어 근 100년의 세월에 시대착오도 있지만, 논의의 밑을 허물만한 결함은 아닙니다. 반면, 행복의 본질은 시대와 무관하게, 시대를 관통하여 진리적 실체로 정리하였습니다.
오히려, 시대적 격차가 느껴지지 않는 대부분의 서술에 경탄하게 됩니다. 러셀은 일갈합니다.
흔히 말하는 생존경쟁은 어불성설이다. 누가 죽는가? 성공경쟁일 뿐이다. 호도하여 불행하지 말라!
성공하기 위해 지나친 희생을 치르는건 불행의 첩경이란 뜻입니다. 백퍼센트 동의합니다. 더 나아가, '교육은 즐겁게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관점도 매우 통쾌합니다. 저도 그런 교육관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Boredom
제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권태(boredom)를 행복/불행의 요소로 잡은 통찰입니다. 인간은 먹거리를 해결한 이후 끊임없는 잉여시간과 당위 간 투쟁에 직면했습니다. 따라서 자극의 통제가 행복의 주요 관건이 됩니다. 지나친 자극은 피로가 되고, 부족한 자극은 권태가 됩니다. 그리고 권태는 인생을 나락으로 몰고가는 주범이 되지요. 따라서 현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권태와 피로의 스펙트럼상에서의 위치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같은 관점에서, 어쩌면 권태는 역사시대의 인류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Secrets of happiness
그럼 행복은 불행만 피하면 될까요. 그보다는 더 있지요.
- 성취의 기쁨: 겸허하되, 몸을 움직여 이루는데서 행복은 시작한다.
- 열정(zest): 건전한 욕구와 동기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자극을 상시적으로 다루는 삶을 만들것.
- 사랑(affection): 대가 없이 베푸는 사랑. 주되 소유하지 않는 사랑은 안정감의 근원이 된다.
- 가족: 각자의 관심과 독립성을 유지하는 전제로, 가족만의 독특한 무조건적 사랑은 죽음의 공포를 이긴다.
- 일(work): 권태를 벗어나고 적절한 피로를 줄 뿐 아니라, 성공을 향한 단계가 됨.
- 폭 넓은 관심(impersonal interest): 인생의 폭이 협소할수록 우연한 사건이 인생을 마음대로 주무른다. 건전한 오락물을 가져라.
- 노력과 체념(resignation): 건전한 체념을 배워 적절히 노력한다. 건전한 체념이란, 불가능한 일에 대한 인식이다.
처음 제 질문에 입각하면, 전 행복이 동사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 자체가 행복을 가져오지, 불행의 제거상태가 행복은 아니겠지요.
Many ways to be happy
기왕 행복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른 행복론과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하이 씨의 flow(몰입)는 제가 역설했듯, 불행의 제거를 통한 찰나적 행복론입니다. 매 순간은 불행하지 않을지 몰라도, 삶이 고양되는 부분에 대한 답은 모르겠습니다.
기왕 행복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른 행복론과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하이 씨의 flow(몰입)는 제가 역설했듯, 불행의 제거를 통한 찰나적 행복론입니다. 매 순간은 불행하지 않을지 몰라도, 삶이 고양되는 부분에 대한 답은 모르겠습니다.
길버트씨는 더 세포적 수준으로 내려갑니다. 행복과 효용, 만족을 섞어쓰면서 뇌과학적 성과를 재배열했을 뿐입니다. 결정적으로 행동 수준의 지침에 대해서는 미하이 씨보다도 더 함구하지요.
오히려 고전인 톨스토이의 행복론 또는 인간관계론이 훨씬 러셀에 근접합니다. 사실, 현자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항일거라 생각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주자들은 종교의 창시자들이구요.
Gloomy English happiness
날도 궂고, 천성적으로 음울한 영국에서 논한 행복론이니, 처음에는 반신반의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게다가, 러셀 자신조차 삶을 증오해 자살까지 생각했다가, 수학을 좀 더 알고 싶어서 자살충동을 거뒀던 사람입니다.하지만, 현인이라면 언제, 어디 살아도 같은 결론에 이르는 법. 삶을 극하고 관조와 애정으로 돌아온 그는 보편적 행복론을 완성했습니다. 그 지혜는 단순한 행복을 넘어 인생의 비밀과도 통합니다.
이성으로 종교를 다듬고 도덕의 살을 발라 삶의 지침으로 만든 '행복의 정복'. 무신론자의 바이블로 강력 추천합니다.
매우 형이상학적 주제를 다루므로, 철학적이고 논증적인 전개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이지만 아주 쉽게 설명했습니다. 러셀의 미덕이 잘 녹아 있습니다.
이성으로 종교를 다듬고 도덕의 살을 발라 삶의 지침으로 만든 '행복의 정복'. 무신론자의 바이블로 강력 추천합니다.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래 (8) | 2010.06.12 |
---|---|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12) | 2010.05.06 |
구글드 (30) | 2010.04.20 |
가우디, 예언자적인 건축가 (10) | 2010.04.17 |
레인보우 (10) | 2010.04.12 |